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탉의 비밀 기지 문지아이들 181
주미경 지음, 정진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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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가 되는 건 별거 없다. (별거 아닌 게 더 별거다. 어렵다.)

주미경 글 · 정진희 그림, 오탉의 비밀 기지(문학과지성사 · 문지아이들)

 


금방 술술 읽히는 동화였다. 탁이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문장들이 너무 좋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라서 탁이의 감정을 공감할 뿐만 아니라, 이입도 확실히 됐다. 이입하면서 오리(용진)와 곰(해이)에게 내가 탁이가 된 것처럼 서운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누구나 겪고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히 문장으로 표현했는데도 전혀 감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탁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상황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독자가 감정적으로만 느끼지 않고,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탁이가 서운하거나 질투를 느끼는 등 감정을 느끼는 것을 드러내면서도 자기는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여러 번 말하는 부분에서는 씁쓸했다. 탁이가 너무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는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 의도와 마음은 A인데, 상대방은 부담이 되었거나 불편했는지 B로 받아들여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으로까지 가서 서로 상처만 남는 관계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어리기도 했지만 왜 그 사소한 부분을 놓쳤을까, 후회되기도 하고 서로 어렸으니까 나를 이해해 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돌아갈 수 없는 관계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탁이와 용진이, 해이처럼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우정이 부럽다. 학창 시절의 우정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힘든 관계를 끌고 나갔으면 우정이라는 것 자체를 다시 입에 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적당한 시기에 끊어냈기 때문에 끝은 좋지 않았지만 좋았던 순간들이 있기에 우정이라는 기억 사진첩에 몇 개의 추억은 소장하고 아주 가끔 꺼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후회는 여기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세 사람의 우정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자.


탁이는 좋은 친구가 되려는 마음이 너무 크다. 한때 탁이처럼 친구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고, 다 이해하는 척하느라 뒤에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의 크기가 너무 컸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건 좋다. 하지만 다 이해하고 넘어가면서까지 좋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에도 좋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탁이는 충분히 좋은 친구다. 용진이와 해이도 탁이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표현 방법이 서툴거나 다를 뿐이지. 세 사람의 우정을, 오탉의 비밀 기지에서 나눌 비밀을 오래오래 잘 간직하길 바란다. 서로의 비밀을 털어 놓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주 아주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니까.


용진이와 해이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비밀을 나누면 가까워진다는 말이 맞다. 이별을 경험한 용진이와 해이는 힘든 시기를 넘으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탁이는 이별을 경험한 친구들이 보내는 힘든 시기를 곁에서 같이 보내면서 성장하고 있다. 수탉과 오리, 곰이 함께 있어서 이 힘든 시기를 너무 아프지 않게 보낼 수 있다. 표현 방법이 서로 달라서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서 뻥튀기 - 이요!’처럼 갈등이 터질 수 있지만 세 사람은 각자 방식대로 지혜롭게 해결할 것이다. 세 사람이 서로의 비밀을 알고 받아들이고, 오탉의 비밀 기지에서 슬픔을 같이 나눠 가지며 함께 우는 장면에서는 위로와 눈물의 진짜 의미를 아이들이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모를 거라고, 어려서 몰라도 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보다 한발 앞서서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느끼고, 자신 방식으로 감정을 숨기거나 드러낸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없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마음대로 단정하는 어리석은 어른들이 솔직하게, 그리고 자신들을 아이가 아닌 같은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길 기다리는 것이다.


오탉의 비밀 기지는 유독 탁이라는 인물에 이입해서 읽었다. 탁이가 지금도 충분히 좋은 친구니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용진이와 해이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면 바로 털어놨으면 좋겠다. 침묵이 방법일 때가 있지만, 대부분 침묵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과도 때가 있다. 만약 자신이 오해한 거라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를 하는 게 좋다. 나중은 없다. 나중으로 미루다가 좋은 친구가 될 기회도, 좋은 친구와 함께 할 기회도 시원하게 날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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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탉의 비밀 기지 문지아이들 181
주미경 지음, 정진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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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과 오리와 곰의 우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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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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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선물 세트 같은 성장소설의 의뢰!

