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가장 가보고 싶은 산이자 또한 꼭 가봐야 할 산이다.
무려 삼도에 걸쳐있다는 동서 100여 리의 장엄한 규모가 아니더라도 백두대간의 끝머리, 너른 남도 땅에 홀로 우뚝 솟아있기에 옛부터 사람들이 영험한 산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래서 지리는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지리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을 다하여 게릴라 투쟁을 했던 이가 바로 이 책을 통해 재조명된 이현상이란 인물이다.
흔히 말하는무장공비, 지리산 남부군의 총사령관이다. 

남부군이란 제목의 빨치산 수기가, 이어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군사정권을 못벗어난 때 만들어진 그 작품들이 얼마만큼 빨치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는지, 빨치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공이라는 프레임에 왜곡된 시대적 한계와 같은 것은 없었는지는 의문일 수 밖에 없다. 이현상 부대의 간호요원으로 이현상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하수복이란 사람이 60여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무엇 하나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빨치산이였던 이도, 빨치산을 토벌했던 이도 모두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고 또 밝히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세기가 더 지난 오늘까지도 빨치산을, 그리고 그 대장인 이현상을 제대로 모른다. 그렇지만 체 게바라는 알면서,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유행처럼 입고 다니면서 우리 민족의 혁명가는 몰라서야 되겠냐는 애국주의적 책망은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들을 제대로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비단 애국심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일제 하, 그리고 해방 후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가 고착화되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잊혀질 뻔했던, 그렇지만 확고한 신념 하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민족, 민중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들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현상은 그런 우리를 대표하는 한 명인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현상을 혁명가로 표현한 것에 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또한 민족, 민중의 독립과 해방을 위했다는 언급에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현상이 단순한 게릴라의 수괴가 아니라 일제 하 1920년대부터 노동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으며 그와 그의 동료인 좌익 계열이 국내 독립운동의 큰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 역시 모르고 지나치기 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방 후 혼란한 정국의 와중에서 사회주의 계열이 어떻게 조직을 이루고 있었는지 민중의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우익과의 대립 속에서 어떻게 몰락해갔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빨갱이 한마디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숨겨진 반쪽의 역사를 알아볼 때가 되었다. 20대 이후 삼십여 년간 그 역사의 중심에서 큰 바위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현상을 통해서 그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 역사의 일부이나마 엿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고 이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점 위주로 평가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현상이 실제로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인명존중의 정신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거대한 수림과 같은 인물이였는지는 책을 읽은 후 각자의 판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마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인물, 역사를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통해 접근하고자 한 이 책의 시도는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우리로서는 그 시도를 한번쯤 제대로 들여다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 의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몇 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지리의 빨치산 토벌을 둘러싼 좌우 양쪽의 사망자는 무려 몇 만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지리의 큰 품 안에서 다시금 조명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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