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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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먼 이름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응원할게.

길상효 소설 신은정 그림, 나의 먼 이름에게(창비)(소설의 첫 만남 랜덤 서평단)

 


책에 대한 애정이 과한 욕심이 될 때쯤, 만난 나의 먼 이름에게소설의 첫 만남의 기획과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몰입감이 높고 가독성이 높은 소설은 오랜만이라, 금방 읽고 말아서 아쉬웠다. 이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의 먼 이름에게우리 곁의 작은 늑대들을 향한 이야기. 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왔는지, 이름을 찾아, 기원을 찾아 떠나는 의 여정을 담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한없이 꼬리를 흔들고 배를 보여주고, 좋다고 뒷발로 지탱하여 앞발로 내 다리를 만지던 아이들이 어쩌다 내 곁에 왔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이 물음표가 너무 늦게 생겼다.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은 어쩌다 인간의 세상에, 그것도 부족함이 많은 내 곁에 왔을까? 어린 날의 내가 무조건 데려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도 나에게 한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아이들은 나와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와 아이들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꼭, 어떻게든 만났을 관계라고 생각하니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최근까지의 우리가 함께 한 장면들이 물 흐르듯 천천히,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가 어쩌다 인간 세상에 왔는지, 이름과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멋있다. 어쩌다 인간 세상에 왔는지를 찾고자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낸 것도, 찾기 위해 끝까지 멈추지 않는 모습도 멋있고 대단했다. 의 집요함이 책장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을 깊게 남긴다. 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다. 처음으로 배불리 먹고 깊은 잠을 자고,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얼굴을 비비는 나의 인간과 안전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중이다. 하지만 는 나의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가둔 벽 너머의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 갈망이 의 물음을 만든 것이다. 한 드라마에서 살면서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삶은 끝난다는 대사가 생각났다. ‘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간 것이다. 의 물음에서 내가 삶을 사는 이유를 생각했다. 어쩌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굴곡이 많은 삶을 살고 있나? 처럼 집요함이 부족한 나는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날 용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귀찮아서 물음을 지우는 선택을 했다. ‘의 집요함을 배워 다시 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 여정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의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나의 깊은 어딘가에 계속 타올랐으면 좋겠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자 하는 갈망 말이다.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벽이 자신을 가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벽이 주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벽 너머를 갈망할 수밖에 없다. 번식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나의 주인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는 근본적인 존재 이유와 자유를 간절히 원한다. 얼마나 건강하고, 끝없이 성장 가능한 가능성과 기회를 쥐고 있는 건가. 인간의 생활에 맞춰 생활하는 는 인간이 줄만 들어도 산책 가는 걸 바로 알아차린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동족의 냄새를 맡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는 동족을 만나게 되고, 동족이 판 구덩이로 동족을 따라 뛰어 들어간다. 자신이 품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정의 첫걸음을 뗀 것이다. 첫걸음은 꽤 성공적인 것 같다. ‘를 따라 들어간 구덩이는 의 이름과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설렘과 동시에 긴장감이 내 손끝을 감쌌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펼쳐졌다. 가 인간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찾는 여정이지만 여정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답을 찾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고 답을 알고 나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자매가 한테 스스로 원망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선택이고,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 삶은 충분히 나다우니까’. 소설에서 인간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를 따라 간 여정에서 인간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로 묶어서 말해도 될 만큼 비슷한 삶이다. 틀림없이 꼭, 서로의 주변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인간과 개의 관계였다. 까마득한 시간부터 인간과 개는 삶의 공간을 공유한 채 엇갈리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구덩이로 들어간 는 인간들과 함께 사냥한다. 한 방향을 달리다가 때로는 엇갈리고, 때로는 합류하며 긴 추격전을 벌인다. 긴 추격전 끝에는 먹잇감이 남았고, ‘는 인간에 대한 물음이 거대해졌다. 인간이 더 궁금해진 것이다. 앞발로 뭐든 척척, 해내는 인간이. 는 동족을 따라가는 대신, 인간들의 뒤를 따라가기로 선택했다. 선택하기까지 의 머릿속은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선택하고 나서도 머릿속의 소란스러움이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지겠지만 선택했다는 사실이 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자매는 그런 가 무리를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인간을 멀리하라고 말하지만 는 인간을 향한 물음과 감정을 멈출 수 없다. 자신 마음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흔들리지 않는 나의 꼿꼿함과 의지가 부러웠다. ‘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족 대신 인간을 택한 것이 어쩌면 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족은 이해하지 못하고, 동족과 정반대를 선택하여 반대의 길을 걸어도 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을 인간이 채워줄 거라는 걸 는 은연중에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던 날, 마음에 이상하고도 벅찬 감정을 느낀 때부터 인간과 함께 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는 어쩌면 동족과 인간보다 빨리 더 먼 미래를 내다본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어떤 물음을 가지고 있을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인간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찾아서, 이름과 기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꿈꾸고 있는지 말이다. 보호자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자유와 여정을 묶고 있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목줄로 자신들을 잡아 놓고 가끔 목줄을 풀어 제지하면서 하는 산책으로 자신을 가두는 공간에서 벗어난 잠깐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아이들은 벽 너머를 갈망할까? 갈망하지 않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그리고 잔인한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개의 삶에 대해 미안함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 벽 너머를 갈망하는 마음을 한 번이라도 아우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과 무지함을 느꼈다. 배부르게 먹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자신을 보호하고 돌보는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벽 너머를 갈망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무엇일까? 해준다 한들 그 갈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닌데. 물음에 대한 딱 맞는 답이 있을까?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용기를 낸 세상 곳곳의 의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인간, 놓아줘야 할까? 놓아준다는 게 뭘까?


