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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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냉전 이후 북조선은 경제적,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핵개발'에 매달리게 되었고 남한은 이에 대응하기위해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및 군사력 확장에 나서면서 '안보' 앞에서 대결과 적대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왔다. 핵실험과 잦은 미사일 발사로 남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남한사회에서 북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감각은 증폭되어 갔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으며, 경제주의적 사고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경제적 실효성과 실익에 대해 따지는 통일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작가 김성경은 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군부대 안에서 자라오면서 누구보다 군대, 안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고, 결국 북한 사회문화와 이주민, 여성, 청년 등을 주로 연구 주제로 다루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자리매김 하였다.  

작가는 150명을 훌쩍 넘기는 북조선 여성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한반도를 옥죄고 있는 분단의 현실이 책에서 배운것보다 훨씬 더 일상과 의식을 장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녀들을 만나면서 분단 반대편의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 인터뷰가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에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산문, 편지, 소설과 영화의 재구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하면서 가장 그녀들의 삶을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식민과 전쟁, 분단, 냉전과 탈냉전, 지역화와 세계화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중첩되어 있는지, 이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남겨진 사람들도 뭐든 해야했다, 살아야지 어쩌겠는가'라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억척스러움과 절실함을 보여준다. 때문에 전쟁과 같은 일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극복하는 여성들의 행동적 실천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분단 체제 앞에서의 한국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하고, 남북 공통으로 적용되는 가부장제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며 노동자로 내몰린 여성들의 고된 경험과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존엄도 지키려 노력했던 여성들의 삶은 기적과도 다름 없었다. 

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식민과 분단 구조에서 가장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북조선 여성, 조선족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가 손쉽게 떠올리는 북조선 여성들의 이미지나 서사와는 사뭇 다르며, 북한에서 선전하고자 했던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가장 낮은 서열에서 자매애와 가족애를 실천하는 여성들의 행위주체성은 전복과 해방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전쟁, 냉전, 분단 체제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역사는 현재를 규정짓고 미래로 전수될 것이기에 우리의 이해가 더 필요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숙고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북조선과 마찬가지로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한사회를 한번쯤 되짚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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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연인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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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멸되지만,

(동사로서의 '사랑하는') 사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

사랑의 사건이 '함께 있음'의 '행위'라면,

장소는 '함께 있음'이라는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음을 '증거'한다.

'공간'이 연인들이 '장소'가 된다는것은 사랑이라는 '사건'의 개입 때문이다.

연인들의 장소는 '임의적'으로 탄생하기에,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고 할 수 있다.

연인들의 장소는 사회적 몫을 갖지 않는 세상의 바깥이다.

연인들은 사랑의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독창적이고 정체가 불분명한곳, 촉각적인 에로스의 자리로 만든다.


'연인'이라는 이름의 이 '최소 공동체'는 '함께 있음' 자체가 '목적'이고 사회가 승인하는 수준의 '열정'을 관리하며, 사회가 인준하는 장소에 머문다.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장소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가족'에게만 허락되어 있기에,

그러나 사랑의 '사건'은 아무리 강렬해도 '일회적'이며 되돌릴 수 없으며, 너와 나를 '우리'라는 감각으로 묶어서 함께 어울어지던 '감정'은 '소멸'하고 만다. 감정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 역시 아무리 강렬하였다 한들 '지속성'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함께 했음의 '증거'가 되어 남아 있다.

즉 '사랑하다'와 '장소하다'는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이 '장소'의 개념이 확장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 아니라 축소적이고 개별적인 '방'이라는 좁은 개념으로 보고 있는 점이다.


연인들이 머무는 장소의 기본 단위는 집이 아니라이다.

방은 현재적인 체류의 지점이지만 카페나 숙소처럼 소유한 곳은 아니다.

연인들은 이 방에 머물때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다.

그 방에서 잠시 바깥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은 외부의 소음에 노출된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들 그들이 함께한 '(공간)'이 없었다면

겪은 시간들은 추상성 속에서 떠돌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방'은 소유의 장소가 아닌 '임시적 선물'로

'지속성'과 '영원성'을 보장해 주진 못한다.


