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서평

  일본의 거장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를 통해 영화로 그 제목이 더욱 알려진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원작의 단편소설이다. 단편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적은 분량이지만 그 영향력은 실로 커 일본의 국어교과서에 그 작품이 거의 다 실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인 모습을 쿄토지역의 한 궁궐의 남문이었으나 폭우로 인해 거의 무너져가 이제는 도적들이나 부랑아들의 소굴이 된 라쇼몽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아쿠타가와의 스승이었던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했던 「코」나 많은 독자들로부터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지옥변」등이, 그리고 국내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던 많은 단편들이『라쇼몽』으로 묶어져 실려있다. 
   

  환상적인 소재로부터 자전적인 리얼리즘의 성격이 강한 소설까지 그는 자신의 역량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철학, 종교, 심리학 등 당시 일본 엘리트 중심에서 교육을 받고 자연소설에도 살짝 영향을 받은 듯 보이는 소재들은 그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 날카로운 관찰과 묘사력을 통해 좋은 소설로 태어났다. 그 소설들은 독자로부터 속도감을 붙여주어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로맨스적 소재의 소설조차 충분히 재미가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은 인간 심리변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 사건은 환상적이거나 현실적일 수 있는 것이지만 사건에 따른 인간의 변화는 미묘하게 나타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상황이 시간이 지난 후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때 할 때 인간은 충분히 이기적인 면모로 그것을 대처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소설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보잘것없게 보이던 시골 소녀의 따뜻한 마음씨로 인해 생에 희망을 얻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가치의 예술가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교의 인덕을 통해, 구교의 믿음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혹은 그에 준하는 마무리의 소설도 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자신의 소설을 썼다. 그러나 그는 결국 생에 대한 불안으로 자살을 함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다. 소설이 갖는 힘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불안감은 해결치 못했던 것이다. 
   

  대게 이십 쪽 안팎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진 글들이 높게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선택하고 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주로 어둡게 만들어진 배경의 묘사를 통해 이야기에 힘을 실어 짧지만 강한 힘을 불어넣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한눈에도 소설의 대가다운 모습이 풍겼다. 처음부터 자신의 개성을 살린 특유의 문체의 소설들이 넘치는 요즘 마치 신선한 자극을 주는 기분의 나쓰미 소세키의 문체는 정말 간결하면서도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두고 있다. 으레 간결한 문체들의 장점이란 게 빠르게 읽힌다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있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게 하며 책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만든다. 문체도 문체지만 시작의 타이밍,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어 책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도 큰 장점일 것이다. 고루한 설명과 묘사보다는 많은 부분이 대화체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3페이지 정도로 나누어지는 문단들은 소설의 중후반 부에 생기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그럼에도 『마음』의 내용은 이렇게 편하게만 볼 수 없다. 쉽게 읽힌다고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지, 주인공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인물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면서 관찰하게 되는 ‘마음’의 중심은 어렵기만 하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과 죄의식이 불러낸 괴로움, 가까웠던 친척에게 배신을 당하고 인간에 대한 불신과 거리감은 결국 자신 속 내면의 벽을 허물어버리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한낱 인간의 감정일 뿐인데 이리도 다루지 못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강한 것도 인간의 마음이요, 약한 것도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인간의 마음에서 불러 나오는 관계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찮은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가 누군가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되는 과정은 삶의 속에 수 없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 회복하기보다 인간을 통해 치유 받아야 마땅하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인간의 자의식이 만들어 낸 괴로움 뿐 아니라 치유의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 속 선생님의 판단이나, 주인공의 생각이 어떠하던 간에 우리는 생을 끊임없이 살아야 할 이유와 의무가 있다. 매일 떠나가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입맛은 어떠한가. 책을 펼치기 전 당신은 혀를 충분히 날름거리는가? 을유문화사에서 본격적으로 고전 문학 전집에 손을 댄지 벌써 열일곱 권 째다. 그동안 나온 작품들이 고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대충 약력을 훑어보면 아하, 하고 떠올릴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로베르토 볼라뇨, 국내에선 제 3세계 문학으로 분류되는 남미 문학에 대해, 그것도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닌 것 같은 형식의 책을 과감히 선택해 내밀 줄 누가 알았을까? 남미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국내 독자들의 입맛에, 아니 세계 입맛에 들어맞은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리거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 유명한 작가 보르헤스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 약력을 보니 수잔 손택이 극찬을 한 작가란다. 처음 가는 음식점 한 귀퉁이에 누구나 다 알만한 미식가가 극찬한 메뉴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선택한 대부분은 아마도 정말로 아메리카 나치 문학의 계보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펼치고 40페이지도 넘기지 못해 책장을 접고 싶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전 형식의 인물 계보. 부르기도 힘든 이름들의 생애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웃음 포인트. 작가가 접근한 풍자적이라는 냄새는 풍기지만 어디서 맞장구를 칠지 몰라 짜증만 날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픽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작가의 엄청난 역량을 느껴볼 수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생애를 간결하게, 감정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설명서 같은 이야기로 풀고 있는 로베르토 볼라뇨는 냉소의 극치를 발휘하고 있다. 삼십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품고 있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오랫동안 경험했던 삶 속에 녹아든 극우주의자들을 향한 문학적 썩소. 픽션이지만 논픽션일 것 같은 이야기들이 당시에 이 책이 발간 됐을 당시 많은 사람들의 극찬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지구 반대편이라는 문화적 거리감에 접근하지 못해 느끼지 못할 뿐. 지금 이외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대중들의 환호성을 얻을 정도인데 말이다.

