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늦었네 스콜라 창작 그림책 80
신순재 지음, 염혜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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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늦었더니,

신순재 글 염혜원 그림, 한발 늦었네(위즈덤하우스)

 

속도라는 단어를 봄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 안에 등장하는 아이와 고양이, , 나비 그리고 다양한 색이 각자 속도대로 말하고 걷고 바라보고, 흐르고 있다. 아주 잠깐, 봄이가 되고 싶었다. 풀린 신발 끈을 묶는 동안 먼저 놀러 가버린 친구들을 뒤따라가는 길이 고양이, , 나비 덕분에 외롭지 않았으니까. 한발 늦었지만 봄이는 한발 앞서 갈 때 볼 수 없던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테니까.

봄이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전부터 봄이였던 건지도 모른다. 해맑은 얼굴을 한 봄이가 아닌 신발 끈을 묶고 뒤늦게 뛰다가 넘어진 봄이에서 멈춘 게 이다. 봄이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한발 두발 세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봄이는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봄을 만난다. 봄이와 달리, 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가야 한다는 건 알지만 몸이,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한 적 없지만 나는 늘 무언가 쫓기고 있다. 쫓기는 느낌이 들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결과물이 생긴다면 쫓긴다는 느낌의 순기능을 이용할 테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저 쫓기고만 있을 뿐이다. 나만 제자리걸음이고, 모두 멀리 가서 보이지 않는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다. 애초에 누군가를 따라잡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각자 속도가 다른데, 어떻게 쫓을 것이며 따라잡을 것인가. 어른이 되니 쉽게 휘둘리고 쫓긴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이 모나진다. 꼭 정해진 속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다들 각자 속도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각자의 속도를 인정할 만큼 여유가 없다(인정은 무슨. 이해도 전혀 하지 않는다). 빠르고 앞지르는 것에 쉽게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속도 대신 누가 정했다고 정확히 집을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가 따르는 속도를 학습하고, 그것이 제 속도라고 믿는다. 자기 속도를 찾기 전부터 학습된 속도는 수많은 속도 앞에서 까막눈이 되길 강요한 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잃어버린 수많은 속도는 어디로 갔을까? 설령 그 속도를 찾는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각자 몫이겠지만 아무 쉽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에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도 내 속도를 찾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으니 속도를 알 수 없다. 과거에는 빨랐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한발 늦으면 어떤가, 하고 싶지만 스스로 거부한다. 이미 한발만 늦은 게 아닐 텐데, 여전히 늦은 상태일 텐데 뭐가 무서워서 마음에 바람이 통하지 않게 잠궜는지 모르겠다. 속도를 잃어버린 건 분명하고, 한발보다 훨씬 많은 걸음을 늦은 것도 확실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고,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그걸 뒤늦게 알아차릴 게 뻔하다.

계속 걷는 것. 그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대신 내 시간을 걸어줄 사람이 없으니. 걷다 보면 내가 어느 정도 걸어야 쉬었다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제자리걸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속도를 찾기 위해서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내 발꿈치를 시작으로 속도가 따라붙지 않을까. 봄이처럼 친구들을 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예쁜 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한발 늦은 김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천천히 감각으로 담고, 그것을 에너지로 만들어 한발 내딛을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도록 한발 늦으면 어때?’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한발 늦으면 어때?, 하고 입으로 소리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말이 주는 힘은 거대하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그럴 듯한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발 늦으면 어때?, 뒤로 붙을 문장은 이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문장이 끊기지 않고, 매일 다른 문장이 물음표 뒤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길.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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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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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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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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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글 고정순 일러스트, 불가사의한 V양 사건(길벗어린이)

 

세상에는 수많은 ‘V이 존재한다. 나도 V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세상 곳곳에서 끝도 없이 쓰이는 V양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흐릿하다. 흐릿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존재하는데 말이다. 존재가 이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너무 쉬워서 헛웃음이 났다. 뭐가 이리 쉬워.