어떤 장소에 머물렀던 그것은 임시적이다.

우리들의 역사는,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존'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추억을 쌓고 기억을 되내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곳에서 어떤 추억을 쌓았던간에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연인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기억'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들 '만'의 약속도, 고백도, 다짐들도 돌이켜 볼때마다 똑같이 상영되고 재연되는 '필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의 머물렀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한다는 것은 전부 끊임없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아름다웠다'고 말하지만 '암기할 수 없는 문장'처럼 잊히는 '파괴된 잔해'들과 같다. 이런 기억의 '망각'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끊임없이 '의심'과 '상상력' 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장소의 멜랑콜리'라고 한다.


연인들은 흘러가야만 하는 '실존' 앞에서 잠시 '유예'를 선언하며 시간을 붙잡기 위해 그들만이 숨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다니며 계속해서 장소를 '발명'한다.

소유의 장소가 아닌 임시적인 그 장소에서, 내적이며 우주적인 장소로 만들 그 곳을 계속해서 '발명'하고 '재발명'하며 고군분투한다.

이 소유할 수 없는 장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물질성'과 '사실성'을 비켜간다.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동사'이기에 늘 다른 공간으로 변환 될 수 있다. 권력과 통치도, 대립과 위계도, 공적이고 사적인 곳이나 고급스럽냐 저급스럽냐 하는 장소의 '위치'와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우산'은 매력적인 사물이다. 우산이 펼쳐지는 순간 두사람의 최소 공간이 만들어 지면서 순식간에 내밀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공원에 있는 '벤치'는 연인들을 손가락에 닿는 최단 거리에서 '옆'으로 나란히 앉게 만든다. 거리의 복잡함과 소음은 제거되고 가볍고 부드러운 침묵의 공간으로 만든다.

'카페'는 연인들의 둘만의 공간에 무대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소란스러운 공간도 둘이 앉은 공간만큼은 다른 조명을 비추는 방이 된다. 책상을 두고 얼마만큼 가까이 앉아있느냐에 따라서도 둘 사이의 거리를 말해줄 수 있다.

갈곳이 마땅치 않은 연인들은 공원의 '계단'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때 계단은 오르내리는 장소가 아니라 쉼터이고 작은 방이 된다. 복층 구조의 펜션에 있는 계단은 침대에 오르기 위한 은밀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침대'는 그 자체로 방이 된다. 탄생과 죽음을 맞이하는 이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류지가 된다. 때때로 영원에 닿을 수 없는 하룻밤의 공기가 잠시 머물다 우회하는 뗏목이 되기도 한다.

'욕조'는 연인들이 몸을 담는 순간 이륙하는 우주선이 된다. 어디로든 비행할 수 있는 우주선이자, 어디로든 유영할 수 있는 좁고 따뜻한 바다가 되어 연인들을 안내한다.

'창문'과 '테라스'가 있는 방은 우리를 외부와 내부로부터 단절시키기도 하지만 연결시키기도 한다. 외부로 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안도감과 친밀감,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안밖을 가르며 그 속에 연인들의 사건을 일으킨다.

'자동차'는 움직일 때와 움직이지 않을 때 전혀 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정차한다면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라 방이 되기를 바란다. 이 지붕이 있는 완벽한 주차장이 연인들의 성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리' 위에서 우리는 이 다를 끝까지 함께 걸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없을지를 예감하게 된다.

'기차역'과 '공항'은 연인들에게 아주 먼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약속한다. 지역과 국경을 옮겨다니는 이곳에서의 시간성은 가독성이 없다. 하나의 장소에 무수한 시간의 주름을 품고 있다.

'낮'의 햇빛과 '밤'의 불빛은 공간에 다른 느낌을 준다.

'극장'의 스크린과 무대는 삶 너머를 비춘다. 공터, 광장, 산, 바다 그리고 그 어떤 곳들 모두 연인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할 때 연인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함께하자는 약속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하자' '무엇을 먹자' '어디에 가자' 여기에는 모두 '둘'이여야 한다는 것과 '장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과거형'도 있고 '진행형'도 있고 '미래형'도 있어서, 장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여 의미를 갖게된다.

