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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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마이클 루이스, 김영사, 20180913)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원제 : The Undoing Project》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라는 두 위대한 작가가 공동 저술한 《생각에 관한 생각》이 어떻게 저술되었고, 행동경제학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와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면,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는 이를테면 행동경제학의 ‘창세기’라는 출판사의 카피라이트가 그대로 맞는 문구다. 행동경제학은 심리와 경제를 접목한 학문인데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개념으로 제한된 합리성을 가정으로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감정과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심리와 경제 활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일반 주류 경제학이 소비, 생산, 투자 등에서 인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서 파레토최적의 상태를 달성한다는 가정과 많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전제는 주류 경제학의 프레임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을 편향에 빠뜨리는 머릿속 속임수로 인해 모든 판단과 결정에는 ‘이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심리’와 ‘감정’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마치 그렇게 타고난 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오류에 빠지고 변함없이 수많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른다. 하지만 기존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설사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인간 본성은 오류와 거리가 멀다. 본래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단정 위에 경제학이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비합리적 행위를 잘 돌아가던 인간의 사고 체계가 어쩌다 발생시키는 ‘버그’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야말로 전통경제학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체계적으로 오류에 빠진다는 “체계적 편향”은 우리의 머리가 확률 법칙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짐작 법칙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통계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보고도 경험과 감정에 의존해 판단한다는 것이며 복권과 보험 문제 역시 계산과 계획의 결과라기보다는 감정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어떤 일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를수록, 그러니까 회상이 용이할수록,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거나 유독 생생하다면, 회상하기가 쉽고 따라서 판단에서 부당하게 높은 비중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다 끔찍한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면 사람들은 즉시 속도를 늦춘다. 교통사고 발생 확률에 대한 생각이 바뀐 탓이다. 하지만 교통사고 발생 확률은 사고 목격 전이나 후나 다름이 없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러한 어림짐작을 ‘회상 용이성 어림짐작(heuristic)’이라고 불렀다. 또한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전망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기댓값보다는 ‘손실이냐 이익이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와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사람들은 가망 없는 이익을 추구하느라 위험을 추구하고 손실이 생길 확률이 극히 낮은데도 위험을 회피한다. 복권과 보험이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간 정신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도구라기보다 대응 기제에 가깝다. 뇌는 대충 말하면 확실성을 최대한 제공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표현하기보다 주어진 해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우를 찾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짐작 법칙을 이용해 불확실한 상황에 훌륭히 대처한다. 하지만 짐작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때도 있는데, 이때 발생하는 실수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정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성향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1969년 봄 히브리대학 한 강의실에서 만나서 이후 학계에서 손꼽히는 훌륭한 공동 연구자로 단짝이 되었고 그 결과물인 [생각에 관한 생각]을 펴낸 과정을 아주 소상하지만 지루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정작 행동경제학에 대한 유효적절한 내용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어 본 독자이고 행동경제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 내용도 가끔 나오지만 스토리 전개를 너무 지루하다고 할 정도로 질질 끌어가고 있어서 보통의 인내심으로 독파하기가 힘든 책이다. 행동경제학이 기존 경제학에 심리적인 요인을 가미해 감정과 비합리성이라는 요인을 추가해서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는 있다지만 결국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에서의 분석 틀을 못 벗어나고 있고, 어쩌면 심리나 감정 분야에 까지 고전경제학적 이론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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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랑야방 : 풍기장림 1~2 세트 - 전2권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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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풍기장림 1,2(하이옌, , 20180826)

