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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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가 일영을 좋아하는 건 그렇게 빡빡한 생활에서 일영이 획득한 세상만사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지긋지긋함 같은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살겠다‘라고 하는 일관된 당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무던함, 씩씩함과도 연관됐다.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24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

경애는 E가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싫었다. 영화를 본다는 건 러닝타임 위를 걸어 자기 마음속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가 자기만 본 영화에 대해 열을 올려서 이야기하면 경애는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E가 그렇게 혼자 몰입했던 시간과 마음의 동선에 신경이 쓰이면서 서운해지곤 했다. 경애에게 등을 돌리고 어딘가로 다녀오는 일 같았다.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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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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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앞의 실재, 무감각함에 대하여

(154, 187, 226, 235, 263, 414)


2. 모든 것은 최대한 인간의 편의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 설비도 맛도 크기도. 삶도 죽음도.

(23, 43, 166, 205, 432)


3. 사료값을 줄이는 게 최대 관건

(33, 93)


4. 돈을 많이 벌려면 무조건 많이 키워야 해

(117)


5. 버려진 인간의 노동

(172, 174)


6. 같은 것과 다른 것이라는 구별은 혐오를 낳고

(218)


7. 인생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 짓밟아야 했던 그 많은 개들

(336~337)


8. 문제의 세상, 문제적 셈법

(346, 355)


내 몸의 고통이 눈앞의 비할 바 없는 고통에 무감각해 지게 만든다는 사실.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19)

조금씩 전문 용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아리들을 ‘처리‘할 때는 죽인다, 잡는다고 하는 대신 불량품을 도태시킨다고 중얼거린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거다. 이건 도태다, 도태, 도태, 도태. 어느 순간엔 정말 닭을 죽이는 것이 문서를 파쇄하거나 삼각 김밥을 폐기하는 것처럼 사무적으로 와닿을 때가 있다. (121)

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63)

나는 그가 불행한 사건을 저지르지 않고 재기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 많은 개들을 짓밟아야만 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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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느린 만화가게 - 생태환경만화모음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부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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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


<김산하의 야생학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슴을 쳤던 문장. 

생태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애쓰지만, 순간순간 갈등하며 흔들리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줄이었다. 일관되지는 하더라도 지구시민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기 위해 나는 생태환경문화 월간지 <작은것이 아름답다> 구독한다. 하필이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뭇생명에 대해 알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무려 창간 21주년!! 맞아 출간한 <작고 느린 만화가게>에는, 열일곱 명의 만화가가 참여한 생태환경만화 서른여섯 편이 담겨 있다. 다양한 관점과 그림체로 풀어낸 이야기들이지만, 이것은 얘기가 아닌가, 싶을 만큼 나와 비슷한 결의 고민들이 작품마다 소곤소곤 들려와 정겹기도 하고 위안도 되었다. <생명을 품다>, <자연을 잇다>, <생활을 짓다>, <시간을 찾다>, <생각을 열다>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엮인 작품들 가운데 특히 황경택, 소복이, 김은성, 장차현실, 달군의 만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황경택 작가의 작품들은 만화가이면서도 숲연구가, 생태놀이 코디네이터로써 터득한 지혜를 독자에게 나누어준다. <숲속의 현자>에서는, 우리가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면, 나무를 닮으려 노력한다면, 경쟁에 찌든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있을 거라 이야기한다. <새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멀리 가거나 비싼 장비를 소유할 필요 없이그냥 잠시 여유를 갖고 눈만 감으면됨을 일러준다. 하려면 도구부터 마련하려 드는 나로써는 문득 부끄러워지면서도 고마운 충고다. < 노아의 방주>에서는생물종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전쟁이나 지구온난화를 막는 것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필요함을 역설하는데, 백번천번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우리 지구가 여섯 번째 대멸종기에 들어섰다고 경고하는데, 지난 다섯 번의 경험과는 다르게 인간이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이를인류세 부르고자 한단다. 결자해지라고, 원인을 제공한 것도 인간, 문제를 실마리를 가진 것도 인간. 그러니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변화로부터 나오는 것일 . 


