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 정승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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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다. 나는 천천히 가로등이 밝아오던 거리를 정처없이 쏘다녔다. 나는 모든 걸음이 어딘가를 향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걸음은 언어의 심연, 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뿐이었다. p.143 

언어는 매우 자의적인 것으로 때로 그것은 함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희의 수단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에게 언어는 그러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은유와 의인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관념어에 신체성을 부여한다. '삶' '현실' '마지막 순간' 같은 것. 탁자 아래로 떨어진 '현실'을 부여잡으려 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우습게도 '실존'하는 것이다. 내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랑'으로 인해 갈비뼈가 눌리고 내장을 찌른다는 상상. 잠들기 위해 불러낸 하얀 양떼의 첫 번째 양이, 죽어도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아 그것을 몽둥이로 내려쳐 죽이고야 잠에 드는 주인공.. 아이러니하게도 상상으로 가득찬 그녀의 표현들은, 때로 섬뜩하게 우리의 삶을 묘사해 낸다.  

그것이 페리 로시가 생각하는 단편소설의 책무이며 묘미인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인용해 둔 독일의 소설가 노발리스의 잠언, 진정한 단편소설은 예언적, 즉 이상적인 동시에 전적으로 필수적인 재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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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이룸 해외문학 2
에르네스토 사바토 지음, 조구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6월
품절


나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하나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내가 죽인 사람이었다.>-17쪽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밤이 되면 나는 낡고 쓸쓸한 어느 집을 방문했다. 이 집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고, 또 무한히 갈망한 곳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 집에 들어서면 몇 가지 추억이 나를 인도했다. 하지만 이따금 나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했고, 또는 몰래 숨어 있던 적들이 내 뒤를 공격하거나 사람들이 나를 두고, 나의 순진성을 두고 속닥거리거나 조롱한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다. 그들은 누구였으며, 또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지? 하지만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있게 되면, 사춘기 시절에 품었던 옛사랑이, 그 사랑으로 인한 떨림과 더불어,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가벼운 광기, 두려움, 환희 같은 감정과 더불어 내게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꿈속에 나타났던 그 집이 바로 마리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104쪽

그리고 이 지옥의 벽들은 날이 갈수록 더 밀폐된 상태가 될 것이다.-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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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절판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맞추는 것을 뜻한다. -103쪽

자전거야말로 구텐베르크 이후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가능성을 온전히 구현한 최대의 발명품, 그것도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발명품인지도 모른다.-153쪽

여기서 공과 사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217쪽

1980년대 말, 그러니까 체제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동독의 한 극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희곡을 썼다.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 랜슬롯은 묻는다. "세상 사람들은 성배와 원탁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우리의 정의와 우리의 꿈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 나는 아직도 성배를 믿는 걸까, 하고 그는 자문한다. "모르겠다" 랜슬롯은 말한다. "그런 물음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 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254쪽

소련이 점령한 중유럽에서 살았거나 그곳 현실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산주의자로 남는다는 것은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과 확신도 그대로 있었고 공산주의 이념이 이 세상을 바꾸어놓으리라는 믿음도 여전했지만 우리의 희망, 아니 적어도 나의 희망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파국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진보의 폭풍에 휘말려 날개를 접을 수 없는 '역사의 천사'처럼 불가피한 비극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역설이라면 역설이었지만 예전의 신념을 그래도 쉽게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어렵사리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시대에 서방 어디에서나 기승을 떨치던 반공주의였다.-298쪽

작은 위기가 잇따라 닥치다가 소련 군대의 헝가리 재점령이라는 끔찍한 사태로 절정에 이르렀고 다시 몇 달 동안 뜨거웠지만 결말은 뻔했던 논쟁을 거치면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패배로 곤두박질친 그 악몽 같은 해의 분위기도, 기억도 이제 와서는 아련하기만 하다. 영국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가 쓴 <보리 닭고기 수프>는 공산주의 신념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대인 노동자 집안의 이야기인데 이 희곡을 보면 '이념을 잃어버리는 아픔과 이념에 매달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337쪽

