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이 '맹자'의 내용을 접하다 보면 앞서 언급한 공자의 '왕도' 그리고 무엇보다 인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와 예의 필요성에 대한 많은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이미 춘추를 지난 전국시대에 이르러서 '혼란의 와중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하여, 맹자는 공자를 시조로 한 '유학'의 근본을 설파하고 또 완성하는 과정을 겪었으며, 그 때문에 이 책은 '강병'과 '번영'을 목표로 하고, 더욱이 통치를 위하여 예의를 빙자한 위정자들을 향해서 실망하거나 비판적인 뜻을 비추어왔다.
때문에 '나'는 이러한 내용에서 두가지의 의문을 가진다. 먼저 공자의 시절 주나라의 제도와 법도 그 봉건제의 유지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던 춘추를 지나, 이른바 패자(이익을 다투는)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맹자가 끝임없이 예를 통치의 근본이라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또는 개인적 학문과 신념의 형성) 그리고 그 왕도가 당시 혼란의 시대 속에서 사장 된 것이 아니라, 사상적 발전을 거듭했을 뿐 만이 아니라, 후대 청나라까지의 주류로서 자리잡게 된 이유.
이에 어쩌면 오늘날까지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과 그를 향한 인간의 학문적 방향성, 그리고 소위 정치와 국가적 차원에서의 윤리를 향한 기준과 척도를 만들어낸 것에 대하여, 분명 맹자의 사상을 거친 유학의 역활이란? 그저 단순히 시대 속에서의 역경을 해결하는 것 보다는 보다 실천 철학에 기댄 윤리관을 완성하고, 더욱이 (해당 문명의) 정치적 '안정'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