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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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의 공통 교육과정을 마치면서 대학에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될만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것이 이전에 예비고사(암기형 지식)와 본고사(논술형)가 있었고, 학력고사와 내신(교육과정 이수 충실)을 통해 대학을 가게 되는 과도기적인 과정을 거쳐, 수능에 이르렀다. 예컨데, '00에 대해 알고 있느냐?'와 같은 질문을 던진것이 학력고사라면, 수능은 '기존에 알고있는 00이란 개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낯선 지문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과정에서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료의 해석, 원리 적용,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판단 등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출제하여 가장 공적하고 탁월하게 우수한 수험생의 줄세우기가 가능한 시험으로 등장한 것이 수능이다. 줄세우기에 실패한다면 제일 큰 손해를 입는 것은 사실 수험생들 자신이다. 내가 1등인지 20등인지 확실히 정해 30등, 40등과 뒤섞이는 상황은 피해달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시작하는 것이 수능이므로 따라서 수능에 응시한다는 것은 생존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책은 그러한 수능에 대한 분석 및 '어떻게' 변화하는것이 좋을지 그 방향성에 대해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책이다.

때문에 수능이 반교육적인 시험이 되었으며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한 공교육의 책임과 사교육의 고도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힘껏 실은 1부와, 수능을 왜 반교육적 시험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논증과 수능 해킹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다루는 2부, 관료 조직과 사교육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살피는 3부, 마지막으로 수능은 어떤 시험이 되어야 하며 변화에 무엇이 필요한지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의 시험은 인재를 얻으려는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의 시험은 그 반대다.

시험 보는 법만 가르쳐서 평생의 정기를 시험에 소진했는데도

운 좋게 시험에 붙으면 배운바를 모두잊고 정작 쓸곳이 사라진다.

박제가 『북학의(1778)』


18세기의 박제가의 글귀로 시작하는 이 책은 21세기인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시험'제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1993년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첫 선을 보인 이후 매년 11월 세번째 목요일로 시험이 고정되었기에 11월은 그야말로 수험생의, 수험생을 위한 달이다. 전국민이 '수능'을 위한 배려에 혈안이기 때문이다. 합격을 위한 기도, 선물, 시험장까지 실어주는 경찰들의 대기, 듣기평가를 위해 비행기 착륙 지연, 수험자를 위한 할인 등. 고등학생을 위한 시험이 명절만큼이나 중차대한 연례행사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청소년들은 주당 60시간 이상 공부에 할애하는 학생이 23.2%에 달하고, 따라서 대학 이수율은 OECD 국가 평균(47%)을 훨씬 웃도는 (69%)인 만큼 '대졸'이 보편적인 발달 과업이자, '최종학력'으로 남는 인생의 성적표이자 '소득'의 지표, '학연'으로 남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는 큰 과정이다.

즉, 수능이란 청소년을 한국인으로 완성시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이쯤에서 우리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수능해킹』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OMR카드에 마킹해서 채점해야 하기에 오지선다 객관식이다. 이는 문제 유형이 표준화 되어 정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도치않았겠지만 전형성과 예측가능성이 올라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제 원리를 역산하여 유형을 파아학하는 훈련을 숙달하면, 복잡한 문제도 쉽게 풀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업을 수능해킹이라고 부른다. 문제 유형의 고착화=수능해킹의 가능성 과 동일어이기 때문에 평가원들이 문제를 낼 때, '고착된 출제 경향'을 유지한다는 것은, 수능 해킹을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것이 시험이 끝나면 뉴스를 장식하는 단어들은 정해져있다. '수능 난이도', '1등급 커트라인', '불수능/물수능', '편차', '출제오류'등 평가원에게 큰 책임을 묻는다. 때문에 평가원은 더욱 예측가능한 문항, 정형화된 문항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는 사교육 의존도와 큰 상관관계를 보이게 된다. 기존 퍼즐 공략법이 봉쇄되고 난이도를 올리려 까다롭게 만들어 새로운 유형의 퍼즐법을 만들어도 곧 이 공략법이 개발되면서 평가원은 늘 진퇴양난의 길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수능해킹으로 인한 우리사회의 모습은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수능'은 오히려 사고력이 제한되는 '반교육적'인 시험이 되었다.

  2. '수능해킹'의 만성화는 사교육계를 '노동집약적 사업'으로 만들었다.

  3. '사교육'열풍은 서울(대치동)/N수/의대에 집중하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만들었다.

  4. 학교수업(내신)과 수능의 괴리, 논술과 면접까지의 복합성을 도외시하고 있는 '공교육의 책임'이 커졌다.

