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이라는 스캔들
나이토 치즈코 지음, 고영란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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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지 독자와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책의 제목과 꾸밈이다. 소위 책 제목이 얼마나 근사한지’, ‘책 디자인이 깔끔한지등은 책을 접하는 독자의 첫인상을 좌우하고 따라서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별개로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우선 이 책은 나를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전해주리라 생각한다. 암살이라는 스캔들이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지녔다.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이 선명한 가운데 옛 일본신문 기사들이 혼재되어 있는 표지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겠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일본 신문을 중심으로 미디어 이야기(서사)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미디어 서사의 양의성(兩意性)과 정형(定型), 양의성이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혹은 비틀리는) 방식과 비유 등이 저자의 분석 대상이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미디어 이야기의 정형화된 구조이다. 당시 미디어에서 질병, 여자, 식민지 등은 약한 존재 또는 뭔가 결함이 있는 것을 상징했다. 이는 남성 젠더로 상징되는 근대국가 일본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멸시 내지는 반대로 일본의 보호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2부는 그러한 비유 구조가 암살 사건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를 분석했다. 조선 민비의 암살과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대한제국 병합, 메이지천황의 병사 등이 주요 분석대상이다. 이런 사건을 당시 미디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야기 속에 담긴 미디어의 욕망을 들추었다.

책은 당시의 다양한 기사를 제시해 아이누민족이 어떻게 표상되었는지, 마찬가지로 조선의 민비를 어떻게 표상했고 그 구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재현되고 혹은 사라지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근대국가 일본과 일본이 보호해야 할 식민지 조선이 어떤 관계로 비유되고 그러한 구조가 영친왕이나 안중근에 관한 기사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또한 설명한다. 대단원은 천황의 병사이다. 저자는 천황의 투병 경과에 대한 언론의 상세한 묘사가 천황을 기존의 성역에서 끌어내렸다고 본다. 나아가 이는 완전무결한 가족의 서사나 식민지 서사에도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천황이 암살당하는 것이 오히려 미디어를 기쁘게 했을지 모른다는 본문 마지막 문장은 미디어의 양의성에 대한 책 전체의 논증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비단 미디어 분석에 관심이 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아이누민족의 흡수로 대변되는 근대 일본민족 및 일본 국가의 형성과정 또는 같은 시기 조선(대한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도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양자를 상호보완적으로 내지는 어느 정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채 읽고자 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즉 미디어 비평의 관점에서는 역사를,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미디어 비평의 분석 방법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메이지시대 일본이 조선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이 막 문호를 개방하고 비로소 근대문물을 조금씩 수용하는 와중에 청, 일본, 러시아 등 세력 다툼으로 자립에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국내 상황을 이미 정비하고 조선에 진출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책에 실린 김옥균과 민비 등 조선왕실 내부사정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일본이 조선 사정에 얼마나 밝았는지 또 이미 상당히 개입을 하고 있었음에도 겉으로는 일본의 의도를 철저히 감추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당시 조선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제국일본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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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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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이 기획한 역사교양서 20세기 한국사시리즈 중 네 번째로 한국 현대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전념해온 정해구 선생 작 전두환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발간되었다. 20세기 한국사시리즈는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을 식민지,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로 특징짓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십분 반영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서 서술을 목표로 기획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이 책은 민주화, 그 가운데서도 80년대의 그것에 관한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독자의 한 명으로 이 책의 출간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기만 한 ‘1980년대가 본격적인 역사서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자못 놀랍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본격화한 한국현대사 연구는 그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쳐 박정희 정부 시기까지 연구영역을 넓혀왔지만 1980년대 연구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1980년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한국현대사 연구에 등불을 비춘 1980년대가 시간이 지나 어느덧 그 자체 역사적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 외에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이 시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빠르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출간이 다소 늦은 점 또한 없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86세대라 불렀던(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30대가 아닌) 40대와 그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결코 과거가 아닌 젊었던 시절의 한 때이다. 그보다 어렸을지언정 1980년대의 자기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30대와 일부 20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기억 속의 1980년대는 그래서 더 각각의 기억에 의존할 뿐 보다 엄밀한 공공의 장에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조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한 이 책의 출간이 늦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의 가장 큰 의의는 1987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의 성취일 것이다. 이 책 역시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전개과정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대체적인 흐름은 10.26 이후 서울의 봄과 그 기간 신군부의 쿠데타 내지 집권 준비, 5.18 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정권의 성립 이후 민주화운동과 정권의 대응, 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 이행 및 그 성과와 한계, 1980년대 남북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책이 꼭 1980년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관점은 해방 후 민주화운동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1980년대를 자리매김하려는데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이 이를 말해준다. 즉 프롤로그는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사를 간략하게 서술했으며 에필로그는 1990년대 초 직면한 정치사회경제의 실상을 언급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책 곳곳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전두환 집권 후 노동운동을 설명하면서 1970년대의 그것과 비교하는 서술방식이 그러하다(113).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집중하면서도 가능한 장기적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 서술은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이다.