장차현실 작가의 작품들은, 생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 습관의 변화도 촉구한다. < 인형 메리>에서는 플라스틱 문제를, < 깔끔여사 살림일기> <청소>에서는 합성세제, 쓰레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유혹>에서는 현대인 우리 모두가 저지르는 잘못, 과소비에 대해 말한다. 가장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들이라 고개 끄덕이고 빙그레 웃으면서 읽은 작품들이다. 지구를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나만 해선 되는 일들. 쓸데없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물건들은 아껴쓰고 나눠쓰고, 환경에 해가 가는 물질들은 쓰지 않도록 하는 . 아무래도 <작고 느린 만화가게> 친구들과 같이 읽고 곁에 두어야 같다. 그래야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들여다 보고 심기일전 있을 테니까. 


달군 작가의 작품들은, 그림체와 작가의 생각이 두루두루 사랑스러워서 예전에도 적이 있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겨울, 하루>에서숲에 있으면 나무들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 들어어쩐지 혼잣말을 자꾸 하게 된다 나무들에게죄송합니다. 지나갈께요하는 장면이라든가, 겨울이면 보아뱀 신세로 사는 처지라든가, <산책할까?>에서나이 들어서 인생에 아무 것도 없을까봐두려워하며 엉엉 우는 장면이라든가, 겨울산이보송보송 솜털 흩날리고 홍조를 띄더니, 부글부글 녹색으로 끓어오르는 표현이라든가 하는 것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소복이 작가가 그린 <나는 도도새였다> 장면을 꼽겠다. 도도새였다가, 돌고래였다가, 북극곰이었다가, 이제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주인공의 눈물.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도도의 눈물이 사람의 눈물로 옮겨가는 순간,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라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대로라면 우리의 순서가 머지 않았다는 두려움. 


부디 많은 이들이 <작고 느린 만화가게> 들러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보기를. 

당신도 나도, 나무의 마음으로 도도새의 마음으로 살아갈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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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 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117.

안되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더 이야기하면 우맂도 모르고 나나가 울기 시작하면 소라가 운다. 소라가 울면 나나가 울고 나나가 울어서 소라가 울고 소라가 울어서 나나가 우니까 소라가 운다. 이것은 그냥 아는 것. 한번 작동하면 내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메커니즘처럼 멈추지 않을 거다. 나나도 이것을 알고 소라도 이것을 알지. 그 때문에 나나는 우는 법이 없고 소라도 우는 법이 없지. 좀처럼 없지. 울어버리다니, 그것은 제일로 당치 않은 일인 것입니다.


122~123.

나나야.

.............

무섭지 않아? 하고 소라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영향을 주고 그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남은 평생 지켜봐야 한다는 거...... 계속 걱정해야 하는 뭔가를 만들어버린다는 거...... 무섭지 않아? 하고 말입니다. 나나는 무섭지. 아직은 실감이고 뭐고 부족하지만, 무서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모르니까 무섭다고 느끼는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무섭더라도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어. 각오하고 있어. 각오가 필요할 정도, 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장해지지만 그래도 각오하고 있어. 실은 얼마큼 각오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도대체 뭘 각오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라서 자신감 같은 것과 더불어 호흡마저 희박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각오하고 있어 그래도 나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소라는 잠들었는지 생각에 잠겼는지 더는 말이 없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립니다. 물어놓고 대답도 듣지 않고 잠들어버리다니 야속하다 야속해, 라고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을 덮습니다.

너무 무모한 걸까.

이따금 이렇게 생각할 때도 있다는 것을 소라에게 말해도 좋을지 망설입니다.

이런 이유로 낳겠다고 결심한 거면 너무 무책임한 걸까.


하지만 생각했어.

이렇게 열심히 꿈을 보내올 정도로 태어나고 싶은 아이로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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