장소에 대해 이야기 할때, '우리가 ~했던 곳'이라며 지난 시간에 머물러 있을수도 있고, '우리가 ~했었고, ~했었고, ~해왔던 곳'으로 계속해서 덧씌워 질 수도 있고 '우리가~하려 했지만 하지 못한 곳'도 포함된다.

따라서 장소를 '발명'해서 찾는 것도 일종의 연인들의 '여행'이고,

그곳에 대한 '추억'을 더듬거리며 기억을 더듬거리는 것도 하나의 추억 '여행'이다.

장소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나간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도 우리의 실존적 시간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여행'인 것이다. '증거'로 남아 있는 장소에 대해 '상상력'을 가미하여 기억하는 것을 '여행에 대한 여행'으로 볼 수 있다.

더듬더듬 되짚어 보며 그 순간 놓쳤던 순간적인 연인의 표정을 다시 기억하고, 그땐 보이지 않았던 장소의 세부가 뒤늦게 떠오르기도 한다.

시간의 '바깥'에 있으면서 시간이 '부식'되지 않도록 담아두는 것이 '장소'이다.

장소는 '지금' 없음이자 '아직' 없음이며 본질적으로 '가질 수 없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명하자면, '홀로'였던 우리가 '연속성'을 경험했지만 영원에 닿을 수 없는 공기가 잠시 머물렀다 우회하는 곳, 그 환각들이 생에서 계속 반복되게 하는 곳, 독창적이고 정체가 불분명한 곳, 촉각적인 에로스의 자리.

이것은 그러한 장소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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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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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는 1426년 '조선'의 '제주도',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공녀 제도'를 배경으로 사라진 13명의 소녀들을 수사하다 실종된 아버지의 뒤를 잇는 '민자매'의 수사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남긴 60권의 수사 일지를 들고 제주도로 온 '민환이', 서로 떨어져 지내며 공통점이 없어 소원한 사이였던 동생 '민매월'의 도움을 받고, 아버지가 끝내 풀지 못했던 13명의 소녀들에 대한 미해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 진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며 끝내 끈끈한 가족의 연대를 보여주는 서사를 담고 있다. 또한 증언이 모으던 과정에서 복선, 가희, 채원 등 공녀 제도의 대상이 되는 또래 소녀들과 연대하면서 이것이 각각의 개인사가 아닌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관련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자매를 응원하며 이 사건 자체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페이지를 덮게된다.


공녀제도가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했었기에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 역시 '10대' 로 설정 하였으며, 실제 아버지의 고향이였던 '제주'를 배경으로 자신 역시 아버지를 그리고 애정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본래 주인공은 한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여동생의 도움을 많이 받게된 작가가, 자신이 이렇게 가족의 도움을 받았던것 처럼 책의 주인공 역시 혼자가 아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들고 싶어서 자매로 설정을 바꾸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 그리고 자매의 이야기가 주가되는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면서 이 책은 외국과 한국 모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충족시켰다.


이곳에 오려고 천 리나 되는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니 어떤 답이라도 찾아야겠습니다.

공녀 제도가 남아있는 조선, 집안에 여자 아이가 있는 것을 숨기거나 빨리 결혼시키는 수 밖에 없었다. 혼사길을 앞두고 있던 민환이의 삶도 별다를게 없었다. 그대로 한양에 있었다면 그 시대에 부여된 뻔한 역할을 수행하며 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동생' 이 두가지만 보고 제주로 왔다.

그시대의 소녀가 스스로 어떠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타지로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서사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에 마지막 부분에 민환이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평범한 여인들은 혼사길을 앞두고 도망쳐 천리나 되는 바닷길을 건너지 않지.

분명 이번 수수께끼도 혼자 힘으로 풀 수 있을거요. 이곳에서 답을 찾을지도 모르지.'

'답'을 찾기위해 움직였고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듣게된다. 그리고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 조선 시대에 갖힌 여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적인 질문으로 끝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시대를 거슬러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 가 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준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쉽게 사라지는 것은 역사를 '사건의 나열'로만 볼 뿐,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었던 '인물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3개의 키워드로 소개할 수 있다.