김성미 장편소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창비)(*가제본 서평단)


 

종합 선물 세트다. 청소년 시기에 혼자 하는 고민부터 가족, 친구, 온라인 채팅 등까지 없는 게 없다. 전에 문창과 강의에서 내가 쓴 소설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묻히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안 쓰는 것만도 못 한 작품이었다.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을 읽고 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서는 계속 쓰는 연습을 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두루뭉술한 게 아니라 명확해야 하구나.’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창작 의지의 불씨를 키우는 나뭇가지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김성미 작가의 이 작품이 나의 창작 의지 불씨를 키우는 나뭇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해민이가 하는 고민, 친한 친구 주영과의 갈등, 윗집으로 이사 온 도경이, 해결 사이트의 정체, 소정이와의 갈등, 한부모 가정의 큼지막한 포인트가 작품 하나에 다 있으니, 몰입감과 가독성이 상당히 높고 빠르다. 개인적으로 작품 안에 2가지 이상을 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이지만, 이 작품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던 지난날의 나의 꿈을 실현한 작품이었다. 현실 반영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작가가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청소년 시기를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갖다 놓았다. 개인적인 고민부터 학교에서 형성된 관계의 고민, 가정 형태, 가장 심각한 온라인 범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물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독자마다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갈등의 모든 단계는 상대와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숨기고 숨기는 것이 생기면서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쌓여 눈덩이처럼 부푼 오해는 갈등으로 형태를 바꾸어 갈등이 폭발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변화를 경험한다. 진부하게 진행되는 흐름이지만, 시작과 다른 인물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변화를 보면 더 이상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민의 변화는 나의 변화처럼 뿌듯했고, 앞으로 해민이 더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하게 만들었다.


아빠 없이 반찬 가게를 하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해민, 자신의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해민, 뭐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주영이 부러운 해민. 해민의 모습은 다양하다. 해민이 해민이 아닌 모습은 없다. 상황과 조건에 맞게 자기도 모르는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해민은 자신을 위해서,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처음에는 숨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해민이 생각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내성적인 해민은 조금씩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해민을 밖으로 끌고 나왔고, 해민은 자신을 위해서 또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해민의 변화가 뿌듯하면서도 괜히 마음이 시큰거렸다.


주영과의 갈등에서 해민은 주영을 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멀어질 주영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며 숨겼다. 정보에 빠삭한 데다가 눈치 100단인 주영은 어느 정도를 눈치챘고, 당사자 해민이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짝 친구답게 서로를 위한 마음과 배려가 오해를 만들었고, 갈등을 터트렸지만 한 번쯤은 부딪쳐야 했을 상황이라는 것을 해민과 주영은 알았을 것이다. 해민과 주영과의 갈등은 청소년 시기에 여러 번, 다양한 이유로 겪는 것으로 이 갈등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관계를 다루는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긍정이 되거나 부정이 된다. 해민과 주영이라면 앞으로 생길 갈등을 현명하게 잘 넘길 것이다(나의 바람이기도 하고).


