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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수입이 많이 늘었으니까 이제 자기는 글쓰기에 전념해. 글쓰기에 적합한 공간도 있고, 애덤에게는 붙박이 유모도 있어. 자기도 일 때문에 글쓰기가 힘들다고 말했잖아. 망설일 게 뭐 있어?"
아내는 뭐라 대답하지 않고 헛기침만 했다. 아내는 종일 집에 틀어박히는 걸 두려워했고, 도시생활에서 이탈되는 걸 두려워했고, 또다시 실패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설득했다. 왜? 아마도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기묘한 남성우월주의에 입각해 '작가 아내를 지원하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아내가 그냥 집에 처박혀 실패하기를 바랐는지도,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주변 사람도 같이 실패하기를 바라니까. p. 59
... <빅 픽처> 초반에 묘사되는 벤과 베스 부부는 관계의 파산 직전까지 와 있다. 둘 다 예술가를 꿈꾸었지만, 그저 그런 상류층의 삶에 머문 상태. 베스는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벤의 응원에 기대어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지만, 그 꿈이 좌절되자 모든 괴로움의 혐의를 벤에게 뒤집어 씌우고 만 것이다. 벤은 어떻게든 잘 해나가고 싶지만, 이미 돌아선 베스의 마음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 벤의 심란한 심중에 대해 작가는 위와 같이 쓰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바닥까지 탈탈 털어보면 드러나고 마는 일말의 진심.
그날은 애덤의 생일이었다. 나는 저녁 여덟 시에 앤에게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맥주를 사오겠다고 말하고 나서 집을 나섰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 나오자마자 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숫자들, 또 숫자들. 101번 고속도로는 10번으로, 10번은 15번으로 이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모하비사막으로 들어섰다. 바스토를 지나고 소다사맥을 가로질러 네바다 주 경계까지 달리고 있었다.
새벽 두 시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운이 좋으면 10시까지 솔트레이크까지 갈 수도 있겠지. 그 뒤에는? 그 뒤에는? 나는 계속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길의 종착지는 오직 집뿐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5번 고속도로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다시 15번 고속도로 서쪽으로 얼른 들어갔다. 모하비사막의 일출, 10번 고속도로의 이른 아침 차들, 101번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겪으며 태양이 가장 높이 솟았을 때 벤나이즈로 돌아왔다.
또 다시 맑게 갠 계곡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막다른 길로 들어가 진입로에 차를 세웠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앤이 양팔로 잭을 안고 햇살 아래 서 있었다. 앤의 얼굴은 밤새 한숨도 못 잔 표정이었다. 그러나 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앤은 그저 나에게 지친 미소만, 지친 어깻짓만 해보였을 뿐이다. 그 미소, 그 어깻짓은 이렇게 말했다.
‘다 이해해. 다 이해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다가 잭이 나를 보고 양팔을 흔들었다.
“아빠, 아빠.”
잭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p. 486~487
... 꿈을 잃고 살아가던 벤은 우발적인 사고를 계기로, 다른 사람이 되어 원하던 사진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다시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사진가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때처럼 인정받지 못 하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삶, 아내의 노동에 기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된다. 일부의 만족과 어쩌지 못할 불만족, 그러나 집은 돌아와야 할 곳, 돌아갈 곳은 집밖에 없는 삶. 으음... 말은 아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