첫째는 아버지, 둘째는 연대, 셋째는 성향이다.


공녀제도는 '강대국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나라, 출세를 꿈꾸는 관리, 자기딸만 보호하려는 아버지', '희생양이 되는 어리고 힘없는 약한 여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중 찢어지는 마음으로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인 '아버지'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다 각각의 부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삐뚤어지거나 못난 부정애로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들은 '널 위한 거야' 라는 말로 그들의 딸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공녀제도라는 것은 그 땅에 있는 모든 딸들에게 적용되는 제도였기에 '내'딸을 지키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딸의 '희생'과 관련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일 수도 있다'가 될 것이냐 '나만 아니면 돼'가 될것인가 하는 이 딜레마 속에서 남겨진 쪽도 선택된 쪽도 모두 '희생'이라는 말 아래에 묶이게 되는 결과에 처하고 만다.


책의 원제목은 <The Forest of Stolen Girls>이다. '빼앗긴' 소녀들.

그러나 번역가의 힘으로 (이 책은 진짜 옮긴이가 신의 한수) 이 '희생 당한'으로 끝나는 게 아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라진'소녀들로 바뀌게 되었다.

"사라진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세요?"

"그럼,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걸."

그래서 이 장면이 참 좋았다. '사라진' 소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그들을 기억해줌으로써 결코 '빼앗긴' 것이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녀로 남겨두는 장면이.

뿐만 아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저주가 된' 시대 속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십대 소녀들은 각각의 사연, 믿음, 소망을 가지고 순응하는 삶이 아닌 현실을 정면 돌파하고 마주하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민자매를 비롯하여 증언을 들으러 가면서 만난 사건과 관련 있는 복선, 애라, 가희, 채원 등의 소녀들은 성별, 신분, 나이, 소문 등의 사회적 제약들에 굴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개성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저항이란 이름으로 연대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가부장제 세상 아래 한계를 두지 않으며 저마다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면서도 서로를 구원하는 성장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저 우리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두 자매의 다른 성향을 묘사했던 부분이었다.

이부분은 자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관계에 있어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공통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이 문장이 좋았다.

우리가 서로를 교집합으로 여기고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월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환이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두 자매의 가장 다른 성향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길을 잃었을때, 혹은 모르는 길 앞에 놓였을때의 각자의 해석방식이 돋보이는 숲에서 장면이었다.

'증거'와 '증빙', '원칙'을 중요시 여기며 "지도는 따라가라고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생각하고 판단한 후에 행동하는 환이가 있다.

반면 "지도는 길을 잃었을때 참고하라고 확인하는 거기 때문에 책이나 지도에 코를 박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라며 일단 실천하고 행동하고 보는 매월이 있다.

때문에 환이는 사건의 실마리들을 쫓으며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그것이 '증명'되느냐에 초점을 두며 하나씩 제거하고 채우며 사건을 수사한다면 매월은 그때그때 당면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간에 맞는 판단으로 헤쳐나가며 사건을 수사한다.

막다른 길 앞에 섰을때, 두사람의 반응도 재미있다.

'길이 막혔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며 사고하는 언니 앞에서, '이쪽 길이 막혔으면 다른 길이 있을 테니 찾아보면 된다' 라며 곧장 움직이는 동생이 있다.

이런 두사람의 성향 차이를 마주할때마다, 나는 어느쪽이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나라면, 나라면, 이런 생각들로 민자매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듯이.

그리고 서로는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었을때, '내가 너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두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공통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연대이자 관계를 맺는 방식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을까? 죄를 씻을 수 있나?”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수사일지는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면서도 소설에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은연중 드러내기도 한다.

