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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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방법
: 이치훈 에세이, <명상하는 마음>(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ost <어른>은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어른>을 작사한 이치훈 작사가의 첫 에세이를 읽게 되다니 별 인연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명상하는 마음> 첵제목 아래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이라는 한 문장이 마음을 천천히 새겨졌다. 고요와 온전한 나, 빛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이질적이고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명상하는 마음>. 1장은 <그림자를 사랑하는 연습>, 2장은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1장은 이치훈 작사가가 아닌 ‘사람 이치훈‘의 이야기였다. 가장 숨기고 싶고 본인조차 본인에게서 도망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위한 삶을 산 상처와 아픔에 절여진 사람 이치훈이었다. 즉. 사람 이치훈의 지난날 고백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아파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각자 도망치고 싶고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상처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니까. 세상에 발표한 노래가 꽤 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작사가 이치훈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나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상처 받고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어서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사가가 명상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냥 유명세 입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얹어서 글 한 편 세상에 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다정함이 전혀 없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음 끝에는 부끄러움과 반성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명상이라는 주제로 흰 종이를 가득 채운 다른 도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르치려기 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명상에 관련한 책보다 더 신뢰가 가고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문장마다 이치훈 작사가의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명상으로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각자만의 고요에 닿길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내 안에 고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고요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처음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고요를 찾아서 내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내가 바라던 자유에 닿고 싶다.
2장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을 찾는다. 고요에 가닿는 길은 정말 고단했다. 이 길 끝에 진짜 고요가 있을지 의심이 들고,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이치훈 작사가도다 똑같이 말한다. 받아들이고, 이름을 붙이고, 멈춰보라고.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라고. 뻔한 말이지만 이치훈 작사가만의 특정한 톤이 똑같은 말에 진정성을 담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냥 얼버무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곱씹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받아들임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두 번 효과를 봤다. 출근길에 일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불안이라고 속으로 이름을 붙이니 한결 나아졌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나아진다는 것을 꾸준히 하지 않고서 계속 불안에만 떠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깨달았다. 
 주말에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분명 주말에 일이 아니라 쉬었는데도 짜증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누워서 쉬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계속 다음주에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등 쉬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니 당연히 몸도 편하지 않을 수밖에.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고 쉰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쉼은 몸이 먼저 멈추고, 몸 안에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음이 자리 잡으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몸과 마음이 묻는 안부에 답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답을 해줄 것이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쉼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니까.
미소와 자세와 호흡은 한 세트다. 미소를 지어보라기에 나는 타인에게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한숨부터 나왔다. 틀렸다. 나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미소는 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다. 나에게 미소 지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보여야 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거칠고 모질었다. 남한테 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했더라면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버티는 힘을, 나는 잘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족하지 않게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짠하게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반복하면 다정함과 친절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도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하다보니 요즘 짜증이 늘고 한숨으로 얼굴이 그늘져가고 있던 것을 느끼던 참이다. 그런데 짜증과 한숨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내가 참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내 속이 썩어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치훈 작사가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미소와 더불어 호흡과 자세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내 하루는 전과 다르게 밝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미소도 덧붙여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게 뭔하는 건가 싶고, 이걸로 변화가 생기기나 할지 의문이 들겠지만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자세와 호흡, 미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믿고 싶다. 나의 가벼운 하루하루를 위해서.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고통을 가장한 깨달음을 매순간 주는 것 같다. 한때는 신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만 있는 거냐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는데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며 원망하고 따지기도 했다(나의 원망이 신에게 가닿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이 불행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을 거라고 적어도 믿고 싶으니까.). 영원히 볼 일 없을 신을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신도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도 특별한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깨닫고 경험한 모든 것이 명상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각자만의 명상법을 매일 만들고 찾는 중이다. 아마 지구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상법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명상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이라면 자신에게 정답이다. 답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는 대신 나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발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삶은 이미 삶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쳐준 게 끝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이 가르쳐준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이 가르쳐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것 중에 몇 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였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내 이름을 건 이 지구별에서 단 하나뿐인 삶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된다.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이야기, 제안한 것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 시간들 너무 애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놓쳐버린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아주 잠깐 내 안에 머물다 바람타고 저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흰 종이에 수놓은 검은 글씨의 솔직한 다정함. 진심으로 각자의 고요에 가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이치훈 작사가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 마음을 그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함께 해준 웅진지식하우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한때 명상을 거창하고, 닿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명상은 세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명상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고, 어수선한 마음(안)이 차분해지면 감각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내가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배운 명상은 감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이다. 명상을 자주 해야겠다, 나의 고요에 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마 오랜 수행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오래 걸려도 좋다, 생각지 못 할 때 고요에 닿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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