곳곳에 있을 는 구덩이를 파는 게 아니라 만든다는 것을, 간절히 원하면 구덩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절함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음을 구덩이를 곳곳에 파고 구덩이를 통해 기원을 찾아 떠난 세계와 현실을 오고 가면서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인간 세상에 오게 된 각자의 이유를 찾게 되고, 각자 여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아니면 계속 여정을 이어가든가. 그리고 또 다른 물음을 안고 새로운 여정을 떠날 것이다. 그 여정을 위해 또 다른 용기를 내야 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여정에는 언제나 를 기다리는 인간이 함께 하고, 등지고 떠나던 그 자리에 언제나 나의 인간이 서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자신을 찾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이 만남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는다. 맞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우리의 만남은 막지 못할 것이고, 곳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만남을 떠올리면 마냥 다정하고 행복하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함께 넓은 들판을 뛰면서 같은 먹잇감을 때로는 엇갈리고 때로는 협력하며 잡던 때와는 달리, 시선을 맞추지 않고 인간이 개를 내려다보는 우리의 삶이 안타깝다. 수많은 가 잃어버린, 인간이 이기적으로 지워버린 이름과 기원을 찾는 걸 멈추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만남이 다정과 행복으로만 채워지는 그날까지, ‘나의 먼 이름에게라는 문장으로 쓰일 수많은 편지를 기억하겠다. 이 책 또한 그 수많은 편지 중 하나니까. 나의 먼 이름, 그 이름을 찾는 그날까지 함께 삶을 나눈 인간들은 의 이름을 계속, 간절히 부를 것이다. 돌아와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름을 찾으러 떠나도 좋다, 떠나야 한다. 물음을 품고만 있으면 고이고 고여 썩어서 덜어내야 하고, 근본적인 냄새를 잃고 말 것이니까. 이름을 찾고,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인간은 언제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에게 미안하고 고마우니까. 오늘도 나의 먼 이름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 여정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나서서 치워버릴 것이다. 이름과 기원을 찾아야 우리의 만남이 완전한 만남이 되는 거니까.


오늘따라 본가에서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닿을지 알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나의 먼 이름에게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통해 전한다. 그리고 우리 곁의 작은 늑대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 책은 <소설의 첫 만남> 랜덤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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