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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메리카 ㅣ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김훈 <칼의 노래>
이 문구가 유명한걸 보면, 사람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자연이 그 자리를 대체해 지구가 더 건강해질 거라 생각한 건 나 뿐만은 아닌가보다. 우리는 흔히 자연은 허물을 덮어줄 신 같은 존재, 언제 돌아가도 우릴 다시 품어줄 엄마의 품 같은 존재라 여기고 있다. 자연은 위대하니까 우리가 내는 상처쯤은 늘 언제나 회복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한계를 가진 인간인 것처럼, 지구도 우릴 품어주는 데 한계를 가진 생명체이다. 상처가 작으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너무 깊은 상처는 사망을 일으킨다.
《헬로 아메리카》는 이 한계를 넘어선 그러니까 지구도 손쓰지 못하는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구에 수많은 위험 물질을 뿌리 깊게 박아놓을 땐 언제고 인간은 무책임하게 돌아선다. 200년 전 있었던 이주의 물결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서에서 동으로 방향만 바뀌어 고스란히 되풀이되었고 미국이 완전하게 버림받는데 몇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의 타임스퀘어에는 선인장이 피고, 센트럴파크는 애리조나처럼 붉은 황야로 변하고, 허드슨강은 바싹 말라버린다.
"세이지 덤불이 굴러다니고 기둥과 부채 모양의 선인장이 흙먼지 속에 솟은 모래 평원이... 모래언덕은 최소한 3미터는 쌓여서, 사무 건물의 2층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 정도로 돌과 흙을 쏟아내려면 태양이 애팔래치아산맥을 절반쯤 무너뜨려야 했을 것이다."

서부 개척시대보다 더 황량해진 미국 땅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첫 발을 내디딘 남자가 있다. '웨인'은 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미국을 보고 일확천금을 꿈꿨다. <아폴로호>를 타고 와 말과 수레를 끌고 한 손에 지진계와 방사능 계수기를 든 그의 모습이 얼마나 그럴싸한지 미지의 땅을 곧 개척할 나폴레옹(콜럼버스 아니고.)같았다. 역사에 남을 위인 같은 포스를 풍기는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상하단 말이다. (무식해서 용감한 현실감각 제로인 이 청년을 보며 정규 교육 과정(=역사)이 왜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ㅋ)
어쨌든 <아폴로호>에서 내린 웨인의 눈앞에 펼쳐진 건 금이 아니라 모래 언덕과 청동 가루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미국 땅을, 아무도 없으니까 지배해보겠다는 누구도 안한 야심 찼던 그의 포부는 아무에게나 줘버려야 했던 게 아닌지... 이름뿐이지만 어쨌든 <아폴로호>를 타고 온 인간이라면 뭐 하나라도 부족민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낙타를 타고 한 손에 지팡이나 막대가 아닌 만년필과 계산기를 들며 회색 핀 스트라이프 소모사 정장을 전통의상으로 초이스 한 경영진 부족의 센스에도 밀리는 이 청년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옛~다, 응원이다!
이것저것 다 말할 수 없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또 있다. 지금껏 누리고만 살아온 인간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게 아니란 거,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도 있다는 거, 작고 사소한 단초가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는 거다. 종말 이런 너무 막연한 상상 말고 좀 더 현실적으로(?) 미국의 파산 정도로 수준(?)을 낮춰 소설을 되짚어보면 몰락의 단초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SF 초전위적 현대소설이 이토록 교훈적인 건 아무래도 미세먼지가 남 일 같지 않아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웃자고 쓴 작품에 죽자고 달려든 게 민망하지만 차를 못 탄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으다앗!(ㅎㅎ작가가 봤다면 '아직 멀었구먼.'이라며 혀를 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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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향수가 느껴지는 매드맥스의 또 다른 버전이 궁금하다면 초이스!
상상력에 자신 있다면 추천! (그들에게 '날개'가 되어줄 소설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