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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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도발적인 책을 썼던 김지혜 교수가 '스스로 선량하다고 믿는 당신을 심란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가족각본』이라는 두번재 책을 선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열렸던 북토크에도 다녀왔다. 책을 읽기 전이였는데, 강의를 다듣고 책을 보니, 책의 내용 순서에 따라 강의내용을 진행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큰 줄기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가족'형성에 공식이 있는가,

'가족'형태는 같아야 하는가,

'가족'형제는 부양해야 하는가


'가족'은 견고한 '각본'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각본에 따라 태어나면서 부터 역할을 기대 받거나,

성인이 되어 가족을 만들면서 역할을 맡는다.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며느리와 사위', '아들과 딸' 등 역할이 주어지면, 우리는 그 역할에 맞는 각본에 따라 '~답게' 행동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정해진 '각본대로' 따르는 걸 '평범한 삶'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평범'이란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습'을 말하는 것.


'관습' 이란 글자에서 살짝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직도 '소수'이고 '개인적'인 일로 여겨지는 '동성애(성소수자), 미혼자녀, 고아, 미망인, 장애인, 노숙인, 저소득인' 등이 무대에 등장하게 될 때이다. 이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족각본에 관습적 역할이 꼬이게 된다.

이책은 '익숙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라는 '질문하기'가 전제이기 때문에, 정말 수많은 질문 폭탄을 던진다.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한번 답해보길 바란다."는 듯이.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가족안에서 역할은 왜 성별로 규정될까? 애초에 역할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왜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하나로 여기는 걸까? 왜 비혼출산은 비적법한 출생, 비정상가족형태가 되어 당연한 듯 차별당하는 걸까? 부모는 모두 있어야 할까? 가부장제는 왜 이토록 오래도록 연명하고 있는걸까? 가족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는 단위여야 하는가?

이 책은 질문의 질문을 거듭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관습'에 반대되는 질문을 던지며 당혹감을 주고, 우리도 모르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있었던 차별성을 드러내고, 은근하게 자리잡고 있던 '평균 기준'의 이기적인 편향성을 들춰낸다.

우리는 위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족(家族)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부부 '인연', 부모 자식의 '혈연'과 '입양' 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가리킨다. 현행 「민법」 제779조의 가족의 '범위'를 살펴보면,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 (부모와 자녀)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자기'는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families)의 어원인 라틴어 familia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familia는 '가장'에게 속한 '소유물'인 아내, 자식, 노예 등을 뜻했다고 한다. 가족의 시작은 오늘날처럼 공동체 단위가 아닌 엘리트 계층의 소유물을 지칭하는 것이었기에 가족을 구성하는 원리는 동서를 막론하고 남성을 주축으로 한 '가부장제'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시작은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2007년 동성애 허용법안 반대시위 구호부터 시작되는데, 그 초첨을 '며느리가 왜 남자면 안돼나요' 가 아니라, 왜 '며느리'부터 들먹이느냐로 시작된다. 이는 두가지 관습을 동시에 흔드는 질문이다. 가족형성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가부장제' 와 그 뿌리를 흔드는 '동성애'.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는,

이 사회가 평등을 추구한다면 맞서고 해체해야 했을 가족 질서가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불변의 가치인가?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결혼'이란 참 오묘한 일이다. '스드메', '청첩장과 식장', '신혼여행'이라는 성대한 예식을 치는 기간과 비용에 비해, 법적인 신고 절차는 초라하다. 단출한 서류작성하나가 끝이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능력을 묻는 절차도 없다. 그 간단한 서류 하나로 '서류상'으로 가족이 되면,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①'동거'하여

②서로를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

③서로를 '대신(대리)'해 공동생활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④'재무(채무)'에 대한 책임도 공동(연대)으로 진다.

⑤결혼중 협력해 모은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공동재산'이 되고(해체시 분배대상)

⑥공동재산 분배시 '가사노동'을 분담한 기여도 인정된다.

⑦'보호자'로서 각종 동의와 결정(수술,연명 의료 중단 등)을 내리기도 하고

⑧'배우자'로서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⑨'유족'으로서 상대가 사망시 장례를 치른다.