6월 민주항쟁이 한국현대 민주주의사의 중요한 분기점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19604.19혁명과 19805.18 광주민중혁명을 포함해 해방 후 지난한 과정을 거친 반독재 투쟁은 6월 민주항쟁에서 길었던 군부 집권의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면 이후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내면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재도 이어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독자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위상과 내용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데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실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짧게는 1980년 이후, 길게는 해방 후 민주화운동 흐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역으로 6월 항쟁이 있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어떤 운동의 과정을 겪었는가? 또한 항쟁을 통한 실체적 성과를 얻었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와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원했던 민주주의는 같은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가? 이런 물음은 민주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차분히 생각해볼 문제이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가 입에 오르내리는 요즈음 오히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앞서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고 했지만 사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아마도 그것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의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87년 민주화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피상적인 대상이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역사가 이루어온 민주주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각자의 고민을 곱씹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 그러한 고민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숙지와 엄정한 비판적 잣대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에 관하여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교양서로 기본이 되는 책이란 점이다.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의 역할과 그의 의중은 무엇이었는지, 광주의 경험, 광주에 대한 속죄감 등은 이후 민주화 과정에 어떻게 내재되었고 발현양상은 어떠했는지 등 책을 읽고 갖가지 의문점이 생긴다면 계속해서 관련 연구서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마이리뷰에 저장해놓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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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중 2014-01-1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 독자의 리뷰라기에는 전문적으로 후기를 남기신것같습니다.

이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그러러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숙지와 엄정한 비판적 잣대가 필요하겠군요.

발을 내딛기가 무섭군요. 너무 깊이 빠질까봐요.
 
우리문화박물지 - 이어령의 이미지 + 생각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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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때 쓰는 젓가락 하나, 옷 입을 때 매는 옷고름 자락 그리고 누워서 바라보는 대청 마루의 서까래 - 한국인들이 사용해온 물건들 하나하나에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려낸 별자리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서명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한국의 영상과 한국인의 생각의 별자리를 읽으려는 욕망, 그리고 그 읽기의 새로운 실험에서 탄생되었다. 

머리말을 그대로 인용.

가위, 갓, 거문고에서부터 호랑이, 화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옛 물건, 풍습 등 민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들을 대상으로 거기에 담긴 의미, 엿볼 수 있는 마음 등에 대해 짧은 에세이 식으로 쓴 책.

이를테면 맨 처음에 나오는 가위의 경우 대개는 분단, 단절, 제거를 상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끝이 무디고 날이 어긋나 아무것도 잘라낼 수 없게 되어있는, 가위의 기능을 가위질해 버린 한국의 엿장수 가위는 그 이미지를 역전시켜 일탈의 시적 효과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이다.

이미 민속박물관 정도나 가야 볼 수 있을, 그러기에 현실에서 잊고 지내던 우리네 생활의 옛 동료들에 대해 따뜻하고 성찰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으므로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그냥 그러려니 했던 맷돌이니 물레방아에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우리 조상들은 이걸 이렇게 사용했구나 그런 관점도 접하게 되니 새롭다.

그렇지만 우리네 옛 것이라고 마냥 속깊은 의미가 있으리란 법은 없고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마냥 받들어져야 하는 것도 아닐테다. 바로 전에 진중권의 책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정체성과 습성(하비투스)라는 건 분명 구분해야 할 차원이다. 단순히 옛 것에 이러이러한 특징,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남의 것과 비교해 이것은 이러한 의미(우수성의 늬앙스)가 있고 마냥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갓이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을 지닌다는 것, 비녀의 절제미를 설명하며 이 절제를 잃은 것이 산발한 현대 여인들의 모습이라고 한 것, 서양의 경우 주부의 풍요의 미와 창기의 불모성이 대립을 이룬다고 한 추상적인 진술 등이 있겠다.