도경이라는 인물이 해민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해민의 윗집에 이사 온 도경은 해민과 비슷한 상황이다. 아빠 없이 엄마와 산다는 것. 가족 이야기가 닮아 있는 것만큼 빠르게 마음이 열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해민과 도경의 첫 만남은 어색하고, ‘먼저 말을 걸어야 했는데.’와 같은 후회를 한다. 하지만, 도경과의 만남이 필연인 것처럼 도경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상황들이 찾아온다. 도경과의 관계에서 잠깐 삐거덕거리기도 하지만, 둘은 잘 풀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특별한 존재)가 된다. 입원부터 부모님의 이혼, 전학까지 순식간에 몰아친 큰 일로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도경에게 해민은 가장 덤덤하게 다가온 존재가 아닐까 싶다. 정신없고 힘든 상황에서 괜찮을 거라고, 이해한다는 어쭙잖은 위로보다 해민의 반응이 위로되고 일상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앞으로 해민과 도경이 어떤 사이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굳이 어떤 사이가 되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오래 알고 지내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바로 생각을 읽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해민과 도경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정은 안타깝지만 밉다. 학창 시절에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로 자주 상을 받았던 나를 질투하여 뒤에서 욕하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지금 가끔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데, 그 질투심은 나에게 여전히 상처이고, 용서를 한 번도 구하지 않은 얼굴이 밉다. 그 얼굴들은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텐데 나는 혹시 모르잖아.’라는 마음을 갖고 있고, 이런 내가 답답하다. 소정이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은 잘 알겠다. 하지만 소정이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한 범죄고, 해민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지게 했다. 소정은 과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까?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소정이는 그 시기를 놓치지 말고, 해민에게 제대로 사과했으면 좋겠다. 잘못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괴롭더라도 본인을 위해서 소정이가 견뎌내야만 한다. 국어 선생님이 언급했듯 소정이는 자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날 소정은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민을 마주 보고 수줍은 미소(부끄러움과 미안함도 있을 것이다)와 함께 손을 건넬 것이다. 해민은 그런 소정의 손을 맞잡고, 어색한 공기에 괜히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누렁이를 빨리 보러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해민이는 소정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용서를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해민이가 소정이에게 보내는 문자가 용서처럼 보였다. 소정이가 부디 해민의 손을 너무 늦지 않게 잡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길 바란다.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고, 해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정이 본인을 위해서라는 것도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해결 사이트>가 없어져서 다행이다. <해결 사이트>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범죄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는 넘친다. 이 사이트를 만든 이유도, 이 사이트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다 알겠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 되었다. 이미 <해결 사이트>를 통해 사건이 벌어졌고, 다친 사람도 생겼다.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전에 사이트가 사라진 엔딩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현실에서는 아직도 <해결 사이트>와 같은 위험한 사이트들이 많다. 여전히 만들어지고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서로를 속이고 절벽으로 밀어 넣는 등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사라져야 한다, 이런 사이트들을 만들고자 마음을 먹게 하는 상황들부터.


많은 생각하게 만드는 오늘의 의뢰 : 너만 아는 비밀! 진짜 너만 아는 비밀이 한가득이다. 제목을 계속 곱씹다 보니 비밀이라는 단어가 모순이다. 나만 알 때야 비밀이지, 너만 아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데 비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비밀이 없다. 참 거짓과 모순덩어리인 것 같은데 가장 투명한 것 같다. 문득 의뢰하고 싶다. <오늘의 의뢰>오늘도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세요.’라고. 너무 싱거운 의뢰지만 가장 어려운 의뢰일 것이다. 이 의뢰만을 위해 어디선가 <오늘>이라는 이름을 건 사이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가제본은 비매품으로 가제본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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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보이즈 창비청소년문학 138
정보훈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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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달리기는 이제 시작이야,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정보훈, 시티 보이즈(창비)(*가제본 서평단)


 

