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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린코는 열 다섯 살에 떠났던 엄마 품으로, 고향으로 십년만에 다시 돌아옵니다. 이쯤되면 엄마와의 풋풋한 추억이 다시 둘을 이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린코의 추억은 엄마보다 할머니와 더 깊어요. 엄마는 늘 남자품에 안겨 있는 헤픈 여자였고 거기에 질려 딸은 할머니에게 도망갑니다. 할머니는 엄마와 아주 다르게 음식을 손수 해주시며 손녀를 살펴 주셨어요. 린코는 할머니(의 손맛)를 추억하며 고향에서 식당을 엽니다.
요리의 세계로 부드럽게 손을 이끌어 준 사람은 할머니였다.
처음에는 보기만 했던 나도 차츰 할머니와 함께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할머니는 그리 많은 말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일일이 간을 보게 해주었다. 나는 씹을 때의 질감과 혀에 닿는 감촉, 소금의 양 등을 조금씩 내 혀로 익혀 갔다.
P.28

첫 손님으론 한달동안 창고를 식당으로 바꾸는데 두 팔 걷고 도와준 구마 씨에게 남자친구와의 추억이 깃든 석류 카레를 대접합니다. 두번째로는 동네에 매일 까만 상복만 입으시는 할머니를 초대하며 본격적으로 달팽이 식당만의 맞춤 코스 요리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긴 시간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잠이 든 할머니는 그 날, 이십 년 넘게 기다렸던 싶어했던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달팽이식당은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
P.219

사실 그녀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식당을 연 게 아니에요. 함께 식당을 차리기로 한 남자친구가 재산과 집안의 가재도구까지 남김없이 털어간 충격으로 말을 잃고 고향에 내려온 거 였거든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낸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남자친구의 배신은 치명타였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걸 보며 마음 속 헛헛함을 채우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행복으로 대리만족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린코도 금방 깨닫게 됩니다. 반면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행복을 찾습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할 수 있다는거. 참 아이러니하고 슬프지만 그렇잖아요.
싫어하는 감정은 반드시 맛에 반영되니까, 마음도 머리도 비우기로 했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
할머니가 곧잘 해 주시던 말씀이다.
나는 재차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P.205

달팽이 식당을 열고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날수록 의문이 커졌어요. “도대체 왜 엄마는 초대를 안하는거야? 엄마도 오지 않고? 왜???” 의문이 마구 커져 답답함이 느껴질 즈음, 도통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린코가 엄마를 받아들 일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기고 맙니다. 엄마가 악역, 할머니가 천사이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우리 모두가 그렇듯 양면성이 있었습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요.
린코가 할머니와 엄마를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이해해가는 시간은 결국 자신을 수용하고 치유해가는 과정과 같았어요. 할머니는 딸에게 못다 준 사랑을 손녀에게 주고, 엄마는 할머니에 반감이 들어 자유분방한 삶을 택해 딸에게 사랑을 줄 줄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제 나름의 사랑을 준거란 생각도 들어요.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어서 문제였죠.
몸이 상처를 자연스럽게 치유하고 회복해가는 과정은 마치 자연의 순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치유와 회복이 ‘순리’가 되려면 주체의 돌봄이 꼭 필요합니다. 린코는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세상을 이해하는지를 보며 배웠고, 성장했습니다. 음식은 사라져도 내 사랑이 그 안에 들어가 있기를 바라기에 우린 그렇게 남을 위해 음식을 만드나봅니다.
“매실장아찌는 어느새 조금씩 녹아서,
이윽고 혀 위에는 조그만 씨와 할머니와의 추억만이 남았다.”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