존재감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존재를 앞에 두고 다양한 정의를 펼치고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검색창에 존재를 넣으니 현실에 실제로 있음. 또는 그런 대상이라고 나온다. 현실에 실제로 있다는 문장이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현실에 내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 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거창할 것 같던 존재의 정의가 생각보다 간단하고, 그 간단한 정의인데도 그 정의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잠깐 숨을 참았다. 어쩌면 존재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 문장 자체가 존재를 보여준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런. 버지니아 울프 문장과 조화를 이루는 고정순의 그림은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세심한 터치가 느껴진달까. “지금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적어도 아래층 사람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겠지.”라고 말하는 수많은 V양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의 간절함이. 너무 간절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존재감을 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존재한다고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리는 것말고는 할 수 없으니까. 자신의 존재를 사물을 부수는 행위로밖에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아프다. 그들의 표정, 손짓, 몸짓, 목소리가 아니라는 게 잔인했다. 어쩌다 잃어버린 존재감을, 아니 존재감을 잃기를 원한 적 없던 그들이 존재감을 잃고 견뎠어야 할 삶의 무게와 존재감을 다시 찾기 위해 이 악물고 뛰어다녔어야 할 시간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존재감을 나는 잃길 바라는데, 그런 나는 어떻게 보일까?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나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는 존재하기를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 이 기분, 정말 이상하다.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내가 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불리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불리지 않는다면, 내가 존재했던 순간들이 우주를 떠도는 먼지보다 더 못한 불쌍한 무언가로밖에 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존재하길 원했던 적은 없지만, 존재하지 않길 바랐던 적은 있다. 존재감을 잃게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상상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뻗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옆에 무엇이 있는지 느껴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송두리째 날아간 것이다. 헛웃음이 겁에 질린 울음으로 바뀌었다. 존재감을 잃는다는 건 정말 무섭고 잔인한 일이다. 그동안 존재에 대해 가볍고, 쉽게 생각했다. 존재는 이분법적으로 간단하고 나누는 것이 아니다. 존재가 없는 순간, 나도 사라지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뭐든 해야 한다. 우리가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존재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존재하기 위한 발버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존재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뭐든 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에 대한 이유는 존재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 오늘 우리는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는 우리는 각자 시공간을 걷고 달리고, 만지는 중이다. 스치듯 느껴지는 존재의 촉감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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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워크 저널 -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
카일라 샤힌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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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마주한다는 건,

카일라 샤힌, 섀도 워크 저널(The Shadow Work Journal)(푸른숲)

 

스물 중반에 만난 섀도 워크 저널. 해가 더 해질 때마다 한 권씩 써서 나의 그림자 마주보기시리즈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Shadow(그림자)를 마주 보는 일은 쉽지 않고, 두려움과 불안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어서 <섀도 워크 저널> 기록단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기분이 이상했다. 나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의 기회를 준다는 말에 마음을 혹-, 빼앗겼던 것은 사실이나, 그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은 부담과 책임을 양쪽 어깨에 나눠서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니까. 긴장됐다, 그림자를 마주 보는 일은 용기와 의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섀도 워크 저널은 거리를 두고 나의 그림자를 마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한다. 책상 위에 <섀도 워크 저널>과 펜, 그리고 가 있으면 준비는 끝난다. 너무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도망가거나 숨기 바빴던 내가 나의 그림자를 마주 보는 게 두렵고 낯설 뿐.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워지길 바랐다. 나 자신에게 너무 잔인한 사람은 타인이 아닌 나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마자 목구멍을 꽉 막고 움직이지 않던 이유를 알 수 없던 답답함과 울컥함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자를 마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그림자 중에 생각보다 덤덤하게 마주 봤던 것도 있고, 주춤하거나 뒷걸음질했던 것도 있었다. 나를 감싸고 있던,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뒀던 그림자는 정말 많았다. 그 많은 그림자는 좁은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함으로써 털어내고, 가벼워지라고 내게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기에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어쩌면 들었음에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아 어쩌다 보니 마주하게 된 나의 그림자는 하나같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을 먹고 자란 그림자가 나를 삼켜 버리도록 뒀다. 그림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기는데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어둠을 먹고 무섭게 자라는 존재라서 나의 덤덤한 반응과 갈수록 많아지고 깊어지는 생각이 반갑고, 맛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먹다 보니 자신이 생활하기엔 공간이 좁고, 여전히 반응 없이 시들어 가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그림자 본인의 자리가 내 자리가 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배려(라고 봐야 할까)에 고마움을 느끼는 게 맞을까. 그렇게 마주한 나의 그림자를 완벽하게 털어내는 건 내 욕심이다. 털어내도 그림자가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화석처럼. 그림자를 마주 보는 연습을 하고, 더 이상 주춤하거나 뒷걸음질하지 않는 내가 된다면 내가 그림자를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림자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바라는 모습을 그려본다.

