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포인트 그림감상 - 원 포인트로 시작하는 초간단 그림감상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포인트 감상, 세계의 확장

한때 미학공부를 하며 그림을 감상·비평하는 방법으로 형식주의, 맥락주의, 인상주의, 의도주의, 전체주의 등을 공부할 적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비평방법은 '인상주의 비평'이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감상자의 느낌과 인상에 따라 작품의 의미 변화와 차이를 이해하고 내용을 중심으로 체험하는 방법으로 개인적 경험을 중시하며 작품 속 인물의 입장에서 묘사된 세부 사항을 관찰하고 반응을 기록하는 방법을 말한다.

창작자의 의도와 욕구 표출의 기능을 알고 보면, 그냥 보는 것과 그림은 확연히 달라보인다. 아 그래서 이렇게 그렸구나(표정, 색감, 소품, 장소, 위치 등)를 구체적이고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의도는 한번에 전달되기 힘들다. 누군가의 설명이나 작가 노트를 통해서만 알수 있다. 때문에 각별히 관심이 있는 작가이기에 먼저 찾아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작품들은 한 눈에 인상에 남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이 그림 마음에 들어'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감상할 때의 주관성은 어떤 '포인트'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고, 이 책은 그 포인트를 인간, 자연물(동식물과 풍경), 기물(소품), 조형요소로 나누어 '슬로우 감상'의 길로 안내한다.

'포인트' 요소에 집중해서 관찰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는 그 과정은 이미 작품을 내것으로 만드는 감상법이자 세상을 깊이 사랑하는 법이기도 한다. 감상 방법이 일률적일 수도 없고 항상 같은 포인트에서 공감하는것도 아니다. 동일시의 불가능을 알고 차이를 인정한다면 감상법은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자연물(동식물과 풍경), 기물(소품), 조형 요소로 나누어 포인트 감상법을 알려주며 예순점의 그림(서양회화 17점, 한국화 19점, 한국 근현대미술 15점, 동시대 미술 9점) 을 예로 들었다.

개인적으로 고흐의 드로잉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두점을 꼽으라면 <슬퍼하는 노인>과 <슬픔>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제1장 인간에 눈길을 보내다> 의 첫 예시작품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생의 버거움을 고스란히 짊어진채로 인생의 바닥에 주저 앉아 무너진 인간의 운명과 고통을 처연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작가는 그녀의 못생긴 새끼 발가락에 주목하여 설명하였다. 생기다 만것 같은 못생긴 발가락에 그녀의 생이 압축된것 같이 애처롭게 다가오며, 그옆에 상승하며 생성하는 풀과 하강하며 소멸하는 그녀의 슬픔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그녀의 슬픔에서, 그녀의 발가락으로, 그리고 그 옆의 풀로 시선을 옮기며 대비되는 분위기(조형적인 요소)에서부터 화가와 그녀와의 관계성(맥락적요소)까지 천천히 훑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 3대 풍속화가 김득신,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에서 인물과 동작, 시선등에 집중하며 그림과 그 시대를 동시에 읽고 나아가 인물간의 심리묘사까지 파고드는 감상법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시대의 거친 파도를 느끼게 하는 이응노와 오윤의 그림도 소개되어 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예술가는 시대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라며 이 두 그림의 '제작 시기'를 주목하게 한다. 소재도, 표현 방법도 시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구체화 된다. 남북전쟁 직후의 일거리 가뭄속에서의 고달픔을 그린 사내들은 궁핍한 시대를 산 서민들의 초상과 신군부와 맞서는 민주 항쟁의 불안한 시대에서의 민중의 정서와 가장의 무게를 가장 효과적인 표현방법으로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원포인트 그림감상'은 '원포인트 글쓰기'로 완성된다. 그림 감상을 마쳤다면 몸속에 묵혀두지 말고 바로 글로 써보자. 보기만 하는 감상은 반쪽짜리 감상이다. 감상의 완성은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작품을 더 자세히 보고 깊이 생각하게 해 작품을 두 번 감상하는 것과 같다. 흐릿했던 느낌이 비로소 선명해지며 감상이 정밀해지고 체계화 된다.

한 점의 작품에서 모든 요소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서 하나를 중심으로 보면 결국 전체로 통한다. 시선이 가는 곳에 집중하여 관찰하면, 결국 연결된 지점과 맥락이 보이고 그림을 더 폭넓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림은 비로소 내게 다가오고, 작가의 세계관이 함께 따라오며,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지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