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 십자군 전쟁에서 배우는 평화를 위한 지혜
박승찬 지음 / 오르골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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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비춘 두꺼운 책에서,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 접할 수 있는 영상 강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역사에 비춘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이 책이 아니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실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닌 저자 나름대로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이에 그 결과 나름의 결론을 얻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그것에 도달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는 감상도 함께 받는다.

그러나 나의 어린시절 마주한 (또는 교육받은) 십자군 전쟁과 비교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십자군의 역사는 크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역사적 관점은 해당 전쟁의 진행 등에 비추어 인류가 벌일 수 있는 죄악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있다. 과거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차이점과 종교적 열망... 그리고 혼란을 극복해 온 수 많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에 대한 해석 등은 크게 십자군의 역사 아래 일어난 '인간의 행동' 뒤에 밀려났고, 덕분에 단어 그대로 '대량학살' 과 '광기' '전쟁범죄' 에 걸맞는 비참함과 끔찍함이 현대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십자군 전쟁의 본질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주장하는 바에 있어서, 오늘날에도 '국제사회의 관계'나 '역사의 상식'으로서 이해되는 어느 가치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 비추어진다. 예를 들어 과거 왕정시대에 (국가 사이의) 질서란 누가 형이고 아우인가?에 대한 상하관계의 정립이라 한다면, 오늘날의 국제관계는 크게 강대국 중심의 이익을 둘러싼 이해와 협력이 바탕이 되어진다. 또한 '역사는 승자들에 의하여 기록된다'라는 말이 증명하는 것 처럼 오늘날 진행되는 전쟁 또는 국제 사회의 여러 현상들이 비추어지는 것과 같이 세상은 흔히 정의보다는 힘과 이익등이 우선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마주 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는 과거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여전히 그럴싸한 이데올로기 (또는 정의와 신념)을 앞세우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간의 이익을 두고 힘겨루기를 계속하는 인류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또 비판하고자 한다. 또한 머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결말 또한 이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를 더욱 혐오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정당한 전쟁론이 전쟁을 예방하고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전쟁론이 비폭력 변혁을 위한 도덕적 의무를 저해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54쪽

더욱이 사건의 본질을 망각한 체 저마다의 정의에 매몰되어 끝없는 편가르기와 갈등 혐오의 정서가 드리워진다면... 이에 국가간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국민과 개인의 영역에 있어서도 그 끝은 서로를 끝장내려는 범죄 수준의 시도와 결과가 다시끔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 속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라 했던가? 이에 이 십자군 전쟁은 과연 오늘날 벌어지는 세계와 대한민국의 현상에 비추어 어떠한 경고를 주고 있는가? 이에 그 현상과 결과... 예방에 대한 자신만의 질문을 두고 이 책을 마주하면 보다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 일부 강경 세력은 종종 평화와 정의를 내세워, 다툼을 끝맺기 위한 수단으로 여전히 전쟁을 옹호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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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 사유할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문화유산
김종수 지음 / 시간여행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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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사를 접하는 방법은 교과서를 넘어 방대하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인 백제의 문화를 포함한 역사 또한 나름 보편적인 지식으로서 인식 될 여지가 크다. 그렇기에 독자는 스스로의 지식을 포함하여 대중들이 '공동체' 로서의 결속을 다지고, 또한 역사적 사실로 비추어지는 많은 교훈들을 거울삼아 개인 스스로의 자질을 갈고닦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뢰할 수 있고 중립적이며, 보다 사실을 증명 할 수 있는 역사가 밑바탕이 되어 주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역사학자들은 비교적 남은 기록등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고, 또 증명하려 노력한다. 이때 나 또한 그 정리된 역사를 접했으며, 그렇기에 내가 이 책에서 마주한 것 또한 과거의 지식을 다시 한번 학습한다는 익숙함이 대부분이였다. 옛날 지식이 아니라, 흥미거리로서 접해왔던 전례동화, 신화, 그리고 나중에 이르러 교과서를 통하여 배우고 시험보았던 많은 지식의 범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고대국가의 형성, 역대 국왕들의 평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녹아있었다.

과거 '우리들'의 민족적 특성이 자리잡고, 또 기록을 '우리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이처럼 저자가 드러내는 역사의 본질은 해당 백제의 역사 사실의 증명 만이 아닌 그러한 정리를 우리의 것 으로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는데 있다.

옛 문화의 찬란함, 용맹스러움, 현명함, 어리석음, 그리고 멸망에 이르는 이 모든 가치가 오늘날 대한민국

속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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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조원진 외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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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분명 현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다행스럽게도 해당 계엄은 국회에 의하여 해제가 요구되고 또 가결됨으로서 종료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파는 비단 정치뿐 만이 아니라 다른 국방,경제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며, 결국 이와같은 현상을 이끌어낸 대통령에 대한 큰 비난과 처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지금 헌재(재판소)에서 그 유죄를 따지고 있는 와중이다.

