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멀리 차기 창비청소년시선 37
서형오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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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오 시인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 읽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은 고등학교 국어/문학과목 교사이다.

생선가게에 오래 머물면, 옷에 비린내가 배죠.

마찬가지로,

수업시간마다 시를 구경하면, 시에서 나는 향기가 생각에 배어

어른이 되어도 시를 읽게되죠.

비린내 현상 중

시의 가치를 아는 선생님은 시를 권유하면서 이를 잘 모를 아이들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경험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시적자아는 당연히 아이이다. 자칫 어른의 자리에서 진술하기 쉬운데 화자를 청소년으로 글을 써 청소년들의 마음에 진실하게 가닿을수 있게 하였다.

어른들의 문제가 곧 아이들의 문제로 직결된다

박상률, 신발 멀리차기 해설 중

어린이 청소년 문학이라해서 오로지 아이들의 문제(학교폭력,입시,따돌림,사이버범죄,음주와 흡연,임신과낙태 등)에만 매달릴순없다. 아이들의 둥지인 가정은 부차적 요소가 아니다. 어른,집안환경,사회분위기가 배제된채 아이들만 존재하는 세상은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투영하는 물건이 있다

삶의 모습 단면을 담고있거나, 감정을 담아내는 물건이라 해도 좋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라 이럴땐 고흐의 신발과 의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자신과 고갱의 삶을 비교하며 그린 의자와, 노동자의 삶의 고됨을 보여준 군화.

누군가 이 시를 읽는다면, 잠깐 멈춰서 자신을 투영하거나 나를 대용하는 소재를 찾아보라고 권하고싶다.

그리고 그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바뀔수 있으리라.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신발 멀리차기 놀이를 한다.

발등에 신발을 걸고 힘껏 발을 내뻗자 포물선을 그리며 신발이 날아간다.

마지막에 찬 내가 1등이다.

멀리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우러 깨금발로 뛰어가면서 생각한다.

아빠의 마음도 별거 중인 엄마한테 깨금발로 뛰어갔으면 좋겠다.

잠시 높은 곳 먼데에 갔다가 땅으로 내려온 신발을 찾으러 가듯이,

엄마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서형오, 신발 멀리차기 16p

폰을 만지작거리며 가로수 길을 걷다가 은행 몇 알을 밟은 모양이다.

물렁하고 미끈한 그것들 내려다 보는데

슬며시 피어올라 코를 때리는 노란 향기의 주먹질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신발 두 짝.

신발 바닥을 닦으며 생각한다.

이렇게 맨몸으로 낮고 험한 데를 가려 주는 것이 있었구나!

새벽에 채소를 떼 오다가

승합차에 부딪혀 트럭 안에서 세상을 떠난 엄마와 아빠

나동그라진 신발 네 짝.

그때부터 나와 동생을 마음속에 태우고 살아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낡은 신발 네짝.

서형오, 신발 20p


이 시의 해설을 읽으면 이 시집에서 객관적 상관물로서 화자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담아낸 소재는 바로 '신발'이다.

<신발>은 늘 짝이 있고, <신발 멀리차기>는 그 멀리 던진 신발을 다시 찾으러 가는 게임이다.


웃고, 눈을 부라리고, 울고불고, 지지고 볶고, 껴안고, 춤추고 노래하며, 천천히 시간의 언덕을 깎는 사람들의 단단하고 두툼한 외투.

서형오, 집 44p


마치 '다녀오겠습니다', '갖다, 올게'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나설수 있는 <집>처럼. 입었다 벗을 수 있는 '외투'처럼, 신었다 벗을 수 있는 '신'처럼.

잔잔한 비유에 뭔가 마음이 사르르 녹게 된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다 이러한 분위기를 낸다.

귀여운 발상과 1차원적인 표현에 피식, 웃다가도 어느새 버터처럼 마음 속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시들.

공부를 끄고 쉬고 싶음!

생각을 켜고 살고 싶음!

서형오, 콘센트 35p

오전 내내 졸았다고 담임선생님한테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학교 동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콧등 끝에 날아와 앉는 하루살이 한마리

그 뒤를 따라 문득, 이런 생각이 날아온다.

내가 꼭두새벽까지 웹툰이며 유튜브를 보고

학교에 와서는 졸면서 허투루 보내는 하루가,

하루살이에게는 백년의 시간이다.

서형오, 하루살이 26p


아침 일곱 시

달과 별들이 꺼지고 해가 켜지는 알전구들의 교대 시간

밤사이 켜져서는 꺼지지 않는 사람 하나

서형오, 그리움 73p

야간 경비를 서시는 최 씨 할아버지와 함께 주워 모은 은행들을 흙 속에 묻어 두었다가 한 주일 지나 파보니, 구린 겉 껍질은 온데간데 없고 희디흰 은행알만 소복하다.

몸속에 떼 지어 살던 암세포들을 데리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간 엄마

빈 집의 주인이 되어 매일 눈물 밥을 짓는데

내 마음속 가지에 매달려 있는 엄마 생각들

묻어두면 언제쯤 미움의 겉 껍질은 벗겨지고

희디흰 그리움만 남아 저리 소복해질까.

서형오, 은행 18p


개인적으로 그리움을 말할때도 신발처럼 비유를 쓴 부분이 좋았다.

신발처럼 직관적인 비유.

가로등 불빛과 은행알.

마음속에 소복하게 쌓여 결코 꺼지지 않는 마음과 마음.

그렇게 전체적으로 그리운 마음이 관통하는 시집이기도 하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그늘도 넓어진다.

이는 비난 무럭무럭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만 비유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삶을 더듬더듬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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