읽는 동안 뻥- 뚫린 길을 달리고 또 달리는 느낌이었다. 한 번쯤 이렇게 달렸다면 내 안의 가장 아래 쌓인,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썩어서 냄새를 풍기다가 냄새마저 사라진 흉터가 지금까지 영원한 흉으로 남지 않았을 텐데 생각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고 간사해서 자신보다 불행한 삶을 사는 누군가의 삶을 통해 위로받는다. 내가 희재, 진우, 효진의 삶을 통해 위로받았다는 고백이 참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프롤로그의 끝에서 거친 숨을 있는 힘껏 내쉬었다.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려갈 때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문장은 정확히 열여덟 희재가 겪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희재는 아버지(현진)의 장례 이후, 아버지의 친구 도철을 따라서 서울로 간다. 도철의 집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진우와 진주와 함께 지낸다. 희재는 도철에게 달리기를 하겠다고, 육상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도철은 허락하지 않는다. 희재는 끈질기게 도철에게 자신이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을,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희재의 간절함에도 도철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친구의 아들로 남으면 친절하겠지만 육상부에 들어오겠다면 무서운 코치가 되겠다는 도철의 의지만큼 달리기를 향한 희재의 의지가 단단하다. 결국 도철이 두 손 두 발을 들고 육상부에 희재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으니, 희재의 의지가 도철보다 더 단단한 것 같다. 도철이 희재가 육상부에 들어오는 것을 완강히 반대한 이유가 도철이 희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지만, 그 애정이 희재의 달리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막아서도 안 되고. 도철의 반대를 꺾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희재가 참 대단했다. 단단하고 건강하고, 싱그러운 인물이라도 생각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되려 힘든 상황이라고 보이지 않게 만드는 희재가 가진 힘이 참으로 대단하고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배워야 할 점이었다. 희재의 강점이면서 앞으로 희재가 살아갈 날들에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희재가 아빠 발인 날까지 동네를 달리면서 심부름을 한 장면과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희재가 진주의 말에 그제서야 눈물을 쏟았을 때 진주 눈에 희재가 열여덟 살로 보이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눈물을 쏟는 희재를 보고, 내 눈시울이 시렸다. 버스 안이어서 다행이었을까, 버스 안이라서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던 울음을 꾹꾹, 아래로 밀어 넣었다. 혼자 있는 공간이었다면 눈앞이 흐릿해지고 훌쩍훌쩍, 하거나 희재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희재가 달리기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래서 도철도 희재를 꺾지 못한 것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희재는 달리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육상부에 들어가기 위해 희재가 했던 노력을 떠올려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희재가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가며 거의 폐지가 확정된 무진고의 육상부를 존속시키고, 전국체전에 나가기 위해 팀원들과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희재라고 수우욱-, 아래로 꺼지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 희재에게도 번아웃이 찾아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희재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빠의 그리움을 혼자서 감당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니 아빠가 더 보고 싶고 그리워서 희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쌓고 있었다. 달려도 날려 보낼 수 없는 무겁고 진득한 상처를. 희재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희재가 아닌 사람들이나 희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편안한 생각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희재에게 상처를 줬고, 읽어야 할 페이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야 희재에게 상처를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득 차 있어서 오히려 비어 보이는 것 같은 희재의 두 눈이 나에게 오래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다. 희재와 진주의 아지트인 한강 벤치를 내가 빼앗은 기분이다. 불편하고 미안한 이 마음을 희재가 알아차릴까 봐 두렵지만, 희재는 진작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20대 후반의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니까. 열여덟 같지 않은 열여덟의 희재에게 세상이 참 무심하고 차갑다. 세상이 희재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희재의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다. 줬다가 뺏는 건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 그래도 희재는 자신의 전부를 빼앗은 세상에게 굴하지 않는다. 그 굴하지 않는 희재의 마음이 희재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희재는 더 눈부신 날을 보내며, 눈부시게 성장할 것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고 시티 보이즈로 세상 곳곳을 뛰며, 육상부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희재의 눈부시고 무한한 가능성이 달리는 트랙 안을,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윤희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달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다 쏟아부을 것이다. 세상 곳곳의 희재가 열심히 달리고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빛나는 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희재 중, 한 명으로서 나만의 달리는 중이고.


희재 혼자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시간. 아버지의 친구이자 희재의 코치님인 도철, 희재의 단짝 진우, 희재의 첫사랑 진주, 육상부 팀원 효진, 그리고 고향 어른들이 있기에 희재는 버텼고 버티고 있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달리기도 있고! 처음엔 희재의 것을 다 빼앗았다고, 희재가 갖고 있는 것이 적거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재는 가진 게 너무 많았다. 너무 가득 차서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희재는 그것을 천천히, 속도를 내며 깨닫게 될 것이다. 가진 게 많다는 것은 신경 쓰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희재는 본인 방식으로 많은 것은 잘 지키고 있다. 앞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잃는 것이 있고, 주저앉을 때가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달리고 달릴 것이다.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 것이다. 그런 희재의 모습을 하늘에서 누구보다 뿌듯해하며 아빠 현진은 지켜볼 것이다. 희재도 아빠가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고 말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희재가 달리는 이유를, 자신만의 이유를 찾길 바란다. 그렇게 오래 오래, 달리기를 했으면 좋겠다.


밑줄 긋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내 글씨로 적어서 다이어리에 붙여 놓고 매일매일 읽고 또 읽어야 할 문장이 늘어나서 나를 지켜주는 성벽이 더 단단해졌다. 단단한 성벽이 나를 지키는 건 맞지만, 나를 가두지는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도 정보훈 작가님의 문장이 희재의 이야기를 통해 내게 잘 닿았다. 오래 오래, 희재의 이야기와 작가님의 문장은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곁에서 함께 달려줄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을 때마저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것이다.