1956년의 나라는 사람을 자서전 집필가의 눈이 아니라 역사가의 눈으로 되돌아 보았을 때 물론 당을 떠날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당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영국 젊은이로 공산주의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져갈 때 중유럽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내가 공산당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운다는 뜻이었다. ...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1932년 베를린에서 10대 소년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소련을 비판하고 회의한다 하더라도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이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마치 탯줄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 ... 역사가가 아니라 자서전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와서 말한다면 개인적 감정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 그래서 나는 남았다. -357쪽

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이런 기준으로 따졌을 때 1968년 5월 혁명은 학생 혁명에 가까웠으나, 당시 파리 길거리에 나붙었던 벽보를 보았던 사람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거기에 적힌 문구로 보자면 혁명치고는 좀 묘한 혁명이었다.-410쪽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회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다. -459쪽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508쪽

생지옥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이미 여기 있습니다. 같이 살아 있는 데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옥입니다. 그것을 견디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길을 사람들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을 받아들이고 지옥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지옥이 거기 있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을 때까지요. 두 번째 길은 위험한데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옥의 한복판에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고 알아보고 그것이 이어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는 것입니다.(이탈로 칼비노 재인용)
-584쪽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672쪽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 ... 심지어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으로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6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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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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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칼라의 골목골목에서 나는 휴식을 맛보았다. 멀리 있다는 것이 곤히 자는 것보다 편안한 휴식이 되어 줄 때가 있다. 그때 시간은 한없이 유연해져 그 속에서 자아는 저항 없이 녹아들고 정신은 주저 없이 열린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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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모든 기록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간디서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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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감독님은 오늘날 칠레에서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며, 칠레가 완전히 사회주의화될 때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 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 (전략)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위대한 혁명적 전망을 위한 길을 열고, 혁명이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동시에 현실의 증인이 되며 - 그러나 미래의 변형을 설계하면서 - 그리고 군중의 선동체가 아니라 모든 사안들의 전위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은 종속된 국가에서 영화의 역할이라는 것은 문화적 식민주의의 모든 흔적을 정확히 깨뜨리고 혁명을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후략)

미겔 리틴 감독은 <칠레 전투>의 빠뜨리시오 구스만 감독과 함께 칠레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 참모 역할을 했고, 아옌데 당선 후에는 '칠레 필름'의 대표로 임명되어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영영화사의 비전을 개척하던 그는, 쿠데타 이후 망명길에 오른다.  

미겔 리틴은 12년의 망명생활 중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여 칠레로 밀입국, 6주간 목숨을 건 영화제작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바로 <칠레의 모든 기록 acta general de chile>이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감독의 경험을 기자 출신 대문호 마르께스가 인터뷰 하여 완성한 작품인데,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영화를 보는 듯 재미있게 술술 읽혀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신분을 위장한 망명 영화감독이라는 사실 자체가 영화 같기만 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영화인으로서의 사명감, 감독의 역사 의식 같은 건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는, 70년대 초 뉴욕에서 있었던 미겔 리틴과의 대담 내용인데, 뭐랄까, 너무나 정답 같은 그의 답변은 한미FTA가 체결된 지금, 21세기 한국 독자의 눈에 서글퍼 보이기만 한다. 찾아보니 2000년대에도 세 편 정도 제작한 걸로 나오는데, 지금 그가 가진 생각들이 난 너무 궁금하다. 

-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제국주의와 종속 경제를 고려하거나 보여주지 않고서는 정치 영화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제국주의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민중으로 하여금 개닫게 하는 영상과 대사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제국주의'와 '혁명'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이 사용되어 민중은 이제 두 가지를 구별해내지 못합니다. 저는 현학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민중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의 관심은 항상 이러한 생각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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