의무와 동시에 권리가 생기는 결혼을 사람들은 '거래'라 여기며 가족 형성을 통해 유리한 경제적 지위를 얻으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결혼 기준으로 학력, 외모(특히 키), 직업, 연소득과 기본자산을 기본으로 비교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178cm의 연소득 6천의 공사직 남자가 163cm의 연소득 4천의 사무직 여자를 만나 5억정도의 자산으로 시작하는게 결혼이다. 기준치가 높아지면서 동질혼이 많아졌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 더 평등해진것 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결혼 후의 일자리 변화(경력단절, 전업주부)와 동질혼 계급의 재생산(양육자까리의 배타접 집단형성)과 불평등 강화의 효과 등을 보면 과연 정말로 평등으로 나아가는 지는 의문이다.


있는 자가 가족제도를 통해 계층을 세습하는 동안

없는 자는 가족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지금처럼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시대에

축적된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가족'이라는 '소박한 행복'을 꿈꿀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결혼생활 어때?"는 잠시,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라는 질문이 바로 이어진다. 이렇듯 결혼은 출산을 기반으로 한다는건 결혼 밖에서 출산하면 안된다는 뜻도 있다.

그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① "아이를 낳지 않을거면 왜 결혼했냐" 비난받아야 하고, 역으로 ② "아이가 생겼다면 책임져야(서둘러 결혼) 한다" 라는 공식에 부딪혀 비혼 출산을 부정 당해야 하며, ③"동성커플은 아이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결혼 할 수 없다"라는 반대에 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출생은 완전 무결한 필요충분 공식이며 결혼은 출생을 위한 자격이 되는 것인가,

출산의 기반인 결혼을 해체시키는 ①②③의 '변형' 들은 '사회적 재앙'인가.

결혼 하지도 않고 아이를 낳은 사람은, 혼 외 출산은 '문란함'으로 낙인찍혀야 하는가.

출산이 '애국'이라면,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에게 국가가 간섭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녀 출산에 대한 부담이 적은, '동거'와 같은 결혼 외의 가족 형성은 '공동생활'로서 보호 받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돌봄의 공동체를

국가와 사회가 존중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혈족 안에서 사람들의 순서를 매기고, 출산의 공식을 지고, 부양의 의무를 부과해, 생존을 담보로 해온 지금까지의 가족은 자유와 평등을 근본가치로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도 계속해서 적용되어야 하는 '질서'로 남겨져야 하는 걸까. 강요된 의무와 위계적 압박이 사라질때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서로를 돌보는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가족을 이루는가.

현행 「헌법」 제 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라고 되어 있다. 이는 누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도록 국가는 이를 보장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며 더 '다양성'을 바탕을 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가족은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개인의 운명이나 운으로 가족생활의 불평등함과 차별을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헌법에서는 '존엄하고 평등한 가족 생활' 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해 두고 있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구체적인 사례' 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개인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장'과 '국가적 책임'이 뒷받침되어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바뀌어가는 제도와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정 변할 수 있다.

사회가 변하고있다는 것은 다양한 삶의 형태와 가족의 형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는 아직, '사회가 변하고 있다'에서의 '변화'를 '위기'나 '해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관습에 대항하며 해체해! 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의 '확장' 을 외치는 것이고, 기존의 사각 지대를 발견하여 '추가'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가장 좋았다.

변화가 꼭 위기와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옳았던 것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범위를 더 넓힐 뿐이다.

'아니야, 틀려'가 아니라, 이런 모습 '도' 있어, 라며 바뀌어가고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어떠한 변화가, 다른 목소리가, 다른 형태가 모두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왜' 이런 변화가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며 그에 맞게 대안찾기에 힘쓰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변화와 다양성의 담론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게 한다.


오랫동안 '개인'만의 책임으로 물어왔던 것에 대해, 정말로 그러한가를 되묻는다면, '돌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돌봄'은 사회에서 공동의 책임이고 '개인'의 권리이다. 다양성을 인정한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면서 각각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와 열린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


'가족' 불평등이 문제라면, 가족의 형성과 역할 분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각본'을 다시 써볼때가 되지 않았나 제안하는 책이다.

가족은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돌봄'을 주고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 로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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