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보이즈 창비청소년문학 138
정보훈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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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달리기는 이제 시작이야,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정보훈, 시티 보이즈(창비)(*가제본 서평단)


 

읽는 동안 뻥- 뚫린 길을 달리고 또 달리는 느낌이었다. 한 번쯤 이렇게 달렸다면 내 안의 가장 아래 쌓인,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썩어서 냄새를 풍기다가 냄새마저 사라진 흉터가 지금까지 영원한 흉으로 남지 않았을 텐데 생각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고 간사해서 자신보다 불행한 삶을 사는 누군가의 삶을 통해 위로받는다. 내가 희재, 진우, 효진의 삶을 통해 위로받았다는 고백이 참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프롤로그의 끝에서 거친 숨을 있는 힘껏 내쉬었다.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려갈 때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문장은 정확히 열여덟 희재가 겪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희재는 아버지(현진)의 장례 이후, 아버지의 친구 도철을 따라서 서울로 간다. 도철의 집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진우와 진주와 함께 지낸다. 희재는 도철에게 달리기를 하겠다고, 육상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도철은 허락하지 않는다. 희재는 끈질기게 도철에게 자신이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을,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희재의 간절함에도 도철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친구의 아들로 남으면 친절하겠지만 육상부에 들어오겠다면 무서운 코치가 되겠다는 도철의 의지만큼 달리기를 향한 희재의 의지가 단단하다. 결국 도철이 두 손 두 발을 들고 육상부에 희재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으니, 희재의 의지가 도철보다 더 단단한 것 같다. 도철이 희재가 육상부에 들어오는 것을 완강히 반대한 이유가 도철이 희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지만, 그 애정이 희재의 달리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막아서도 안 되고. 도철의 반대를 꺾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희재가 참 대단했다. 단단하고 건강하고, 싱그러운 인물이라도 생각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되려 힘든 상황이라고 보이지 않게 만드는 희재가 가진 힘이 참으로 대단하고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배워야 할 점이었다. 희재의 강점이면서 앞으로 희재가 살아갈 날들에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희재가 아빠 발인 날까지 동네를 달리면서 심부름을 한 장면과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희재가 진주의 말에 그제서야 눈물을 쏟았을 때 진주 눈에 희재가 열여덟 살로 보이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눈물을 쏟는 희재를 보고, 내 눈시울이 시렸다. 버스 안이어서 다행이었을까, 버스 안이라서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던 울음을 꾹꾹, 아래로 밀어 넣었다. 혼자 있는 공간이었다면 눈앞이 흐릿해지고 훌쩍훌쩍, 하거나 희재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희재가 달리기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래서 도철도 희재를 꺾지 못한 것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희재는 달리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육상부에 들어가기 위해 희재가 했던 노력을 떠올려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희재가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가며 거의 폐지가 확정된 무진고의 육상부를 존속시키고, 전국체전에 나가기 위해 팀원들과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희재라고 수우욱-, 아래로 꺼지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 희재에게도 번아웃이 찾아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희재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빠의 그리움을 혼자서 감당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니 아빠가 더 보고 싶고 그리워서 희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쌓고 있었다. 달려도 날려 보낼 수 없는 무겁고 진득한 상처를. 희재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희재가 아닌 사람들이나 희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편안한 생각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희재에게 상처를 줬고, 읽어야 할 페이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야 희재에게 상처를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득 차 있어서 오히려 비어 보이는 것 같은 희재의 두 눈이 나에게 오래 머무르고 있는 기분이다. 희재와 진주의 아지트인 한강 벤치를 내가 빼앗은 기분이다. 불편하고 미안한 이 마음을 희재가 알아차릴까 봐 두렵지만, 희재는 진작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20대 후반의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니까. 열여덟 같지 않은 열여덟의 희재에게 세상이 참 무심하고 차갑다. 세상이 희재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희재의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다. 줬다가 뺏는 건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 그래도 희재는 자신의 전부를 빼앗은 세상에게 굴하지 않는다. 그 굴하지 않는 희재의 마음이 희재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희재는 더 눈부신 날을 보내며, 눈부시게 성장할 것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고 시티 보이즈로 세상 곳곳을 뛰며, 육상부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희재의 눈부시고 무한한 가능성이 달리는 트랙 안을,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윤희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달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다 쏟아부을 것이다. 세상 곳곳의 희재가 열심히 달리고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빛나는 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희재 중, 한 명으로서 나만의 달리는 중이고.