섀도 워크 저널에서 의아했던 부분은 자기 연민이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게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까?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게 싫어서 다양한 척을 살며 살았는데, 스스로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니. 자기 연민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끼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연민하지 않았고, 아끼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스스로 관대했으면, 나의 그림자를 마주 보는 시간을 가질 일도-그림자가 쌓여 있는 어둠의 탑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나의 그림자를 마주 보는 연습을 하면, 나를 더 이해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나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일이 나에서 타인으로 확장된다는 건 여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스스로 가벼워지고 싶은 건 진심이다. 나만 알 수 있는 내 얼굴에 내려앉은 짙은 어둠은 분명 그림자가 나를 잡아먹으려는 신호이고, 나는 그림자가 잡아먹도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 그림자가 가벼워지면 밝은 빛을 낼 것이며, 그림자에 가려져 본 적 없던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 내가 정말 원했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뿐이고, 기적을 일으킬 힘을 가진 것도 나니까.

빈칸을 채우고 질문에 답을 채우는 과정에서 내가 계속 의식했던 건 솔직함이다.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놨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그림자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섀도 워크 저널>을 펼쳐 펜을 들어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쓰다 보면 정말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건강하고 단단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더 이상 과거에 발목을 붙잡혀 있는 게 아니라,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그날까지 나만의 섀도 워크 저널시리즈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그림자와 처음으로 함께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카일라 샤힌과 푸른숲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은 기록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에서 받았습니다:D

 

나만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언제 시작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한 번은 꼭 그 여정을 경험하길 권한다. 한 번 하고 나면 그다음 여정은 생각보다 수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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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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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치카노 아이, 시작점의 시작(책읽는수요일)

 

소설에 대해 평을 하는 게 조심스러운 건 오랜만이다. 어떤 말을 해도 (감사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의 본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에 대한 평을 할 수 있는 건 독자가 할 수 있는 중요하고 아주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소설을 읽고 든 생각과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엄마가, 이제는 나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려 한다.’라는 소설을 소개하는 한 문장은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해라는 표현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성매매를 해온 여자들의 이야기들은 시작점의 시작이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너무 닮아서 더 읽기 힘들었다. 시작점의 시작은 이었다. 돈 때문에 성매매를 시작한 여자들의 삶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할뿐더러,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어서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내 삶을 재단 받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가볍고 쉽게 그녀들의 삶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거친 삶에서 마주하는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진 채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맞아야만 했고, 그녀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잔인하고 따가운 화살촉마저 받아내야만 했다. 그녀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도 이해일 테니까.

나츠키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나츠키의 엄마가 이제는 나츠키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를 된다는 말에 솔직히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왜 나츠키를 위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츠키를 위한다는 이유로 나츠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으니까. 나츠키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을 앞서 단정지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츠키는 성매매를 하는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진실을 알아버린 자식이 견뎌내야 할 무게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잔인하고 괴로운 일이다. 훗날 나츠키는 자신 때문에 성매매를 해온 엄마의 삶을 인정하고, 엄마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된다. 나츠키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 날의 자신이 엄마에게 줬던 상처에 용서를 구하고, 자기가 내쳐버리면 아무도 잡지 않을 손들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시작점의 시작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시작점의 시작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츠키에게 향했던 혐오와 두려움이 담긴 시선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엄마를 향한 날카롭지만 물렁한 마음. 나츠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엄마의 삶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성매매를 업으로 둔 여자들의 삶은 어떨까? 성매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성매매를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가? 실제로 마주 보고 앉으면 묻지 못할 질문이 끊이지 않고 띠를 이룬다. 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 질문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니까. 이 소설에서는 성매매업을 하는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길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솔직히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매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고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된다. 성매매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성매매의 시작이 어떤 이유든지 나는 성매매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솔직히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순간을 부정하고 싶다). 성매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선택한 거라면 세상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내몰았던 거라면? 살기 위해 선택한 선택지가 사실은 자신을 괴롭게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한 거라면? 이건 단순한 동정 따위가 아니다. 여자들을 제멋대로 쓰다가 필요가 없으면 쉽게 버리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악이 담겨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분노와 악을 먹고 버텨낸 여자들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더럽고 잔인한 세상이지만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들의 방식은 손가락질 받지만, 그들은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삶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까. 타인의 삶을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지나치게 허용 범위를 넓히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면 된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으면, 그걸로 끝이다. 타인이니까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허용하고 멈추는 것이다. 타인이 허용해달라고 나에게 강요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시작점의 시작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뭔가 우쭐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시작이 나라는 거니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소설이다. 시작이 시작으로만 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소설은 시작이 시작으로만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시작점의 시작에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 책은 서평을 위해 책읽는수요일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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