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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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이 기획한 역사교양서 20세기 한국사시리즈 중 네 번째로 한국 현대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전념해온 정해구 선생 작 전두환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발간되었다. 20세기 한국사시리즈는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을 식민지,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로 특징짓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의 연구 성과를 십분 반영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서 서술을 목표로 기획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이 책은 민주화, 그 가운데서도 80년대의 그것에 관한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독자의 한 명으로 이 책의 출간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기만 한 ‘1980년대가 본격적인 역사서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자못 놀랍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본격화한 한국현대사 연구는 그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쳐 박정희 정부 시기까지 연구영역을 넓혀왔지만 1980년대 연구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1980년대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한국현대사 연구에 등불을 비춘 1980년대가 시간이 지나 어느덧 그 자체 역사적 분석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 외에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이 시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빠르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출간이 다소 늦은 점 또한 없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86세대라 불렀던(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30대가 아닌) 40대와 그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결코 과거가 아닌 젊었던 시절의 한 때이다. 그보다 어렸을지언정 1980년대의 자기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30대와 일부 20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양한 기억 속의 1980년대는 그래서 더 각각의 기억에 의존할 뿐 보다 엄밀한 공공의 장에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조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역사적 시각으로 접근한 이 책의 출간이 늦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1980년대의 가장 큰 의의는 1987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의 성취일 것이다. 이 책 역시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전개과정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대체적인 흐름은 10.26 이후 서울의 봄과 그 기간 신군부의 쿠데타 내지 집권 준비, 5.18 광주민중항쟁, 전두환 정권의 성립 이후 민주화운동과 정권의 대응, 6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 이행 및 그 성과와 한계, 1980년대 남북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책이 꼭 1980년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관점은 해방 후 민주화운동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1980년대를 자리매김하려는데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이 이를 말해준다. 즉 프롤로그는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사를 간략하게 서술했으며 에필로그는 1990년대 초 직면한 정치사회경제의 실상을 언급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책 곳곳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전두환 집권 후 노동운동을 설명하면서 1970년대의 그것과 비교하는 서술방식이 그러하다(113).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집중하면서도 가능한 장기적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 서술은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이다.

6월 민주항쟁이 한국현대 민주주의사의 중요한 분기점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19604.19혁명과 19805.18 광주민중혁명을 포함해 해방 후 지난한 과정을 거친 반독재 투쟁은 6월 민주항쟁에서 길었던 군부 집권의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이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면 이후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내면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재도 이어지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독자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위상과 내용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데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실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짧게는 1980년 이후, 길게는 해방 후 민주화운동 흐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역으로 6월 항쟁이 있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어떤 운동의 과정을 겪었는가? 또한 항쟁을 통한 실체적 성과를 얻었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와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원했던 민주주의는 같은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가? 이런 물음은 민주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차분히 생각해볼 문제이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가 입에 오르내리는 요즈음 오히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앞서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고 했지만 사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아마도 그것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의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87년 민주화는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피상적인 대상이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역사가 이루어온 민주주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각자의 고민을 곱씹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 그러한 고민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숙지와 엄정한 비판적 잣대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에 관하여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교양서로 기본이 되는 책이란 점이다.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의 역할과 그의 의중은 무엇이었는지, 광주의 경험, 광주에 대한 속죄감 등은 이후 민주화 과정에 어떻게 내재되었고 발현양상은 어떠했는지 등 책을 읽고 갖가지 의문점이 생긴다면 계속해서 관련 연구서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마이리뷰에 저장해놓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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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중 2014-01-1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 독자의 리뷰라기에는 전문적으로 후기를 남기신것같습니다.

이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그러러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숙지와 엄정한 비판적 잣대가 필요하겠군요.

발을 내딛기가 무섭군요. 너무 깊이 빠질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