-숲이 나를 지켜본다. 잊지 않는 눈으로 매섭고도 고요하게.(32p)

-신중하게 보고 신중하게 생각해라. 증거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61p)

-사건의 정확한 과정을 구성하는데 증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증언만으로 수사의 허점을 메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78 p)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을 관찰하다보면 길을 잃는다. 멀리서 주변을 살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보일 것이다.(191p)

-사소한 정보에 집중하거라. 반복되는 형태를 찾는거다.(330p)

-모든 증언, 모든 소문, 모든 의심,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331p)

-모순과 불일치, 그 두가지에는 반드시 의문을 품어야 한다.(341p)


사건의 끝에서 우리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통쾌감만을 느낄 수는 없다.

'희생'과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각자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마무리 지을 뿐이다.

그 시절의 배경 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연대하고 저항해왔던 인물들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초월한 이세대와 그세대와의 연결고리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가야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대의 끝은 또다른 연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잊지 않는 눈으로 매섭고도 고요하게' 이 말을 우리는 가슴에 새길 것이다.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의 아픈 역사와, 그 시절을 살아낸 우리의 소녀들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낼 우리들을. '매섭고도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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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라이프
장 줄리앙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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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하고
'관계'를 맺으려 애쓰고
수고스러움이 애석하고
드로잉으로 '소통'하고
'존재'하기위해 '유머'를 건낸다
모던 라이프는 '농담조'의 '기록'이다



'내가 열지 말았어야 하는것,
오늘 아침 떠버린 내 눈
열고 나가버린 현관문
열고 일해버린 노트북
오늘 내가 내뱉고만 그 말들'

이처럼 단어수가 제한되어 있거나 아무말도 필요하지 않은 본질적으로 순수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큰 울림을 준다. 
위트가 있고 풍자가 있고 블랙 코미디가 있다고 했던가. 
"주변에 대한 관찰의 기록, 일종의 그래픽 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이 제법 어울린다.
등장인물들은 무표정하고 다크서클과 입꼬리가 내려가 있으며, 일어나면 일하고, 월요일이면 출근하기 싫어하는건 똑같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생기는 염증, 스마트폰 중독, 사이버 폭력, 현대인의 외로움 등을 포착하여 현실에 유머감각을 던져준다.

 저널과 유머는 사회와 소통하며 존재하기 위한 방식이다. 결국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유머를 더해 다시 그것을 공유하려는 다정함이다. 세상과의 소통, 공유 이말은 그림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밥먹기 전 사진부터 찍어 남기기, 콘서트장에서는 공연관람보다 동영상촬영이, 회사에서는 커피를마시고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키고 일을한다. 이런 아이러니함에 유머 한스푼.


어때 어떻게 보여 어떻게 느껴

그래서 어떻게 할래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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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 - 나이의 편견을 깨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리사 콩던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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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드는 일은 나 자신에게 이르도록 해주었다. 나는 이제 나와 잘어울린다.'로 시작하는 이책은, 자신감 없이 지독한 불안속에 전전긍긍하며 오래세월 살고나니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가 자기처럼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뒤늦게 꽃피운 인물들을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으면서 자신도 대기만성형일꺼라고 용기를 얻게했을 뿐만아니라 40세가 넘은 후에도 대담하고 모험적으로 흥미로운 인생살기위해 노력한 그녀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이다.

중년이 되면 보통 탁월한 성취를 이룰 기회는 이미 지났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자신의 꿈과 욕망에 다가가고자 도전하며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경력에 멋진 결실을 맺게된, 이른바 '두번째 인생'을 살게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A Glorious Greedom>, 즉 <영예로운 자유>이다. 우리는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자유로울 자격이있다. 그러니 '이 나이에 무슨' 이라며 겁낼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고 '이 나이까지 이르렀는데' 더 무엇을 못하랴.

중년이 훌쩍 넘은 나이, 그러니까 인생의 후반부라 말하는 시기에 다른 어떤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중년의 '위기'가 아니라 그간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이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살고싶었던 삶'에 간절히 이끌려왔다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놓아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 을 껴안아주며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이와 함께 터득한 지혜, 감정회복력, 직업관, 여가관, 유머감, 통찰력, 나이드는 과정,고투, 승리 등 나이들며 쌓아온 경험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삼아, 당신이 원하던 삶을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이 당신을 최고의 삶으로 이끌어 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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