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니가 좋아요 문지아이들 180
신현이 지음, 정주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신현이 동화집 정주희 그림, 나는 언니가 좋아요(문학과지성사)

 

제목이 그냥 좋았다. 제목만 보고, 늘 원수 같은 여동생이 생각났다. 지금은 서로 일상이 있다 보니 연락과 만남이 거의 없지만, 어렸을 땐 퍽-, 다정했다고 엄마한테 들었다. 노란색 차에서 내리면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여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엄마는 숨어서 우리를 지켜봤다). 솔직히 엄마한테 여동생과 있었던 어렸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으면 안도한다. 얼굴 마주보는 것도 어색한 지금이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다정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거니까(근데 내 여동생은 언니가 있어서 좋았을까? 나를 좋아했던 적이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표지를 환하게 밝히는 언니와 동생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동생 얼굴이 내 여동생 어릴 적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보고, 깊숙이 넣어뒀던 추억을 꺼내 회상하고 말았다. 특별할 것 없는 제목인데.

이 동화집에 실린 세 편 모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당장 특별해 보이고 반짝이는 것을 좇는다. 사납고 불편한 요즘, 만나기 어려운 작품을 만난 것 같아서 반갑다. 오랜만에 읽으면서 마음의 그래프가 일정한 높낮이를 유지하는 책을 읽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솔직함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렸을 때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솔직함을 표현한 적이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의 것이 좋아 보이고 만져 보고 싶은 동생, 바쁜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아이, 아빠의 새아빠가 되어주기로 한 아이. 스토리마다 등장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뽀송하고 티끌 없이 맑다고 해야 할까, 만나면 아무 말없이 안아주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예쁘다. 세상 곳곳에 이런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사납고 거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보다 세상을 앞서 건 어른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자 의무니까.

아이들의 꾸밈없어서 마음을 울리는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던 여동생이나 남동생, 혹은 언니나 오빠가 보고 싶을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 동화집을 통해 어린 날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어린 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그날들의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직접 선택한 책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받았다:)

 

#나는언니가좋아요 #신현이 #정주희_그림 #문학과지성사 #동화집추천 #아이 #언니 #엄마 #가족 #사랑 #마음 #순수 #따뜻함 #책로그 #241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하는 목마 문지아이들 그림책
보탄 야스요시 지음, 김영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정되어야 할 것은,

보탄 야스요시 글 그림, 여행하는 목마(문학과지성사)

(아일랜드(김지완 글 경혜원 그림/2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우수서평단 선정으로 받은 도서 1)

 

목마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그림책이다. 목마를 매주 타러 오는 남자아이가 지어준 이름은 블랑. 블랑은 블랑이라는 이름이 특별하고 소중할 것이다. 이름이 생긴다는 건 존재를 잃지 않는 이유니까.

남자아이가 지어준 이름을 새긴 채 블랑은 곳곳을 다닌다. 곳곳을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마주쳐야 했을 상황들을 생각하면 블랑은 오직 앞으로향한다. 블랑이 곳곳을 돌아다닌 것은 블랑 의지가 아니다. 그저 그 시공간에서 블랑의 역할을 다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이름이 생긴 날, 형제의 친구들과 함께 달렸던 날, 리본을 달아 준 여자아이를 만난 날,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얼굴을 만난 날, 그리고 돌아 돌아 자신에게 블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남자아이였던 노인을 만나 평화롭게 보냈던 날 모두 블랑은 행복하게 기억한다. 블랑은 자신의 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등에 누구를 태울지 알 수 없는 설렘을 매번 느낀다. 자신의 쓸모와 자신의 쓸모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진 블랑이 대단하고, 부럽다. 나의 쓸모에 늘 자신이 없고, 뒤로 빠지기에 급급한 나니까. 블랑은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추억을 만들어 기억으로 쌓았고, 또 다른 새로운 삶을-누군가를 등에 태워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살 준비를 마쳤다. 블랑의 새로운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그림책을 보면, 목마 블랑이 고정되어 있다. 블랑이 고정되고, 블랑의 주변이 바뀐다. 작가가 왜 블랑은 고정으로 두고, 블랑의 주변(시공간)에 변주를 줬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했다. 블랑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바뀌면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걱정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느끼면서 주변에 적응했고, 자신의 역할을 항상 다했다. 그렇게 블랑은 단단해졌다.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곧으면, 주변의 변화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훗날 떠올렸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마음은 고정으로 두고, 변하는 주변을 조금 더 유하게 바라보는 연습도 말이다.