시티 보이즈를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느껴지는 상쾌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희재가 대견해서 여러 번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희재도, 희재 친구들도 도철도 모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달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쏟고 있는 우리를 잘 알아주고 고생했다고 많이 칭찬해야 한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혼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각자 자신만의 길과 속도,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힘을 얻을 테니까. 얻은 힘으로 달리고, 나의 달리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테니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1등 못 하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거침없는 달리기 통해! 우리의 달리기에서 실패는 없다고 말해주는 시티 보이즈를 모두 만났으면 좋겠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우리를 응원하는 책이니까!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서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정보훈 작가님! <슬기로운 감빵생활><응답하라 1988> 너무 잘 봤는데작가님 첫 장편소설까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진짜소설 중간중간에 씬(#)으로 나온 대본은 작가님이 드라마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대단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나 드라마 시청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었고, 문예창작학과까지 졸업하게 되었는데 현실에 부딪쳐보니 쉽지 않더라구요. 실은 게으르고, 핑계만 대면서 글쓰기를 미뤘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핑계만 대고 있어요. 생각과 핑계가 많은 제게 희재는 가볍고 시원한 인물이었어요. 고민이 있지만 길게 끌지 않고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니까요. 희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일단 시작부터 해보자!).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고 완벽한 준비도 없으니까, 일단 용기를 갖고 부딪쳐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쉽지 않네ㅠㅠ 그래도 작가님 소설을 통해, 희재와 무진고 육상부를 통해 용기가 생겼고 흐릿했던 목표가 조금 선명해졌어요. 멈추고 싶을 때마다, 주저 앉을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마음에 오랫동안 간직할 문장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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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체리 라임 청소년 문학 68
캐럴 쿠예치.고다드 페이턴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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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체리를 응원해!

캐럴 쿠예치 페이턴 고다드 지음, 이계순 옮김 - 말하지 않아도, 체리(라임/청소년문학68)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라도 당신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 함께 하겠다고 해야 할지. 내 생각, 내 말이 혹여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쉽사리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채러티와의 만남을 통해 반성도, 느낀 것도, 배운 것 많다는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 오늘도 자기 속도대로 열심히 걷고 있을 채러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조심스럽게 문장을 적어본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김새와 성격, 모습 등을 한 사람들이 산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말하지 않아도, 체리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에 닿는 것보다 어려운 바람 같은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들려오는 타인을 위해 망설임 없이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었다는 소식, 그리고 뒤에 붙는 세상은 아직 살 만 하다.’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힘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는 약자들이 많다. 강자와 약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수평이 되어야지, 수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약자가 생기는 것이고 약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드물다. 누구나 약자의 입장이 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약자인 사람들은 강자가 되는 것, 아니 강자도 약자도 아닌 평범한 경계에 있는 것조차 꿈이 된다. 채러티처럼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그렇다. 솔직히 채러티 이야기를 들을수록 스스로 부끄러워져 책장을 넘기는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달시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가해를 가하거나, 동참하지 않았으나 방관자가 되어 내 멋대로 채러티와 같은 아이들은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나이에 비해 어린 지능을 갖고 있고, 일반 학교에서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도움반이라고 있었는데, 그 교실을 지나칠 때마다 힐끔 쳐다보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게 없는데 말이다. 그저 몸이 불편하거나 말하는 것이 조금 느렸을 뿐인데. 왜 그때는 그것을 다른 게 아니라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나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고, 지금도 지워지지 않을 흉으로 남았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생각하지 못한다고,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그들을 대할 때부터 동정심을 가졌다. 나의 도움이 동정심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그럼에도 나의 도움을 받았고 고맙다고 했다. 그때는 도움을 줬으니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혼자 뿌듯해했다. 이마저도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지도 모른 채. 어리다는 건 핑계다. 어려도 다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채러티는 열세 살인데 쉽지 않은 시간을 버텼다. 채러티의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가 대단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러티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낼 수 있었다. 세상이 채러티에게 잔인하게 굴었지만, 채러티는 보란 듯이 세상을 향해 보여줬다.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우리도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며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것을. 채러티의 의지와 용기가 아주 큰 역할을 했지만, 채러티 곁에는 늘 지지하고 헌신하는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 애나 선생님과 실리아 선생님이 있었기에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나도 채러티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확신에 가깝다). 세상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세상에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채러티를 가르치려고 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안일한 태도인가, 나는 채러티의 말과 행동에서 이런 나를 용서하는 채러티 모습을 봤다. 채러티는 매일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기 위해 싸우고 어렵게 손에 쥔 것들을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빼앗기고 나서 남는 공허함과 무력감, 분노를 느껴야 했다. 어쩜 세상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채러티가 학교를 가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세상이 원망스럽고, 달시와 같은 아이들과 불쾌하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향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분노는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채러티는 수많은 위기와 싸움을 버티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용서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단단한 아이였다. 엘비 이모를 용서하고, 전학 간 달시가 그곳에서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며 용서했다.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채러티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용서가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리고 실천했다. 자기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몸 때문에 자꾸 불리한 상황이 생기고,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채러티는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이겨냈다. 이것이야말로 채러티가 말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닐까? 당연한 권리가 채러티에게는 매일 싸워도 얻어질까 말까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받는 것은 언제나 채러티였다. 채러티를 둘러싼 것들이 그녀를 억지로 어른스럽게, 그리고 그녀를 고통의 동굴에 가뒀다. 채러티의 단단함이 스스로 그녀를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비로소 누구나 보고 만질 수 있는 햇빛의 한 줄기에 닿게 되었다. 채러티로부터 느끼고 배운 것들이 많다. 이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도 채러티처럼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나를 돌보며 노력해야겠다.


