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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사라지고, 그곳이 살아나고 - 인문지리로 읽는 우리 주변의 공간들
천종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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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었다. 겉표지에 광화문 삽화가 예쁘게 들어간 책이었다. 삽화가 위와 아래 둘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위의 삽화에는 광화문 뒤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이고, 아래 삽화는 복원 후 지금 볼 수 있는 광화문이다. 같은 지역이지만 정경은 조금씩 다르다. 정경뿐만 아니라 그곳을 지나쳐간 우리도 예전과 지금 달랐을 것이다. 이 책은 같은 장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한다는 것, 그리고 그 장소를 향유하는 우리도 변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4부로 이뤄진 책이다. 1부는 자연, 2부는 역사적 유적지, 3부는 냉전과 산업화에 따른 변화, 4부는 도시가 가져온 지역상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누구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 수준의 서술로 각각의 지형 또는 장소의 의미와 변화상을 풀어내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우리 국토-지리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본문에 역사와 지리는 이웃사촌이란 언급이 있는데, 둘 다 근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국토와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었다. 1부를 읽으며 저자는 장소-환경의 변화, 특히 근현대 이후 달라진 장소의 성격을 좋다 나쁘다가 아닌 변화의 의미를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따뜻한 관점이다. 그런데 3부에서 탈산업화 흐름에 따라 서울 서남부의 공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경관이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낸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저자가 아쉬워한 것은 탈산업화 자체가 아니다. “산업화 시대에 공장에서 치열하게 일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자국, 사연들이다. 책의 부제가 인문지리이듯, 저자는 장소 변화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를 둘러싼 우리네 삶의 변화란 맥락에서 지역성을 조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각각의 장소를 조명하는 관점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특히 바쁜 생활에 치였던 독자라면 내 주변을 다시 보고 나아가 우리 국토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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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 - 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전혜선 옮김 / 역사비평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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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갈수록 독서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있어 동양사는 관심사와 그리 무관하다 할 수 없는 분야이지만, 독서에 소홀해진 것은 동양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 <수양제>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우선 저자는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사람이다. 1990년대에 타계했고, 1960년대까지 교토대학 사학과 교수였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동양사의 대가 중 한 명임은 분명한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저자에 흥미가 생겨 좀 찾아보았는데 이 책의 배경인 남북조와 수, 그리고 송에 근세로 내려오면 청조까지 그의 저술이 있다. 전근대 중국사의 상당한 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광범한 연구영역은 학문의 세분화가 점차 진행된 요즘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기에 그에게서는 근대학문 개척과정에서 대가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내용도 무척 흥미로웠다. 요즘 책 하나 잡으면 다 읽는데 며칠은 걸리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책은 한나절만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위 책소개에도 있는데 무엇보다 사실만을 엄밀히 추려낸 역사학자의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다는 게 책의 최대 미덕인 것 같다. 저자가 대중서를 염두에 두고 평이한 문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번역서임에도 그 점에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거리였던 것은 인물사라는 분야였다. 이 책은 제목처럼 수나라 2대 황제였던 양제를 중심으로 남북조-수-당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주인 것이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인간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사학의 최종 목적은 인간관계를 규명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와 개인은 모두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고, 그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제각기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오랜 논쟁거리이지만 '인물'의 중요성을 새삼 간과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 어떤 정치인의 자서전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외면한 자화자찬격의 자기홍보가 아닌 엄밀한 사실 고증을 토대로 한 진정한 인물사가 더 많이 필요로 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대중적으로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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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유
권용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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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지식인의 아우라'

 

프롤로그에 1939년경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 벤야민의 사진이 실려 있다.

앞에 기록카드를 수북이 쌓아놓고 한 손으로는 카드를 넘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곧바로 메모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자세, 입은 다문 듯 보이고 표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우 진지할 것 같다. 진지할 것만 같은 아우라가 물씬 느껴진다.

 

이것이 사유하는 지식인의 초상일까. 적어도 이 책에서 따라가고 있는 벤야민의 이미지를 매우 잘 반영하고 있는 사진이자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 그대로 벤야민의 공부법을 다룬 책이다.  다만 그리 단순하거나 익숙한 '공부법'은 아니다.

그가 삶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구체적인 실천수단이자 도구로써 어떻게 '글쓰기'에 임했는지를 엿보고 있다. 과정에서 '베를린의 유년시절'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일방통행로' 등을 포함해 그가 쓴 글들이 자연스럽게 인용된다.

