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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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400여쪽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놀라운_몰입도 라는 해시테그가 붙여질정도로 책을 펴는 순간부터 정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한번에 읽게된다. 400여페이지나 되는 소설인데,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본 느낌이랄까, 장면의 묘사와 인물의 대화들이 너무나 생생히 서술되어 있어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몰입도가 정말 대단했다. 술술술술 읽힐뿐더러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거듭되는 반전과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했던 것 같다.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인생의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라는 대사속에 우리네 인생사를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라는 세가지 표현으로 밀도있게 압축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모질게, 독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살아가자는 표현을 좋아했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되돌아 보건데 그 세가지의 마음가짐 중 어느것 하나 실천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짐의 말이 아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열정의 감정의 말. 이 세가지를 파도와 함께 빗대어 표현한 저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때 머릿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문장은 내용상 스쳐지나가던 사소한 문장이였다.

이 시대에 태어났으니, 이 곳에 남겨졌으니, 이 생에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결국 나이기에.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야한다.' 라는 말.
소설속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마음으로 내내 살아왔는지를 알려주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을 내내 관통하는 핵심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이시대의 사람들은, 너는 어떻게 살고있느냐고 묻는것만 같았다.


1917년, 어진말
“버들애기씨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하와이)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
로 시작되는 소설의 가장 첫 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소설의 첫 한줄, 영화의 첫장면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첫줄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소설의 원칙에 아주 충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대, 주인공, 나이, 지역, 그리고 시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앞으로 펼쳐질 그 시대의 여성의 연대기 라는 것을 단 한 줄로 모두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몰입도는 이렇게 첫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왜 하필, 포와였을까. 왜 여성들은 사진신부가 되어 포와까지 가야 했을까.
눈길이 갔던 대목은 양쪽 다 주체성을 '빼앗겨있다' 는 점에서 닮아 있다는 것.

소설을 읽다보면 사실 인물관계도가 가장 헷갈려서 읽으면서 옆 종이에 이름이 나오는데로 일단 받아 적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이소설은 아주 간결하게도 세 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중에서도 [버들]로 나오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라 인물관계도를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했던 건 사실 시대적 배경지식을 얼마나 아느냐였던 것 같다.
정확한 시대 배경을 잘 몰랐던 나는, 중간 중간 녹아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검색하기도 했다.
인물이나 사건들이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그려져 있어, 소설이 역사적 고증을 잘 거쳤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소설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참고문헌이 기록되어 있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는 드라마같은 내용전개도 전개지만 이념의 갈등의 표현이 압권이였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러이러했었다고 한줄은 요약으로 알고있는 과거사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생생히 묘사되어 살아난다. 감히 그랬더랬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느낌이다. 피부에 와닿는 체험을 한것같이 이입되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겪게 되었다.
그렇게 세 여성으로의 연대기 외에도 이주민의 삶, 교민사회, 독립운동, 이념 갈등, 노동 현장들을 자세히 알게 될뿐만 아니라 간접 체험하듯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여성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자세가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며 시대에 맞서고자 앞장서고자 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이 당돌함과 시대의 불합리성에 항거하고 나라의 어려움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 상상해서 그려진 인물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TV에서 지난 수천년의 (남성 서사 중심의) 역사속에서 과연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한 일들이 없었을까에 대해 담론을 나누는 것을 본적 있었다. 아니 단지,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라는 결론은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때문에 배움에 대한 열망,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기주도적으로 설계하여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그 시대의 10대 여성의 삶은 대부분 버들이나 홍주의 모습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속에서 1919년도에 독립운동에 대한 언급부분에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용되었던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생각나는건 그녀들과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이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두를 기록하지 못했고, 기록되지 못했을 뿐.

‘딸은 출가외인이 될 사람이니 어릴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던(63p), 남자가 첩을 두는 건 흉이 아니지만 과부의 재가는 흉이 되는 곳(80p)이 조선'이었다는 시대적 배경속에 결국 편승되고 꺾였을 꿈이였을테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은 분명 깨어있고 시대인식을 바꾸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록된 여성들의 이야기(천연희, 이희경, 한국이민사박물관)로 사회, 정체,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와 여성사에 대해 추측해 볼 뿐이다.

책을 읽으면, 마지막 챕터의 반전과 함께 여성들이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을 법한 부분이 바로 이름에 대한 부분이다.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이 지어지고 불려지는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존재론 적인 관점에서, 이 책에서의 스스로 이름을 짓고자 하는 장면은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장면이였다.

하와이가 아닌 포와, 붙들이가 아닌 에스더, 진주가 아닌 펄.
그래서 인지 나중에 그녀의 딸이 "I'm Pearl." 이라고 하는 장면은 어쩐지 진한 울림을 준다.


"우리 배 타기 전에 서이서 사진 한번 박자."“



버들, 송화, 홍주의 사진
(*천연희님의 사진을 참고해서 그려봄)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떠날 날이 잡혔을 때 홍주가 말했다. 포와에 닿으면 한 사람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그 전에 먼 길을 함께 온 친구들과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간직하고 싶었다. 셋은 사진관으로 갔다.

(가짜인)꽃다발, (기생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부채, (무난한) 양산. 가짜라 탐탁지 않았던 꽃다발도 사진 속에선 진짜 같아 보였을 그 사진속에는 아직은 애기같았을 송화, 우직한 버들, 경험이 많아 대범하고 꾸밀 줄 알았던 홍주가 있었다.

세 사람은 5월의 신부가 되어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전, 그러니까 누구댁, 누구 엄마가 되기 전 온전히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어 남겼다.

그리고 그 뒤로도 기념이 되는 몇장의 사진들을 남기며 자신들의 삶의 연대기를 기록했다.
(그 사진들이 담긴 상자는 후에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앞서 언급했던 여성사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거사를 치르기전에 남기던 사진처럼 이 세사람의 사진이 결연하게 느껴졌다. 천연희님의 사진이 그시대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니 이들이 사진찍는 모습이 무척이나 찡하게 와 닿았다.


"고마, 퍼뜩 일나소. 지 손도 놓칠 깁니꺼?"
버들의 걸크러쉬 장면과 버들의 지극히 소박한 바람들.
버들은 낯선 땅에 갈때도, 그곳에서 마음을 둘때도, 마음을 두고 살아갈때도 내내 따뜻했다.
얼마나 애를쓰고, 얼마나 힘쓰고, 원망하고, 분해하고, 난리도 아니였던 그야말로 어느 한가지도 쉬운게 없었던 삶의 파도 속에서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스도록 삶을 꾸려나가던 사람이 버들이였다.

그녀들이 키운 자녀들이 후에 자신의 부모세대를 부끄러워해야 할지,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지 헷갈려 하더라 할지라도 그녀들은 치열하게 그 시대의 파도를 넘어온 것이다.

'내는 여까지 오는 것만도 벅차게 왔다.
인자는 니가 꿈꾸는 시상 찾아가 내보다 멀리 훨훨 날아가그레이.
그리고 니 이름처럼 고귀한 사람이 되그라.'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마지막장

버들은 편안하고 환한 얼굴로 자식에게 얘기해준다.
자식은 온 생에 꿈을 꾸고, 찾고, 쫓아온 세 엄마들의 생을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비록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가 이제껏 매순간, 최선을 다했으리라는 그 마음을 알게된다.
펄은 웃으며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않고, 다가오는 파도를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어느 한가지도 쉬운게 없었다.

파도는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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