채러티와 같은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나와 다르다고 구분 짓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오랫동안 해봐야겠다. 채러티는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고, 임무 수행을 끝으로 더 많은 이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채러티의 앞으로의 삶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응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그동안 말하지 못하는 채러티를 생각하지 못한다고 제멋대로 단정하고 바라본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세상 모든 채러티를 응원하고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반성, 용서를 알려준 채러티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앞으로 채러티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어려움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채러티는 두려워하지 않고, 보란 듯이 맞서서 이겨낼 것이다. 채러티는 단단하고 강인하며,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곁을 지킬 테니까. 마지막쯤에 채러티는 자신의 본모습 있는 그대로 자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 고백인가. 채러티의 고백에 마음 어딘가에서 물컹한 것이 올라와 목구멍에 턱-, 걸렸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일을 채러티는 열세 살에 해냈고 나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채러티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반대로 채러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채러티의 삶을 보고 내 삶이 더 낫다고 위로를 삼았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지질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채러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아내며 누군가에게 긍정의 힘을 주는 영향력 있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채러티가 걸어왔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체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줘서 고맙다고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전한다.

말하지 않아도, 체리를 통해 세상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세상이 다정한 하고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다정해졌으면 좋겠다. 인류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채러티가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고 단정했던 일들을 보란 듯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채러티처럼 인류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을 배우고 나눌 줄 알아야 하며, 온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니까.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소속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격렬한 싸움 끝에 겨우 얻어낸 아주 귀중한 것이니까. 내가 갖고 있다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에 한 번쯤은 감사함을 갖고, 당연한 것들을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함께 해야 한다. 그들에게 편견, 연민 없는 시선을 보낼 때, 그들을 진정 이해할 수 있고 비로소 그들이 말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의 진심에 반응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고. 그 세상에 언제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채러티와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 세상에서 아주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서로 마주 보는 그날까지 세상 곳곳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귀를 기울이며, 세상과 끊임없이 부딪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날카로운 것도 계속 부딪치면 닳게 되어 있다. 닳고 나면 날카로웠던 때는 까마득하고, 둥글어진 모습으로 서로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둥글어진다면 그건 다 세상 모든 체리와 그들과 함께 한 이들 덕분이다. 나도 체리 곁에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이제라도. 더 이상 체리가 다치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체리가 환히 웃을 때 세상은 알록달록, 각자만의 색으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채러티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채러티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어리석고 부끄러운 생각과 태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것과 용서가 무엇인지,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채러티가 완벽하게 알려줬다. 그녀가 알려준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은 내 몫이다. 채러티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더불어 사는 삶과 용서하는 것, 단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일에 주눅 들었던 날들뿐이었다. 근데 오늘부터는 다를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부끄러움을 갖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일에는 주눅 들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꿋꿋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나의 모든 선택에 채러티는 지지해줄 것이다. 그녀의 응원을 받아서 나는 장애물과 정면으로 맞서고,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의 내가 될 것이다. 채러티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기대된다. 우리의 내면이 더 알차게 익을 때까지(단단해질 때까지) 채러티로부터 얻은 것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날들을 매일 상상하며,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라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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