수능과 관련된 이 네가지 정리들은 단선적인 접근만으로 해체할 수 없는 결합과 고리를 가지고 있다. 사교육계와 평가원이 맞물리면서 수능 난이도는 기형적으로 상승해왔고, 드러나지 않은 폐단도 상당하다. 이러한 수능은 공정을 내세우며 개개인의 교육의 유의미한 성취 등의 디테일에는 점점 멀어져갔다.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순 없겠지만 한쪽에서의 최선, 즉 주관하는 평가원의 최선이 한국 사회의 최선도 아니고, 수험생과 학부모의 최선도 아니다. 이전의 '국어'가 아닌 '언어'영역일때의 시험은 '얼마나 많은 글을 읽어왔는가'가 관건이었다. 경험과 센스가 고득점의 핵심이고 학습은 부차적이였다. 지금의 '국어'시험의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능력은 독해력이 아니라 '안력, 순간 기억력, 연결력'이다. 곁눈질로 눈알 굴리기 테크닉을 시현하여단어와 단어가 맺는 관계를 피상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영역인 수학, 영어, 탐구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로 '아무생각없이, 기계적으로, 누구나' 풀 수 있는 반교육적인 시험이라고 이 책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목적'을 두고 '인지'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추론'이라 한다.

'규칙'에 따라 '명제'간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추리'라 한다.

'목적'없이 형식만 존재하는 추리를 '퍼즐식사고' 라 한다.

'그읽그풀'이라는 말이 있다. 그냥 읽고 그냥 푼다는 것으로 '재빨리 관계를 파악하고 키워드를 이리저리 끼워맞추는 작업'능력을 '퍼즐식 사고'라 부르고, '공식'과 '접근법' 자체를 외워 접근하는 능력을 '사고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사고의 외주화는 사교육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규격화된 형테로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득점을 거두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가 바로 이 '사고의 외주화'에 기대는 것이고, 하나는 '발상과 논리'를 기르는 것이다. 전자인 사고의 외주화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움직임만큼 정확하게 해내는 훈련으로 즉각적으로 고득점을 맞는 효과를 보여준다. '성취'보다는 '승리'에 목적을 둔 이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유형별 공부는 신유형이 추가되거나 기존 유형에 변동이 생길때마다 새로운 암기가 필요하므로 완성이 불가능할 뿐더러 정작 '수능'시험판을 벗어나면 그 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는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지식의 맥보다 기술을, 교육의 내용보다 교육 자료(수능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이어지기에 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사고'하기보다 '문제풀이'가 적혀있는 답지를 원하고, 범위를 확장하면 '이런건 수능에 안나온다'는 기준을 둔다.

"중요한 것, 좋은것을 배워야 할 시기에 아무 쓸모도 없는 기술을 배우는게, 그리고 그걸 몇년씩 하는게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내가 고등학교때 배웠던 내용이 대학과정에 도움이 되었어"라고 말할 친구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교육을 소화할 역량을 검증하고, 최종적으로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치뤄지는 시험이다.

학습범위가 줄어들고 시험이 테스트하는 지식이 얕은 수준에 머무른다고 해서 학습부담이 줄어들지 않으며 그렇게 구성된 시험의 경쟁 압력이 강해질 경우 시험의 정당성이나 적절성은 오히려 퇴보한다. 따라서 학습에는 기준선이 존재해야 하며 대입 시험에서 어려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대학교라는 고등학습기관으로 향하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목적지에 걸맞는 사고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이 어려운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대목에서 어려워지고(형식의 난해함), 정작 학습 목표를 최소한이라도 달성했는지 면밀히 검증할 필요가 있는 (지식과 논리의 깊이) 부분에서는 멀어지면서 교육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야 말로 잘못이다.

  • 학습 수준을 검증하는데 어떤 문항 유형이 적합한가?

  •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 이 시험에 준비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해야 바람직한 학습과 발달을 유도하는가?

를 물어 볼 수 있는 교육철학을 정립하여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결국 교육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족 대입만 잘 넘기면 입시 고민은 끝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순간, 손쉽게' 끝마칠 일이 아니거니와 끝마쳐선 안된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만큼 교육철학을 정립하고 그 기준을 통해 지금의 제도를 감시하는 작업은 언제나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거기엔 한국이라는 조건을 직시하고 공동체의 지속을 염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쾌도난마'라는 말이있다. 어지러운 것은 베어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겠으나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시대는 계속 바뀌고 있으니 수능 또한 변화의 흐름 가운데 놓여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새로운 교육 철학과 함께 새로운 교육으로 맞이 거기엔 새로운 기준과 제도가 뒷받침 되야 한다. '내 시험', '내 자녀의 시험', 만 끝나면 끝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공동체의 지속을 염려하는 태도로 우리 교육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현실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길을 제시하기위해 먼저 수능을 해킹하는 책, 수능 해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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