[랑야방 : 풍기장림]은 작가 하이옌의 [랑야방 : 권력의 기록] 후속편으로 50년 후 이야기라고 하며, 두 편이 이미 중국 TV에서 드라마화하여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절찬리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은 아마 15C 전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왕조(양나라라고 가칭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송나라쯤 되지 않을까 함)를 둘러싼 흥망성쇠와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권모술수 그리고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정당성, 찐한 형제애 그리고 약하지만 양념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조금 가미한 대하정치 무협소설이라 하겠다. 중국 무협소설이 지니고 있는 과장, 허세 그리고 비약이 소설 곳곳에 있고, 주인공 소평정이 천방지축 날뛰지만 장림왕가의 적통 후계자로서 각종 악재를 물리치고 정치적인 면과 무협적인 면에서 일취월장 폭풍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좋은 소설이 갖고 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와 구성 등은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본다. 소싯적에 몇 번 심취하여 읽었던 김용의 무협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줄거리 전개와 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양나라 북쪽 국경을 수비하는 장림군의 활약으로 소씨 일가는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워지고 황제의 총애를 받자 그로 인해 순황후와 그의 오빠인 순백수 등 다른 대신들의 견제를 받고 있는 중에 북유와의 전쟁을 기회삼아 이들 일가를 강력히 견제하고자 한다. 한편 전염병으로 국경을 봉쇄당해 약진국이 멸망했다고 여기는 복양영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양나라로 잠입하여 백신교의 존자로서 순황후의 맹신을 이용하여 랑야각의 제1고수인 동해국의 묵치후와 결탁하여 양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계략을 준비한다. 또한 황제의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백신교로 인하여 멸문하게 된 소원계는 호시탐탐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기회를 노린다. 북유의 침략으로 전투가 일어나는데 장림왕부의 장남 소평장이 전투를 하던중 보급선이 침몰하게 되고 그 와중에 소평장도 부상을 당하게 되어 위기에 봉착하며 이를 돌파하기 위히여 장림왕부의 둘째 아들 소평정이 파견되어 보급선 침몰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사건을 조사할수록 권력의 뒤에 숨은 암투들이 드러나게 되며, 이후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퍼뜨린 복양영과의 숨 막히는 대결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2권까지 전개되고 있다.


약진국 출신인 복양영이 백신교의 존자가 되어 순황후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양나라를 멸망하게 하려는 상황은 많은 역사에서 혹세무민으로 국가에 혼란에 빠뜨렸던 사례를 찾을 수 있고, 민주주의 국가이며 최점단 IT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음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와 합리주의 사고가 자리 잡았다고 하는 현대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는 구도를 만들어 주는 토양이 무엇인지 박근혜와 태자마마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의 관계를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잘 짜인 스토리와 구도에 비해서 군데군데 비약이 있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그런지 인물들 간의 연관 관계나 사건들 간의 인과 관계가 어떤 때는 조금 약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고 본다. 작가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는 적자 후계론도 소원시가 황제직을 계승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출중하지만 소정생의 양자인 소평장을 대신하여 적자인 소평정을 장림왕부의 후계자를 그리고 있는 점은 다소 아쉽고, 소평정의 정혼녀인 임해와의 사랑 관계는 2권까지 본격적으로 전개되지 않아 후속 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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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 전쟁이 바꾼 조선, 조선이 바꾼 세계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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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실록 (박영규, 김영사, 20180718)