 

이 책은 우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직접 선택한 책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받았다:)

 

#여행하는목마 #보탄야스요시 #문학과지성사 #그림책추천 #목마 #블랑 #아이 #이름 #추억 #역할 #쓸모 #존재 #존재의_이유 #책로그 #241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극곰 아빠 라임 그림 동화 41
조르조 볼페 지음, 파올로 프로이에티 그림, 김자연 옮김 / 라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과 가족의 새로운 형태

조르조 볼페 글 파울로 프로이에티 그림, 북극곰 아빠(라임)

 

날이 쌀쌀해진 요즘 읽기 좋은 겨울 그림책을 만나게 되어 좋았다. 표지를 가득 채운 북극곰과 펭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북극에 사는 북극곰과 남극에 사는 펭귄의 만남이라니. 둘이 함께 있다는 설정이 전혀 맞지 않지만, 뭐 누군가의 펜 끝에서 탄생하는 세상에서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불가능한 일들은 매번 사랑과 우정, 그리고 상상력에서 가능한 일로 탈바꿈한다. 그 탈바꿈을 북극곰 아빠에서 볼 수 있다.

북극곰 아빠 토모와 아기 펭귄 팔리노의 따뜻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올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솜뭉치를 마음에 간직할 수 있다. 팔리노가 알을 깨고 나와서 처음 마주한 세상은 토모였다. 서로에게 서로의 세상이 되어주는 특별하고도 귀한 순간이다. 팔리노는 토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팔리노는 토모의 따뜻하고 든든한 품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면서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어떤 색이 있는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다. 팔리노의 궁금증은 여름이 되면 다채로운 색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토모의 말에 설렘은 배가 되고, 여름이 빨리 오길 기다린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는 것은 팔리노가 그만큼 자란다는 의미면서 동시에 팔리노가 토모의 품을 떠나 자신과 같은 종족이 펭귄의 무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기도 한다. 토모는 필라노와의 이별을 필라노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준비했지만 이별의 상황을 정면을 마주하게 되면 아쉬움과 서운함이 큰 법이다. 하지만 토모는 팔리노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팔리노 곁을 조용히 떠난다. 주황색을 궁금해하던 팔리노는 주황색을 직접 보게 되었고, 토모를 잃게 되었다. 팔리노는 토모 없이 여러 계절을 보냈고, 고래 말레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 우연히 곰 발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 아빠 토모의 발자국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 끝엔 정말 토모가 있었다! 토모는 자신을 찾아온 팔리노를 보고 진심으로 좋아한다. 토모만큼 팔리노도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토모와 팔리노 재회하는 모습 뒤로 활짝 핀 무지개를 보니 팔리노가 더이상 세상의 색이 궁금하지 않다고 하는 말에 대한 여운이 짙어졌다. 그렇다. 팔리노는 세상을 물들인 색들이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아빠 토모와 함께 있을 때 세상을 채운 색들이 궁금했던 것이다. 잠깐의 헤어짐 속에서 토모와 팔리노는 서로가 서로의 색이면서 동시에 세상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북극곰과 펭귄의 만남이라니 특별하고 소중한 우정이자, 사랑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와도 서로를 향하는, 위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반드시 이겨내고 더 단단해질 것이다. 토모와 팔리노의 특별하고도 귀한 세상 이야기를 만나게 해준 작가님이 이 둘의 만남을 구상하면서 누구나 바라는 사랑과 우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이 만나게 해준 토모와 팔리노와의 특별한 인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서로에게 세상이 되어주는 둘의 예쁜 마음도 본받으며 말이다.

팔리노가 주황색이 궁금하다고 했지만, 토모가 주황색은 안 된다며 소리치며 눈이 촉촉해지는 장면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토모의 얼굴, 그리고 토모의 눈동자에 비친 팔리노. 토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팔리노의 입장보다 토모를 주로 맡았던 입장이라서 그런지 몰입이 짙어졌다. 아쉬움, 슬픔, 서운함 속에서 언젠가 보여줘야 한다는 걸 아는 토모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장면 묘사는 이 그림책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먼 훗날 팔리노가 토모처럼 아빠가 된다면, 토모가 팔리노를 만나는 순간과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기분, 감정 등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토모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세상이 된다는 건 정말 귀하고 특별한 일이니 말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가족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사랑이라는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랑을 주고받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고 바쁘달까. 색이라고 하얀색과 검은색, 파란색뿐인 겨울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낯선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줄 든든한 품이 있다는 것이 바로 사랑, 이다. 넘쳐나는 사랑을 몸소 실천해준 토모와 더불어 그 사랑에 보답하듯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의 색을 다 보고 느끼고 다시 자신을 안아준 품으로 돌아온 팔리노의 모습이 예쁘다. 앞으로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토모와 팔리노를 보러 자연스럽게 북극곰 아빠를 펼칠 것 같다.