희재 혼자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시간. 아버지의 친구이자 희재의 코치님인 도철, 희재의 단짝 진우, 희재의 첫사랑 진주, 육상부 팀원 효진, 그리고 고향 어른들이 있기에 희재는 버텼고 버티고 있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달리기도 있고! 처음엔 희재의 것을 다 빼앗았다고, 희재가 갖고 있는 것이 적거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재는 가진 게 너무 많았다. 너무 가득 차서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희재는 그것을 천천히, 속도를 내며 깨닫게 될 것이다. 가진 게 많다는 것은 신경 쓰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희재는 본인 방식으로 많은 것은 잘 지키고 있다. 앞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잃는 것이 있고, 주저앉을 때가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달리고 달릴 것이다.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 것이다. 그런 희재의 모습을 하늘에서 누구보다 뿌듯해하며 아빠 현진은 지켜볼 것이다. 희재도 아빠가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고 말이다.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희재가 달리는 이유를, 자신만의 이유를 찾길 바란다. 그렇게 오래 오래, 달리기를 했으면 좋겠다.


밑줄 긋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내 글씨로 적어서 다이어리에 붙여 놓고 매일매일 읽고 또 읽어야 할 문장이 늘어나서 나를 지켜주는 성벽이 더 단단해졌다. 단단한 성벽이 나를 지키는 건 맞지만, 나를 가두지는 않게끔 해야 한다는 것도 정보훈 작가님의 문장이 희재의 이야기를 통해 내게 잘 닿았다. 오래 오래, 희재의 이야기와 작가님의 문장은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곁에서 함께 달려줄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을 때마저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것이다.


시티 보이즈를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느껴지는 상쾌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희재가 대견해서 여러 번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희재도, 희재 친구들도 도철도 모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달리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쏟고 있는 우리를 잘 알아주고 고생했다고 많이 칭찬해야 한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혼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각자 자신만의 길과 속도,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힘을 얻을 테니까. 얻은 힘으로 달리고, 나의 달리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테니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1등 못 하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거침없는 달리기 통해! 우리의 달리기에서 실패는 없다고 말해주는 시티 보이즈를 모두 만났으면 좋겠다!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우리를 응원하는 책이니까!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서 창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정보훈 작가님! <슬기로운 감빵생활><응답하라 1988> 너무 잘 봤는데작가님 첫 장편소설까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진짜소설 중간중간에 씬(#)으로 나온 대본은 작가님이 드라마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대단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나 드라마 시청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었고, 문예창작학과까지 졸업하게 되었는데 현실에 부딪쳐보니 쉽지 않더라구요. 실은 게으르고, 핑계만 대면서 글쓰기를 미뤘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핑계만 대고 있어요. 생각과 핑계가 많은 제게 희재는 가볍고 시원한 인물이었어요. 고민이 있지만 길게 끌지 않고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니까요. 희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일단 시작부터 해보자!).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고 완벽한 준비도 없으니까, 일단 용기를 갖고 부딪쳐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쉽지 않네ㅠㅠ 그래도 작가님 소설을 통해, 희재와 무진고 육상부를 통해 용기가 생겼고 흐릿했던 목표가 조금 선명해졌어요. 멈추고 싶을 때마다, 주저 앉을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는 이야기, 마음에 오랫동안 간직할 문장을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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