조선이 치렀던 가장 치열했던 6개의 전쟁 즉 왜구토벌, 여진토벌, 삼포왜란과 두 차례(사량진, 을묘)의 왜변, 임진왜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에 대하여 전쟁의 배경과 원인, 과정, 결과 등을 주로 정사인 실록을 중심으로 기술하여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개국의 혼란 와중에 조선이 두 차례에 걸쳐 대마도 정벌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승리를 이끌었던 주요 원인 중에서 군선과 함포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있고, 조선이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세종의 6진 개척)을 전개한 원인, 세종의 혜안과 김종서의 충직 등 정벌 전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과 전술하고 있으며,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달아났던 것이 비난받고 있지만 작가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조총이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전쟁으로 단련된 16만 일본 정예군에 왕조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하며,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한 주요인을 판옥선과 거북선 그리고 화포와 신기전 등의 무기체계를 꼽고 있다. 또한 명과 여진과의 관계에서 중립을 유지하려 했던 광해군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인조의 친명배청 정책이 병자호란이 일어난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의 강요로 몇 차례 중국 통일 전쟁에 가담한 것을 제외하면 200년 이상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던 조선에 제국주의의 침략인 프랑스로 인한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이어 미국이 일으킨 신미양요의 과정과 서양의 우수한 무기 앞에서도 정신만은 당당하게 살아 있었고, 서양인들의 막무가내씩 침략에도 처음에는 호혜를 베풀었던 조선인의 인간미와 풍습을 그리고 잔인한 제국주의의 음모와 약탈을 알 수 있게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을 정치와 외교의 연장선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로서 한 국가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의 행위 중 하나로 정의하는데, 국가 간의 정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오늘날에는 인류 문명이 진화해서 도덕적으로 우수해서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토전쟁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실익보다는 무역 전쟁이나 IT기술 전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무력충돌이 적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무력 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에 언제든 그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고 본다. 책에는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 관계부터 조선의 대외 정책과 외교 전략, 전쟁 전략과 전술, 장수와 병력 운용, 조·중·일 삼국의 무기 체계를 서술하고 있는데, 그 비교가 어쩌면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4강 구도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한 최근 미국과 북한이 핵폐기 합의와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시소게임도 이러한 전쟁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한결 수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전쟁을 앞두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당연히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가 머리를 숙이고 상국으로 섬길 것을 요구한다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옳고, 영토를 빼앗고 백성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싸움을 할 것인지도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싸움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5~6p)라고 작가의 전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떤 상대에 따라 어떤 싸움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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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권력의 탄생 - 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권력 사용법
대커 켈트너 지음, 장석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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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권력의 탄생 (Dacher Keltner, 프런티어, 20180715)

권력을 특별한 형태의 강압과 권모술수적 행위로 이해해왔던 낡은 정의에서 벗어나 변화된 시대에 필요한 권력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릴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권력역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사회집단 내 직접적 권력 역학에 관한 20가지 권력 원리를 통해 정치인들이 권력을 잃고 그들의 정치적 유산을 상실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정당과 이념 운동의 성쇠와 그와 비슷하게 전개되는 국가의 흥망 등)의 정치 분석에 따라 권력 역학의 양상을 조망하고 있다. 우리는 권력 문제와 관련해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여성의 손에 전례없는 권력이 주어지고 있는 중이고, 하드 권력(군사력, 무력침공, 경제 제재 등)과 비교할 때 갑자기 등장하여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소프트 권력(문화, 사상, 예술, 제도 등)의 강화, 경제적 초강대국인 인도와 중국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미국식 패권 권력의 본질에 대하여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고, 조직들은 수직에서 수평 구조로 바뀌고, 페이스북, 구글, 트위트 등 네트워크를 통해 타인이 우리의 행동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다시 말해 인간적 상호작용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디어들이 전개되는 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방식은 무력, 기만, 무자비, 전략적 폭력이 권력의 요체라고 하는 16세기 폭력적 시대의 마키아밸리(군주론)에 의해 형성되었기에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동적이면서도 사납고 폭력적인 예측 불가능한 폭압을 휘둘러야 한다는 권력에 대한 이런 관점은 오늘날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는 창의성, 이성적 추론, 윤리적 판단, 애정, 감정과 같은 일상 행위에 권력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강압으로 정의하면 우리는 권력을 곡해하여 결국 권력 역설의 문제도 제대로 다룰 수 없고, 역사에서 벌어진 중요한 변화(노예제 폐지, 독재자의 몰락,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언, 시민의 권리와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쟁취하가 위한 운동 등)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여 권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비대칭적 힘이 개입된 관계와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류의 관계와 상호작용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온갖 방식의 영향력을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양한 방식의 영향력으로는 새로운 이념을 제창하고, 시위를 주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복돋아주고, 자본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것 등이 있다. 결국 새롭게 정의되는 권력은 인간의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모든 맥락에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형태의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사고를 확장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히 오늘날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권력을 정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권력 역설의 문제를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건 바로 상호영향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 역학이며, 권력역설은 인간성 차원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권력을 얻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반면, 최악의 모습일 때는 그 권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권력 역설을 다루는 일은 사사로운 욕망과 타인에 대한 관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가장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고 강력한 사회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즉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보편 지향의 사회적 실천을 수행해왔다. 진지한 자세로 이런 실천을 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의 맛을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만족을 위해 남용하는 잘못된 길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꾸준히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는 데서 더 깊은 희열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실천에는 공감하고 나누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기쁘게 하며 사람들을 돈독히 결속하는 바탕이 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 권력을 남용하게 되면 처음에 우리가 권력을 획득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바로 그 능력을 상실한다.


