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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당신의 여름은 어땠나요?"

청귤청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집 주방을 점령했고,간간히 만들던 마스크줄도 작심하고 대량생산했다.바느질이 배우고 싶단 아이와 주머니도 만들었다.
이사로 가장 바빴던 최근 며칠 사이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두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어쩐지 종일 "논 것만" 같다.
김치가 제법 손에 익었을만큼 부지런히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까닭은 아무래도 학교도 못가, 어린이집도 못가, 일도 못해... 머리가 "못하는 일"을 안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이렇게 보냈어요.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나요?"
남들은 어떻게 지내나 컨닝이라도 해볼까. 알림장을 쓰고 선생님께 도장받듯 누구에게라도 확인받고 싶다.

위산 : 여름 내내 무엇을 했느냐?
앙산 : 땅을 갈아서 수수를 뿌렸습니다.
위산 : 음,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앙산 : 여름 내내 무엇을 하셨습니까?
위산 : 아침에는 죽을 먹고 낮에는 밥을 먹었다.
앙산 :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군요.
최진석 선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국 위앙종 창시자인 위산선사와 앙산선사의 대화 중에서
나처럼 주저하고 고민하는 이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사히 잘 보내 이리 마주할 수 있으니 그거면 됐습니다. 잘 지내셔서 다행이에요. "
별거 없는 하루에 세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욕심이 꿈틀댄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쉬지 않고 미세하게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레인 스캐리 (<뉴필로소퍼> Vol.8)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의 저자는 욕심이 없는 것 같다. 산책길에 만난 들풀을 엮어 쓴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디선가 <맛있는 커피와 음악 🎵 - 카페 '곶' 여기서 좌회전> 표지판이 나타날 것만 같다. (무지개 곶의 찻집)
도심이 아닌 곳에서 서점을 하고 있어서 그런걸까. 저자가 걷고 있는 길은 마치 "'길'의 모양을 띠고 있지만,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에 자동차 바퀴 자국이 레일처럼 뻗어 있"기만 한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무지개 곶의 찻집 p.62 발췌)
남에게 인정받는 것 말고 내가 내게 부여하는 자격이 곧 자신의 지위라 말하는 저자는 야자나무같은 사람이다. "어디에 있든 자신을 중심으로 풍경을,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야자나무.(p.104) 심지가 곧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험이 그를 흔들리고 밟혔을까.

"질경이는 밟히면서 번식한다. ... 사람의 발이나, 자동차나 자전거 바퀴가 밟고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씨앗이 그 밑에 붙어 여기저기 퍼져나간다. ... 그래서인지 꽃말도 '발자취'. 독일에서는 사람 발길이 잦은 등산로를 따라 핀다고 해서 '길가의 파수꾼'이라고도 부른단다.
삶이 질경이 같기를 바란다. 밟히고 밟혀도 조금씩 나아가는 삶. 인간으로 존엄함의 경계를 지키며 나아지는 삶. 기꺼이 토끼와 말의 먹이가 되어주는 그 키 작은 풀처럼 작고 소중한 관계라도 놓치지 않고 내어주는 삶."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질경이처럼 밟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