때문에 이에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이른바 '계엄'이라는 단어는 오랜 역사의 기억이 아닌 언제든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소위 '무력으로 정권과 권력을 빼앗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현재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조차도 국가의 법과 원칙을 외면하고 '무력을 통원해 보다 큰 권력을 차지하려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치명적인 방법론으로도 이해 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무리 올바른 정치적 가치와 체제의 제도를 정비해도 이른바 인간의 정의와 행동으로 인하여 '(국가의) 구조 따위는 현실 사회에서 얼마든지 위협받고 또 부서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수 많은 역사학자들이 모여, 한반도의 역사에 비추어 '무엇에 의하여 권력구조가 변화하는가?' 더욱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의 계승, 또는 그에 필요한 '정당성'은 점차 무엇에 기초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학문적 정의를 학습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에 목적을 둔다. 다만 이 모든 정리는 옛 기록에 기초하는 것이라, 우선적으로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발해사에 이르는 각각의 고대 국가에 대한 지식이 바탕되지 않는다면 이 책의 내용은 그 난이도가 끝없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현대의 민주주의국가와 비교하여 옛 왕조와 권력(또는 지도자에 대한) 성격이 다른 것을 생각할때... 오롯이 이 과거에 있었던 권력의 찬탈과 이동의 역사는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했던 소위 '내란사태'를 분석하는데 있어 정확한 해답을 이끌어낼 자료로서 일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무력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행동 뒤에 '어떠한 정당성'이 당시 국가와 사회, 또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설득력을 발휘했는가에 대한 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라고 생각이 된다.

(...) 유리왕은 선대왕과 혈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칼'을 들었다. (...)왕실의 권위와 현실적 힘, 두 가지를 갖춰 나가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

정변의 명분으로 (...) '노쇠' '폭정' (...)등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점차 통치 대상인 백성을 향해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한 마디로 초기에 신화에 기대거나 자격을 논했지만 이후 점차 민생 등 현실 문제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후기

사실상 현대의 계엄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국민들이 계엄의 의미와 정당성에 대하여 커다란 의문을 품고 있고, 이에 그 내면의 가치에서도 정의보다는 대통령 그 개인의 권력욕을 꼽고 있다. 이에 과거의 역사와 비교해 지금의 대통령에게 있어서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였나? 아니 그는 무엇때문에 행동에 실패하였나? 적어도 이 책의 역사는 그 이유에 대하여 나름의 해답을 '독자'들에게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감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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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강 웅진 세계그림책 271
에런 베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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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무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존재였다. 가공하기 쉬운 관계로 각종 가구가 되어주거나 건설재료가 되어주고 오래 타는 성질 때문에 가정집의 땔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심지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나 속 껍질은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조상들의 절박한 비상식량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한국엔 국가인 애국가에도 '남산위에 저 소나무' 라는 구절이 들어 있을 정도로, 나무를 상징적 의미로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예를 들어 석송령과 같이 한국엔 오랜 시간 속에서 존재했다는 '역사'를 지닌 나무들이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이른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이 결합된 믿음 즉 '신령'이라

불리우는 믿음을 나무에게 부여하거나 그 사실 확인이 모호한 전설을 나무에 부여하여 더욱 특별함을 더한다.

그렇기에 서양에서 그려진 이 책의 이야기를 마주라면서... 아니 전혀 문화와 생활을 달리하던 '나'에게 있어서도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큰 인상을 받는다. 물론 오랜 나무를 마주하여 나는 그것에 대하여 큰 경외의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물론 여느 신화와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세계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가치관 아래 인간 본연이 만들어낸 기념물과 의미가 더욱 큰 감명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과 증명이 사라져감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인간의 영향과는 무심하게 그 나무가 여전히 서 있다는 것은 문득 존재함이나 연속됨에 대한 허무함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자연의 일부로서 오래도록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반면 인간의 빠름과 변화가 오롯이 영광과 발전... 또는 긍정의 의미 만이 아닌 그저 존재하여야 마땅한 것을 빼앗아 이용 했을 뿐인 '이기'와 '폭주'에 가까운 것이 아니였을지에 대하여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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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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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적 위기를 주장하는 여러 매채가 등장하는 가운데, 분명 이 책은 그러한 것에서 더 나아가 보다 심각한 미래가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위기라 함은 해당되는 현상 등에 대비함으로서 보다 완화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식량이 부족해짐으로서 인류 스스로가 멸종에 가까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류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나름 기후위기가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식량이 부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과연 세계가 어떻게 식량 전쟁을 일으킬수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다. 도리어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어기저기 일어나는 전쟁 차제로 인하여 우크라이나의 식량이 제배되기 않거나, 각 국가들의 식량 확보로 인한 인위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식량과 이를 가공한 식품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통해 아직까지는 환경보다는 세계의 정세와 정치의 영향력이 인간의 멸망에 더 직접적인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주장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변화, 천재지변의 원인 등을 단순히 이전과 달라졌다는 환경의 변화로 치부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된다. 물론 독자들과는 달리 다른 여러 다큐멘터리나 교육적 목적을 가진 매체들을 들여다 보아도 현재 환경의 변화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류 스스로가 폭발적인 성장과 확산을 통해 생산한 공해로 인하여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나아가 이러한 환경적 변화가 지속된다면, 먼저 극적인 환경적 재앙... 즉 태풍과 해수면의 변화 등의 급변하는 재앙이 아니라, 서서히 오늘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앗아가며, 인간 스스로가 그 부족함에 허덕이다 서로를 죽이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 경고한다.

과연 그러한 세기말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환경과 기후에 관심을 가지고 또 이미 변화한 환경에 이전과는 다른 농업적 기술을 발전시켜 '식량의 자립'이 가능한 국가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결국 이 책은 그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여러 주문을 통해 먼저 나라 스스로가 위의 여러 위기에 있어 효과적인 대비를 할 필요성을 공유하고 또 현실화 하기를 원한다.

지구가 병들어가는 미래... 그것은 오롯이 인류가 진보와 발전의 길을 걸으며 만들어낸 '결과'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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