  이 책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읽어보고자 한다면 책의 곳곳에 포진한 작가의 강한 비판의 힘을, 치열한 글쓰기로 만들어진 색다른 문학을 느끼면서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오래 곱씹을수록 새로워지는 맛이 느껴지는 음식은 있기 마련이다. 맛을 느끼기 전 목구멍으로 넘어간 음식은 결국 소화되어 버리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무엇이라도, 그게 슬픔일지라도

<외딴방>
신경숙
문학동네

  이 글은 소설일까? 나는 생각해 본다. 소설이 맞다. 그래 그러니 소설로 나온 거지. 리얼리즘에 대한 당혹감. 거리가 느껴진다. 나 이전에, 14년 전에 그녀는 이 소설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런 글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경숙 그녀는 누구일까? 나는 새삼스레 그녀에 대해 생각해 본다. 1990년대 한국 문단에 그녀를 빼면 누가 있을까. 그 시대를 떠올리면 남자는 윤대녕 여자는 신경숙, 이라고 조건반사처럼 떠오른다. 시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 쉽사리 넘기기 힘든 고독이 바탕 된 이야기들. 7년 전 예술대학 면접 자리에서 난 신경숙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작품은 겨우 2001년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부석사>를 읽어본 것이 전부였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 어렸다, 물론 지금도. 그래도 그땐 열정이란 게 존재했다라고 말해본다. 아마도, 지금 나는 열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불시착했다. 글을 쓰기 위해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원하고 원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매너리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대학에 입학해 그녀의 소설을 오랫동안 보지 않는다. 아, 김영하를 만났다.

  내게 글쟁이들은 동경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나도 시골에서 태어나 좀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여러 작품들이 말해주는 천재적 감성들이 나를 조여 왔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할 게 없어. 너무나 평범해. 그때 아마 김영하가 나에게 위로였는지 모른다. 도시의 이야기를, 자극적인 소재를, 거칠 것 없는 탐미적인 소재들이 나의 롤모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야해. 그로부터 이렇다 할 이야기하나 만들지 못하고 수 없는 시간을 소설가들을 시기하는 데에 보냈다.

  『엄마를 부탁해』. 몇 달 전부터 책장에 꽂힌 상태를 유지하는 신경숙의 최근작이 내 눈에 들어온다. 밀레의 <만종>이 프린트 된 커버의 다홍색 책. 그 책이 대박을 터뜨렸다.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다시 한 번 신경숙, 신경숙이 오르내렸다. 지하철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그 다홍색 커버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아-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책을 보지 않는다. 대신 뒤늦게 들어온 책들을 읽었다. 감탄, 감탄. 요즘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디 잘 쓰는 사람만 많겠는가. 어제 노래를 하는 친구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인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이승철, 김건모를 이야기한다. 요즘은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내게 90년의 기억에 신경숙은 없다. 단지 그녀의 화려한 전성기를 그저 몇 백만 부씩 팔렸던 기록으로 기억할 뿐이다.    

 

 