권력이란 그것을 통해 우리와 타자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매개체다. 권력이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세상을 바꾼다. 권력은 세상을 바꾼다는 정의다. 이러한 정의는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실용적이다. 권력이란 명성이나 인기와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권력은 재산이나 사회계급과도 큰 관련이 없다. 재력, 무력, 정치력이 개입되지 않아도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사회연결망 속에 배분돼 있으며 타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상태를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원리1). 그러므로 권력은 모든 종류의 관계와 상호작용 안에 포함돼 있다(원리2). 위 두 원리를 전제하면, 권력은 역동적이며 늘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원리3). 따라서 권력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고, 사회연결망 안에 흩어져 있으며, 타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원리4).


권력이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서 부여받은 것이며, 사회연결망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향상시킴으로써 우리는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초사회적 종으로 진화했는데 진화를 하는 중에도 계층 질서는 존재했지만 초사회적 특성 덕에 개개인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결속했고 누군가 권력을 남용하면 바로 제어에 들어갔다. 결국 공동체는 마키아밸리식 철권 독재자보다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권력을 부여할 수 있는 일정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 한 개인의 평판이 그에게 권력을 취할 자격을 부여하고 권력 남용의 여지가 없다는 보증을 해준다. 권력이 곧 평판이 것이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능력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나의 권력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즉 공동체는 구성원 각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안겨주면서 피해는 최대한 덜어줄 사람, 즉 최대 선(善)을 증진시키는 개인에게 권력을 부여하려는 경향(원리5), 권력음용을 가능한 막고자 공동체는 평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특정인에게 영향력을 부여하는데, 이때 평판은 그 사람이 공동체의 최대 선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에 좌우된다(원리6). 공동체는 최대 선에 기여한 이에게 걸맞은 위상과 명예를 안겨줌으로써 보상한다(원리7). 한 개인이 공동체의 안녕에 직결된 최대 선을 해하는 행동을 하면, 공동체는 그 개인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 평판에 흠집을 내고 뒷말을 한다(원리8).


