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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평점 :
시작점의 시작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치카노 아이, 『시작점의 시작』(책읽는수요일)
소설에 대해 평을 하는 게 조심스러운 건 오랜만이다. 어떤 말을 해도 (감사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의 본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설에 대한 평을 할 수 있는 건 독자가 할 수 있는 중요하고 아주 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 소설을 읽고 든 생각과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엄마가, 이제는 나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려 한다.’라는 소설을 소개하는 한 문장은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해’라는 표현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성매매를 해온 여자들의 이야기들은 시작점의 시작이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너무 닮아서 더 읽기 힘들었다. 시작점의 시작은 ‘돈’이었다. 돈 때문에 성매매를 시작한 여자들의 삶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할뿐더러,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어서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내 삶을 재단 받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가볍고 쉽게 그녀들의 삶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거친 삶에서 마주하는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진 채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맞아야만 했고, 그녀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잔인하고 따가운 화살촉마저 받아내야만 했다. 그녀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그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도 이해일 테니까.
나츠키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나츠키의 엄마가 이제는 나츠키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를 된다는 말에 솔직히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왜 나츠키를 위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츠키를 위한다는 이유로 나츠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으니까. 나츠키가 짊어져야 하는 것들을 앞서 단정지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츠키는 성매매를 하는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진실을 알아버린 자식이 견뎌내야 할 무게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잔인하고 괴로운 일이다. 훗날 나츠키는 자신 때문에 성매매를 해온 엄마의 삶을 인정하고, 엄마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된다. 나츠키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 날의 자신이 엄마에게 줬던 상처에 용서를 구하고, 자기가 내쳐버리면 아무도 잡지 않을 손들을 외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시작점의 시작’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시작점의 시작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츠키에게 향했던 혐오와 두려움이 담긴 시선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엄마를 향한 날카롭지만 물렁한 마음. 나츠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엄마의 삶을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성매매를 업으로 둔 여자들의 삶은 어떨까? 성매매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성매매를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가? 실제로 마주 보고 앉으면 묻지 못할 질문이 끊이지 않고 띠를 이룬다. 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할까. 질문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니까. 이 소설에서는 성매매업을 하는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길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솔직히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매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고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된다. 성매매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성매매의 시작이 어떤 이유든지 나는 성매매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솔직히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순간을 부정하고 싶다). 성매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선택한 거라면 세상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내몰았던 거라면? 살기 위해 선택한 선택지가 사실은 자신을 괴롭게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한 거라면? 이건 단순한 동정 따위가 아니다. 여자들을 제멋대로 쓰다가 필요가 없으면 쉽게 버리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악이 담겨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분노와 악을 먹고 버텨낸 여자들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더럽고 잔인한 세상이지만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들의 방식은 손가락질 받지만, 그들은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삶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테니까. 타인의 삶을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지나치게 허용 범위를 넓히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면 된다.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으면, 그걸로 끝이다. 타인이니까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허용하고 멈추는 것이다. 타인이 허용해달라고 나에게 강요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시작점의 시작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뭔가 우쭐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시작이 나라는 거니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소설이다. 시작이 시작으로만 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소설은 시작이 시작으로만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시작점의 시작에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 이 책은 서평을 위해 ‘책읽는수요일’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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