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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로 읽는 에로스 심리학
최복현 지음 / 양문 / 2017년 12월
평점 :
에로스 심리학 (최복현. 양문, 20180320)
그리스 신화에서 나타난 에로스는 처음이자 끝이요,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것을 금성 여자와 화성 남자가 지구에서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인류학적, 진화론적 측면에서 사랑학 개론서처럼 서술되어 있는 책이다. 그리스 신화는 과거의 우리 인류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나 인류문화라 할 수 있고, 우리 무의식에 자리한 다양한 욕망의 모습들이며, 앞으로 우리 인류의 심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 우리 안에 숨은 수많은 다양한 모습들을 가진 욕망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으며, 문화와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이 우리의 무의식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이 이후의 보편심리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것을 읽을 수 있음을 작가는 서문에서 얘기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는 신들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나 우주의 원리로 받아들이며, 그리스신화의 신들은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모습이나 존재의 이유, 존재의 내면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혼돈(카오스)에서 질서(코스모스)로의 이행이며, 이 이행의 중심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혼돈스러운 상태에 질서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뭔가의 작업이 필요했는데, 태초의 신 카오스는 에로스란 에너지를 가지고 가이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지의 시작은 사랑이란 의미이고, 현상의 유지도 사랑이며, 그 마지막도 사랑으로 모든 것의 조화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에너지가 세상에 충일할 때 세상은 조화롭고 질서 잡힌 코스모스의 세상이 되는데, 사랑이 충일하기란 쉽지 않다. 애초의 에너지 에로스가 순전하게 보존되지 않고 오염이 되면서 부정적인 요소를 함께 지녔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은 가졌으나 왜곡되고 불순물이 섞이면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사랑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이다. 지상의 생물 중에 유일하게 금기를 깰 줄 아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금기란 깨기 위해서 만들어준 것인 반면 인간이 설정한 금기는 예방 차원이 아니라 시행착오거나 실수의 결과라는 것이다. 성경은 금단의 사과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라고 말하는데, 안다는 것, 그것이 죄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아는 것이 죄란 뜻인데 내가 남과 다르다는 인식, 즉 분리의 인식, 엄마와 한 몸이었다가 분리되었음의 인식이 부끄러움이란 결과를 낳고, 다름을 알면서 한편 접근하고 싶은 욕망이 인간에게 생겼다는 것이며, 그 때부터 성욕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금단의 사과는 성욕을 인식하면서 아담과 이브가 서로를 의식하였고, 신의 미움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존재의 발견, 타인의 발견이 최초의 지식이었고, 이것은 곧 성욕, 최초의 지식이요, 나와 그 무엇의 분리의 발견이 최초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의 본능충족의 방식을 체득하고 시도하면서 아주 다양한 욕구 충족을 해왔고, 그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의 본능 충족방식은 인간이 답습애온 본능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른 동물이나 곤충과 달리 다양한 받아들임의 양태, 평가의 양태를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데, 모든 문화는 2대충족의 욕구인 식욕과 성욕의 파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사랑은 어디서 오고, 무엇으로, 어떻게 시작되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사랑은 눈과 눈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은 대상의 인식이며, 그 대상은 표상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즉 그 속은 모르고 겉모습만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두 존재는 서로의 눈에 잘 보이려 노력한다. 서로가 자신의 사람임을 확신하기 전에는 보여주는데 치중하지만 그 모두가 거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상대를 자기의 사람으로 확신하면서 서서히 원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다움의 카리스마가 진상덩어리로, 능력이 권력으로 변하며, 여자다움의 애교가 주책으로, 상냥한 말들이 무정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눈과 눈의 만남은 위험하며, 게다가 아프로디테는 조가비를 타고 올라왔으니, 애욕은 거품이 걷히고 나면 껍질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할 때 애욕을 사랑의 전부로 알면 곤란하며, 눈과 눈의 만남으로 시작한 사랑은 이제 마음으로 옮겨가야 한다. 눈에서 마음으로 옮기지 않는 사랑은 위태로운 것처럼, 또한 사랑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면 위태롭다는 것이다. 꽃의 신 플로라가 옷을 입혀주듯 적당히 자신의 본질을 감출 줄 알아야 하며, 좀 더 가까워져서 정말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자신의 모든 패를 보여주는 것을 미뤄야 하며, 적당히 자신을 포장하여 점차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측면에서 적당한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나 자신, 자아를 알기 위한 여행이다. 나를 스스로 알 수 없는데, 사랑을 하면 자신을 알게 된다. 상대에 비친 내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인 까닭인 것이다. 나를 안다면 곧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서로가 알아감이 사랑이며 사랑의 행로이지만 그 행로는 쉽지 않다.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고통이 동반되며, 그러면서 마음의 사냥을 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가슴에 꼼짝할 수 없다는 사랑의 화살을 꽂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낯설기 때문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극이기 때문에 끌리게 하는 힘, 에로스의 초화이며, 그 조화 속에는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에로스 속에는 늘 부글거림이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의 끌림과 내부의 부글거림, 그것이 에로스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그렇게 단순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찌지고 볶고 아옹다옹하면서 사는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