권력유지의 비결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처럼 우선시한다. 다른 사람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가지고 일을 도모한다. 다른 사람이 세상에 기여를 하면, 그들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긴다. 즉 권력 유지의 첫 번째 원천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주의 깊게 살피는 공감으로 유지하며(원리9), 다른 사람과의 나눔에 있으며(원리10), 권력유지는 진정한 고마움의 마음을 표출하는 데서 비롯한다(원리11). 공감이나 스킨십과 마찬가지로 고마움의 표현은 최대 선의 바탕이 될 사회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며, 대의를 위해 사람들을 한데 묶는 스토리텔링에 있다(원리12).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자기 정체성과 인생의 목적이란 살면서 펼치는 한 편의 대하소설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런 사회적 실천으로부터 신뢰감이 돈독한 원활한 사회연결망이 만들어졌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액튼 경)는 말처럼 집단은 ‘집합적 과정’을 통해 개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는데, 권력 남용은 이 집합적 과정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절대 권력 상태를 말한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므로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목표와 욕망으로 돌리게 된다. 이렇게 관심을 돌리기만 해도 우리가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사회적 실천에서 우리는 멀어진다. 권력남용은 공감 결여와 도덕적 감정의 해이를 야기하며(원리13), 제 잇속만 차리려는 충동을 일으키며(원리14), 무례와 안하무인을 촉발하며(원리 15),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내로남불’에 빠져서 자신들은 일반인들을 위한 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자신들은 더 큰 몫의 파이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퍼뜨린다(원리 16). 드라마나 소설에 권력과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예의범절을 세련되게 수행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며, 그들은 품위있는 행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윤리적 규범을 수행하며, 아랫사람들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행동으로 품위를 지켜나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런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다. 공감과 도덕적 감정이 옅어지고 제 잇속만 차리려는 충동이 만연할 때, 안하무인의 무례와 거만을 보이면서 문명 사회의 신뢰와 결속을 훼손하는 야만적 주체는 바로 권력을 가진 그들이다. 자신에게 권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중심적 습관을 버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상대의 시점에 맞추는 반면, 권력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역지사지 테스트에서 실패할 확률이 세 배 이상 높았다. 권력이 자기중심적 관점으로부터 관점이 이동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공감이 결여되면 대가가 따른다. 다른 사람의 지혜로부터 이로움을 취할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불러일으켜 존중을 받기도 어렵다. 그리고 연민, 고마움, 고양의 감정을 경험하기도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도덕적 감정은 본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에 비롯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곤경을 헤아릴 때 연민의 감정이, 다른 사람의 너그러운 행위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영감에 차서 마음이 고양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너그럽고, 고귀하고, 능숙한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그의 내면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공감하는 바가 없으면 권력을 유지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더 자주 그리고 다 깊이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재산과 교육과 지위 면에서 형편이 좋은 집안에서 자란 학생들의 경우, 긍휼의 감정을 주관하는 신경 다발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려야 할 때도, 그들의 뇌에서 공감을 관장하는 부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양과 영감은 돈독한 사회연결망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친절하고 너그러운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최대 선을 도모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사회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신뢰, 선의, 협동심도 증진시킨다. 그러나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는 생각은 이타주의를 도모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훼손하며, 다른 사람의 경험보다 자신의 경험에 더 잘 감동을 받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에게로 관심이 바뀌면,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그냥 지나치게 된다. 먹고 섹스하고 운전하고 거짓말하고 바람피울 때와 마찬가지로 연설을 할 때도 더 충동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일수록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는 의사소통의 규칙들을 어기려 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버리기도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규칙을 지키지도 않고 제 말하기 바쁘며, 요청을 하는데 강압적이 되며 주장을 펴는 데 노골적이며, 행여 의견을 달고 비판과 피드백을 할라치면 날을 곤두세우곤 한다. 상사들은 직원들이 하는 일은 형편없고, 그들의 아이디어는 헛소리며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며,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지 않으며, 무례한 행위를 조직 서열상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세 배 이상 더 많이 저질렀다.


힘없는 자들의 역경과 무력감의 원인을 살피는 것은 권력 역설을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한 걸음이다. 일상의 차원에서 힘이 없을수록 우리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원리17). 갖은 위협에 노출된 힘없는 자들일수록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원리18). 만성화된 위협과 스트레스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수면, 성생활, 창의성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신뢰에 바탕을 둔 상호작용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우리 뇌에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추구하는 일을 관장하는 부위를 망가뜨린다. 힘이 없으면 사회에 기여할 여력이 없다(원리19). 우리 신경 체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심혈관계, 소화계, 면역계, 뇌세포 그리고 DNA까지 해를 입히며, 집중력을 잃게 하고 우울증이 만성화된다. 권력이 없으면 심신은 큰 고통을 받고 수명도 단축된다는 것이다(원리20).


권력역설을 넘어서 무력감의 대가를 완화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방법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가해지는 위협을 완화할 수 있다면 상황이 나아질 터이고, 이는 사회적 삶의 질과 사회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나아질 터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종주의, 양성불펑등, 동성애 혐오, 불평등, 그리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그 밖의 위협과 싸울 수 있고, 지난날 권리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에게 목소리와 기회를 다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그나마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가치를 북돋는 것도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일이다. 자존감을 높여줌으로써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인 운동, 명상, 자연 속 산책 등을 제시해보면, 그들은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을 훨씬 더 잘하게 된다. 가난한 동네에 녹지 공간을 마련해주거나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는 수위는 줄어들고 자존감은 커질 방안은 많을 것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더는 저지르지 않고 우리의 권력을 최대한 잘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 새로운 권력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서 권력 역설이 끼어들지 않는 곳은 없다. 인간은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권력 같은 것을 갖고자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윤리적 원리들이 있다.

