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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 -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나누는 예술과 삶에 대한 뒷담화
이경남 지음 / 북스고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기 전 구상하고 있는 큰 그림을 완성시키려고 한 달 내내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밤낮으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네. ... 죽기 전에 나의 모든 에너지와 고통스러움 가운데서도 열정을 다 쏟으려고 하네."
- 폴 고갱이 몽브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폴 고갱은 가장 아끼는 딸을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삶을 정리하며 스완 송(Swan Song), 그러니까 마지막 유작을 남긴다. 그 작품이 바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는 작품 너머에 있는 예술가를 조명하고 있다. 예술 작품이 의미를 갖는 건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와 그가 사랑했던 이의 생을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 가진 의미를 알고 그림을 마주하면 이전과는 다른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예술은 특히 다방면의 지식을 요한다. 큰 틀이 되어줄 역사를 알고 배경을 상상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이 살던 시대, 지역을 떠올리는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But!
삶은 천태만상이라지 않던가 작품 하나 하나를 이해하는덴 미술사책보다 화가의 사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런 책이 더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상상력 만랩이라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오귀스크 마네 부부>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나? 작품 이름과 그림을 보고 부모인가 유추할 수 있다. 화가는 왜 부모를 어둡게 그렸을까? 멋진 옷을 입고 밝고 행복한 표정을 한 초상화가 아닌 부부싸움 한 판 하고 난 모습을 그린걸까.
"나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대단하다. ... 두 분의 교육적 열성이 높아질수록 두 분 사이는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코트 뒤로 숨겨진 왼손은 매독 후유증으로 마비되어 있다. 당시 정부를 두는건 흔한 일이었던만큼 매독도 흔했다. 하지만 교양을 중요시하던 상류층에게 매독은 숨기고 싶은 질병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정부를 사랑했던 마네는 아버지와 여자를 공유(?)했고, 셋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형제일지도 모를 레옹을 아들로 입양하고, 훗날 아들도 매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르게 보인다.

여자로서 개척자의 길을 걸어야 했던 베르트 모리조의 생은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온화하고 행복하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따뜻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림의 힘이 크다.
근친혼으로 약한 몸을 물려받고 사고로 다리의 성장이 멈춰 바깥생활에 제약이 많았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불평대신 책을 읽고 주변을 관찰하는 힘을 길러 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독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겉으로 보기엔 별 변화가 없다. 하지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감상'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감상'도 에너지 소모가 클 수 있단 걸 책을 읽으며 느꼈다.
밥을 먹으면 소화되고 영양분이 흡수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감상을 통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공감하는 시간이야말로 티는 나지 않지만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잘 소화시킨 예술이 우리의 삶 건강을 더 윤택케 해주리라 믿는다.
상처, 고단함, 컴플렉스, 우울증, 신체적 질병을 견뎌내고 이겨내 자유를 쟁취한 화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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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변기!) 의 편견을 없애는 비법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