 

이 책은 스토리 상상 이벤트에 당첨되어 라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북극곰아빠 #조르조볼페 #파올로프로이에티 #라임 #겨울그림책 #이벤트당첨 #증정도서 #서평 #북극곰 #펭귄 #사랑 #우정 #가족 #책로그 #241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복수의 여신의 탄생은 예견한 일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 외 15, 복수의 여신(현대문학)(가제본)

 

복수의 여신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973년에 설립된 영국의 비라고 출판사 50주년을 기념에 기획된 작품이다, 제각각으로 보이는 열여섯 편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국적과 인종, 성적 정체성과 문화, 세대를 뛰어넘어 인간 보편의 불안과 고뇌를 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차별적 언어를 전복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퀴어와 장애, 사이버 불링, 세대 갈등, 기후 위기와 같은 동시대 고민까지 더해져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고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기획된 의도조차 확장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의 글쓰기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개인에서 출발해서 우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은 개인이 갖고 있는 세계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책의 등장이 반갑고, 더 넓은 세계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열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잘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서문에서 이 책을 집어든 여성은 영영 회복이 어려울지도 모르며, 여성 독자라면 각오를 하라고해서 얼마나 사납고 거칠고, 직접적인 이야기일지 긴장과 궁금증이 동시에 들었다. 여성이라서 충격을 받거나 휴유증을 감당해야 하는 거라면 그건 여자로 태어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는 책임감마저 들었다. 솔직히 여자이지만 아직 여자를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세상의 일을 겪어보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듣기만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내가 할 수 있을지 등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 하며 참았던 부분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무난하게 물 흐르듯 문장을 넘겼다. 그러다 덜컹, 거리는 부분에서 잠시 문장에 밑줄을 치고 곱씹으며, 답 없는 종이에 답하라며 펜을 꾹꾹- 누르기도 했다. 소설마다 보여주는 것들이 달랐지만, 같은 곳을 향해 가는 것처럼 마지막 문장 끝에 드는 생각과 질문은 비슷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끊이지 않는 문제들이, 먼 과거에서부터 일어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살이 불어나듯 깊고 넓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서웠다. 애초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세상에 생긴 것이며, 그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건 여성의 입장에서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낀 건 처음이다. 내가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서 그저 멍하니 수많은 여성이 목놓아 소리치는 모습을 두려움에 떨면서 바라보는 기분이다. 열여섯 명의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가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적나라해서 마음이 덜컥,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여성 작가들의 릴레이 속에서 여성의 언어는 세계의 절반이 아닌 세계 그 자체가 되고, 때로는 세계의 전부를 넘어서는 세계가 되며(천선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쓰여온 이 말들을 여성 작가들이 줍고, 엉겨 붙은 것들을 걷어내고 단단히 손에 쥐며 그리고 일제히, 던지는(김하나)’ 것을 깨달았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차별적인 언어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칭하는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어를 주워서 여성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엉겨 붙은 것들을 떼어내고 남은 본래의 것을 손에 쥔 채 앞으로, 저 멀리 던져 버리는 수많은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복수의 여신이 여성 작가들의 시간과 책상, 종이, 의자, 펜 끝에서 탄생하여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 독자 또는 이 책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나게 된 독자들과의 인연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으로 실린 용 부인의 비늘여성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라고 느껴져 여운이 길게 남았다. ‘월경폐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이 이렇게 짙을 줄 몰랐다. 여성이라면 당연히생리를 하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라는 수식을 붙일 만큼 여성의 삶을 순환한다고만 생각했다. 폐경을 여성의 삶에 포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생리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했다. 월에 일주일은 감정과 통증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은 귀찮은 여성으로서의 매월 행사 같은 개념이었다. 여성으로서 여성이라서 가능한 육체적인 변화를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불편하고 불쾌하게만 생각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월경과 폐경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이 용 부인의 비늘을 통해 여성의 삶, 즉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생리로 인한 통증은 곧 내가 살아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육체의 신호라는 것을, 세상 곳곳에서 용 부인이 될 준비를 하거나 용 부인이 될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여성의 삶이 고귀하면서도 거칠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복수의 여신을 읽는 여성 독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거나 짙은 여운에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뜨겁고 물컹한 걸 느꼈다.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서 답답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여성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닮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조금 확신한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출판사에서 가제본을 받았습니다:D

 

#복수의여신 #마거릿애트우드외15#현대문학 #가제본 #서평단 #여성 #소수자 #퀴어 #젠더 #모욕 #멸칭 ##죽음 #진보 #능동 #수동 #저항 #영웅 #대상화 #언어 #거칠고_사납다 #김하나_천선란추천 #비라고 #책로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일랜드 - 제20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79
김지완 지음, 경혜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차크라마 섬에서 만나 며칠 밤새우며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