1)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을 잘 살펴라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온몸을 휘감는 활력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효과적 행동을 하게 하여 소기의 목적을 얻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이런 느낌을 잘 살피는 것이다.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벅찬 감정을 갖도록 해줄 것이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이고 그 감정의 전후 맥락을 명심한다면, 우리는 권력은 곧 돈이요, 명예요, 사회적 계급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돈, 명예, 계급, 직함은 무언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상징이자 기회일 뿐이다. 진정한 권력은 최대 선을 확충하는 것이며, 권력에 대한 느낌을 그렇게 갖는다면 우리는 가장 잘 준비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2) 겸양을 마음을 가져라

공동체가 우리에게 권력을 부여하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평판을 가장 잘 규정해주는 것도 공동체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힘을 부여하여 최대 선을 도모하고자 할 때, 도파민이 분출되고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겸손해지는 것이다. 권력을 쓰되 겸손한 사람은 더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겸손한 자세로 권력, 즉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권력은 더 커진다.

3)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눠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은 관대함이다. 자원, 돈, 시간, 존중심, 권력, 이 모든 것을 나눠야 한다. 나누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사회연결망 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세상에 기여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더 키워날 수 있다.

4)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라

다른 사람에게 존경한다는 것을 그들을 귀히 여긴다는 말이다. 그들의 위상이 높이고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질문을 하고,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알아봐줘야 하며, 기꺼이 칭찬하고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보상은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심을 잘 표하지 않는다.

5)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심리적 상태에서 벗어나라.

우리는 이러한 4가지 수단을 통해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남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삶의 질과 건강에서 아주 해롭기 때문이다. 무력감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보라.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권력이란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누적되는 것으로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라 것을 공감하게 될 것이며, 빈곤, 불평등, 인종주의, 성차별 등에서 기인한 무력감은 종종 힘 있는 자들이 권력 역설에 사로잡힌 나머지 생겨나며 그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박근혜가 탄핵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현민과 조현아 등 대한항공 일가들의 횡포가 이해될 것이며. 우리 사회와 일상생활에 만연한 권력역설로 인하여 초래된 불신과 충동적 행위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며 우울, 불안, 폭력이 난무하는 건강하지 못한 삶을 야기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며. 나 자신도 가정에서 회사에서 이미 그런 권력 역설에 빠져있지는 않았는지 심각하게 반성해본다. 연민과 이타심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권력이라는 점과 가정과 회사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더 공감하고 나누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체화할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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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 - 전신마비 27년, 하나님과 함께한 날들의 기록
윤석언.박수민 지음 / 포이에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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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 (윤석언&박수민, 포이에마, 20180628)

23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전신마비가 된 윤석언 작가가 특수 스티커를 붙인 안경을 쓰고 침대에 누워 모니터를 응시하며 눈으로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입력해 놓은 병상일기와 미국에 살고 있는 윤석언 작가와 얼굴 한번 본적 없지만 폴란드에서 선교사로 있는 박수민 작가가 신의 사랑을 교감하며 주고받은 수천통의 이메일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13년을 전신마비로 지내온 것도 기적이라면서 앞으로 2년밖에 못산다고 의사들이 얘기하여 장기기증서약 등을 하였는데 벌써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얘기하는 윤석언 작가는 기독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애로움을 찬양하며 주어진 삶과 소명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러면서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해하고 기도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어쩌면 세상을 달관한 고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박수민 선교사의 따뜻한 배려와 두 사람이 나눈 신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이메일 통해서 잘 전달해주고 있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이런 상황 즉 거의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넘어서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꼼짝할 수 없는 몸이지만 눈으로 자판을 치며 글을 쓰는 행위에 위선이나 가식이 들어갈 여지도 없겠지만 정상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과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 부럽다. 일상이 바쁘다고 늘 각박하게만 살아온 나 자신을 반성하고 신의 존재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타계한 이 시대의 최고의 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스티브 호킹 박사가 떠오른다. 21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5년만 살 거라는 시한부판정을 받았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세상에 대한 열정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열린 마음을 그리고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 정신이 작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그의 말이 작가의 삶과 오버랩 된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했고,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했다."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겸손이 무엇인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보며, 작가는 이 땅의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귀감이 될 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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