 

벤야민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경우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공부법'이 궁금한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아, 아주 큰 틀에서 저자가 말하는 그의 '공부법'은 결국 사회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독자로서 하나 덧붙이자면, 역사가는 연대기적 연속성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 역사가 의미 있는 것은 단지 축적된 과거의 사실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으로 지금-여기의 삶에 간섭하기 때문(p.138)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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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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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介叱同), 갑돌이(甲乭), 돌쇠(乭金), 마당쇠(麻堂金), 강아지(江牙之), 도야지(道也之), 송아지(松牙之), 두꺼비(斗去非), 더부사리(多夫沙里), 개부리[개불알](介不里), 넙덕이(汝邑德), 작은년(自斤連), 작은노미(自斤老未), 개노미(介老未)


조선시대 양반들이 그들의 노비들에게 붙여줬던 이름이다. 개똥이, 갑돌이까지는 애교로 보아 넘긴다 해도 강아지, 돼지, 심지어 개부리, 개노미에 이르면 아무리 노비를 천대했기로소니 어찌 이리 불렀을까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조선 후기 17~19세기,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나 양반을 꿈꾸었던 수봉이란 노비 가계의 열망과 도전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경상도 단성지역 호적대장을 사료로 해 원래 노비였던 수봉이 어떻게 평민으로 면천(免賤)하는지, 그리고 그 후손들이 다시 5~6대에 걸쳐 어떻게 중인, 궁극적으로 양반[幼學]가문을 지향해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678년 호적에서 수봉은 심정량이란 양반의 사노비였다. 그런데 수봉의 아들인 김흥발의 1717년 호적을 보면 김흥발은 물론 수봉은 평민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수봉의 6세손인 김정흠의 1858년 호적에 이르면 이 가계에서 노비나 평민의 흔적은 더는 찾아볼 수 없으며 그야말로 양반의 호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저자는 한 노비 가계의 혈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여러 흥미로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각자의 사회경제적 필요에 따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부유한 양반 남성과 그렇지 않은 평민 여성의 재혼, 노비들이 또 다른 노비를 소유하고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성과 본관을 획득하는 모습 또는 반대로 그것을 바꾸는 양태, 동성동본을 회피하고 양자를 들이며 동성촌락을 이루는 것과 같이 양반문화를 모방하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자료의 제한과 호적이라는 자료의 특성상 속 시원히 밝혀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단점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진실의 한 단면에 빛을 비추려 애쓰는 역사학적 작업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불완전한 호적대장에서 수봉의 흔적을 좇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퍼즐을 풀거나 또는 추리소설 읽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의 서문은 18세기 한 노비가 죽자 그 주인이 그를 묻고선 삼한 땅에 명문가 많으니 다음 세상에는 그런 집에서 나게나라고 읊조렸다는 일화로 시작한다. 아마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이 땅의 수많은 평민, 천민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분관념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좋을 오늘이지만, 여전히 우스갯소리나마 전생에 왕자, 공주, 양반이었을 거야.” 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 반대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평민, 천민의 후손이었을 것임에도 말이다. 우리 혈통(?)을 비하하고 자괴감을 갖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누리는 신분적 평등을 당연시하기에 앞서 그것을 갈망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수백 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권력/경제력의 편중·고착으로 오늘날 또 다른 특권신분층이 형성되고 있지 않은지를 경계하는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도 같은 맥락에서 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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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시대 -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
계승범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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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지만 조선시대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책 제목 첫인상은, 얼핏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책 표지와 속지 곳곳에서 등장하는 조선은 어떻게 유교국가가 되었는가, 라는 일종의 부제에 비해서도 또 학술서 제목도 굉장히 섹시(?)하게 뽑는 요즈음 경향과 비교해도 중종의 시대라는 제목은 분명 얌전하다.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조선 11대왕 중종을 전면에 내세운 책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를 잘 모르는 본인은 연산군과 선조에 대해서는 조금 들어봤어도 그 사이의 중종, 인종은 상대적으로 낯설었고, 그 점에서 이 책 역시 낯설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한 분이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도 내가 알고 있던, 교과서적인, 조선시대 이해에 대한 뚜렷한 비판과 독특하고 참신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16세기 전반 조선왕조가 겪은 유교화과정을 한국 문명의 전체역사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관점이나 곳곳에서 이를 현대한국의 민주화과정과 비교하는 서술이 우선 그러했다. 국내 국사학계의 최근 연구경향이 아무래도 세분화되고 있다고 한다면 분석의 정확성/적절성 여부와 별개로 미시적인 연구대상을 거시적/통시적으로 확장하려는 문제의식은 필요한 부분일 것 같다.

저자는 14세기 말 조선왕조의 개국이 말 그대로 하드웨어적인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소프트웨어를 갖춘 것은 16세기 초 중종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선시대를 보통 양난을 기준으로 전후기를 나누는 기존 시대구분론을 비판하는 이른바 '조선 중기론'과도 맥이 닿아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왕위계승, 사대정책, 소중화 인식, 사림운동 등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학계에서도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참신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트렌디한 책이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큰 불편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서술한 것은 책의 장점이다. 조선시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위에 적은 내용 외에도 훈구/사림이라는 기존 도식에 대한 문제제기나 조선왕조의 자주성을 얘기할 때 꼭 나오는 대명 사대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문제, 그리고 중종반정을 중종'정변'으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부르는 용어에 대한 고민까지 생각할 거리가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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