주제에 넘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옛 문화를 바라보는데 꼭 '현재'와 대비되는 것으로써, '서양'과 대립되는 것으로써 각을 세우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강박관념이며 그 강박관념은 우리 것에서 뭔가 계승해야 할, 본받아야 할 가치를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따로 나뉘어진 우리의 밥상에서 봉건주의의 신분사회가 형성되었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는 민주주의적 평등성과 자율성을 나타내는 훈련공간이라는 글이 그렇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서양의 식탁처럼 하나의 음식을 각각 덜어먹을 때 '같은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민주적인 훈련을' 할 수 있지 한 음식을 여럿이 먹는 우리의 상에서는 서로 억제하고 양보하기보다는 눈치보다가 동시에 젓가락이 가는 경우가 더 많을 거 같기 때문이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은 좋지만 자칫 맹목적인 것으로 흐를 수 있음은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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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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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가장 가보고 싶은 산이자 또한 꼭 가봐야 할 산이다.
무려 삼도에 걸쳐있다는 동서 100여 리의 장엄한 규모가 아니더라도 백두대간의 끝머리, 너른 남도 땅에 홀로 우뚝 솟아있기에 옛부터 사람들이 영험한 산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래서 지리는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지리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을 다하여 게릴라 투쟁을 했던 이가 바로 이 책을 통해 재조명된 이현상이란 인물이다.
흔히 말하는무장공비, 지리산 남부군의 총사령관이다. 

남부군이란 제목의 빨치산 수기가, 이어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군사정권을 못벗어난 때 만들어진 그 작품들이 얼마만큼 빨치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는지, 빨치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공이라는 프레임에 왜곡된 시대적 한계와 같은 것은 없었는지는 의문일 수 밖에 없다. 이현상 부대의 간호요원으로 이현상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하수복이란 사람이 60여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무엇 하나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빨치산이였던 이도, 빨치산을 토벌했던 이도 모두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고 또 밝히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세기가 더 지난 오늘까지도 빨치산을, 그리고 그 대장인 이현상을 제대로 모른다. 그렇지만 체 게바라는 알면서,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유행처럼 입고 다니면서 우리 민족의 혁명가는 몰라서야 되겠냐는 애국주의적 책망은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들을 제대로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비단 애국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일제 하, 그리고 해방 후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가 고착화되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잊혀질 뻔했던, 그렇지만 확고한 신념 하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민족, 민중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들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현상은 그런 우리를 대표하는 한 명인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현상을 혁명가로 표현한 것에 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또한 민족, 민중의 독립과 해방을 위했다는 언급에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현상이 단순한 게릴라의 수괴가 아니라 일제 하 1920년대부터 노동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으며 그와 그의 동료인 좌익 계열이 국내 독립운동의 큰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 역시 모르고 지나치기 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방 후 혼란한 정국의 와중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어떻게 조직을 이루고 있었는지 민중의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우익과의 대립 속에서 어떻게 몰락해갔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빨갱이 한마디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숨겨진 반쪽의 역사를 알아볼 때가 되었다. 20대 이후 삼십여 년간 그 역사의 중심에서 큰 바위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현상을 통해서 그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 역사의 일부이나마 엿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고 이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점 위주로 평가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현상이 실제로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인명존중의 정신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거대한 수림과 같은 인물이였는지는 책을 읽은 후 각자의 판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인물, 역사를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 이 책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우리로서는 그 시도를 한번쯤 제대로 들여다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 의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몇 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지리의 빨치산 토벌을 둘러싼 좌우 양쪽의 사망자는 무려 몇 만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지리의 큰 품 안에서 다시금 조명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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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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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소설집.
난 이 책을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현대사산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1948년의 제주 4.3항쟁 그리고 뒤이은 무차별 양민 학살의 비극. 그 끔찍한 실상을 증언하는데
이 책이 각주에 계속 인용되더라. 어떤 책일까 궁금해했었다.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
어쩌면 그 당시 동네 이웃이웃의 아지망들과 같이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그건 너무 많은 숫자로 인해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으레 그러기 마련인 듯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너무 많아 죽음이 당연시 여겨지려면
그리고 너무도 공포스러워 30여년이 지나도 그 때를 입밖에 내는 것조차 꺼려지려면
그 때 그 놈들 이름이 무엇이였는지조차 알고 싶지 않으려면
그냥 운명이려니, 복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불가항력인 전설속의 해룡의 짓으로 여겨버리려면

그건 도대체 그 때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으로나마 복원시킬 수는 있는, 그런 일이긴 한걸까?

말 그대로 순이삼촌의 죽음은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다.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란 구절이 참 절절하다. 

-남모를 비밀, 비밀이라기엔 너무나 잘 알려진, 잘 알려졌다기엔 그것이 거짓의 꺼풀로 위장되어버린-
어떤 말로도 다 할 수 없을 공포를, 고통을 안고 저마다의 유예 기간을 지탱해왔을
살아남았던 희생자들을 대신해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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