   가슴이 얼마나 아리던가. 그녀의 소설을 읽는 일이란 게. 스무 살, 소설을 읽다 너무 잘 써 눈물까지 흘렸다는 영문과 누나의 말을 떠올린다. 어떻게 책을 읽고 운다는 거지? 그녀는 영문과인데. 나는, 나는 문예창작학과잖아. 삐뚤어진 열정은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것들 마저 전부 질투했다. 왜 내겐, 그런 감수성은 없는 거지. 오히려 나는 슬픈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잘 흘렸다. 그러나 책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을까? 오랫동안 묵혀뒀던 기억들을 더듬어 가는 일 년이란 시간동안 그녀의 소설은 완성이 되었겠지. 어쩌면 흐릿한 기억이 아니라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것들을, 마치 없던 것처럼 삭제하고 싶었던 나날들을 퍼내는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낯선 서울이 준 이물감 때문에 웃어도 웃어도 절대 행복할 수 없었던 5년간의 기억을, 임금님 귀가 당나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뱃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사내처럼, 그래서 결국은 배가 부풀어 오르는 화병을 견디다 못해 숲에 가서 외친 것처럼 글로 풀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4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툼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의 첫 장편 『깊은 슬픔』이 생각난다. 아니 ‘깊은 슬픔’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러한 이야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할 뿐이다. 
  외딴방. 서른 몇 개쯤 고만고만한 크기의 방들이 오종종 늘어선 가리봉동의 공장단지 동네에서 그녀는 공순이였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박정희를 넘어서 전두환 정권 세대로 이어지는 기간 속에 최하층의 이미지들이 가져다 준 슬픔들이 그녀의 침착한 문장에 써내려진다. 
  과연 저런 이야기들을 경험한 사람만이 글을 쓰는 거야. 질투보다 경외감에 가득 찬 내가 생각한다. 나는…… 나는 뭐지? 환상. 새로운 것을 찾아 갔다. 오랜 시간 그 안에서 떠돌았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해도 슬퍼지기만 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한동안 맴돌았다.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괴로움에 나날이었던 시간을 솔직히 끌어내는 이 소설이 그녀에게는 치유가 되었을까? 숲 속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나서야 속이 시원해진 사내처럼 그녀도 더 이상 고통에서, 자신의 주위를 살아 움직이듯 떠돌던 희재 언니의 기억들 속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책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한다.

  그래도, 적어도 그녀는 인정했으리라. 그 시간을, 자신의 주위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종로에서 수원행 열차를 타면 갈 수 있는 가리봉동 역을, 그리고 그 좁디좁은 외딴방을. 열다섯부터 희재 언니의 사건이 일어나기 까지 지냈던 그 때의 기억들을.

  ‘자신을 인정하자……’ 나는 두려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거짓으로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그녀에게, 그 슬픔의 시간 속에 가족이 존재했고, 외사촌이 존재했고, 공장의 동녀들이 존재했고, 최홍이 선생님이 존재했고 그리고 기쁨이자 고통이었던, 썰물이자 밀물인 그녀, 희재 언니가 존재했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녀는 그 시간을 이겨냈을지도. 나 역시 가족을 떠올려 본다. 나도 그녀처럼 모든 걸, 인정하리라. 나의 존재를, 내 모습을 단지 평범하게 폄하했던 것, 나를 있는 그대로 포장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인정하리라. 그녀의 치유법이 내게 깊은 슬픔 속에 싹을 틔운 한 줄기 희망처럼, 제주도의 반짝이는 모래 빛의 모든 것들처럼 힘을 준다. ……그리고 난 오랫동안 마음으로 많은 소설들을 통해 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억에 남는 문장  

 

  오랫동안 글쓰기의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닌가 하여 고독한 나날들이었다고, 쓰겠다는 말만으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닌가 하여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고. 
  그의 고독  

  나는 푸른 새벽에 그가 오 년 만에 문예중앙에 발표한 옛우물, 을 읽었다. 고독을 헤치고 돌아온 그는 물방울이 묻은 산호 같았다. 소설 쓰는 자의 주눅듦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 옛우물이라면, 그 주눅과 두려움은 소설 쓰는 자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인간의 한데를 더듬으며 남루했던 여자들을 신화속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P231

  어디에 가서 앉아야 할지 모를 어설픔이 남긴 마음의 상처.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서도 사람 많은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맨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그곳에 가면 내 자리는 있을까. 어설퍼질 것 같으면 안 가게 돼버리는 성장하길 멈춘 무의식. -P257  

 

 

  “그렇지 않아. 잊지 않고 있으면 할 수 있어. 꿈을 잊으면 그걸로 끝이야. 언제나 꿈 가까이로 가려는 마음을 거두지 않으면 할 수 있어. 가고 또 가면 언젠가는 그 숲속에 갈 수 있을 거야. 거기까지 못 가도 그 근처엔 가 있을 거라구.” -P258

 

  나의 외사촌은 늘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했다. 내가 언제나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했듯이. 외사촌의 발랄함이나 나의 우울은 그곳에 살면서도 늘 그곳 사람들과 자신들이 다르다고 생각한 데어서 솟아나왔는지도 모른다. 외사촌과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벌써 나의 외사촌은 떠났고 나도 떠날 것이다. -P331


  엄마의 가족을 격려하는 방식은 그 집의 낡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엄마는 가족들 사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발생할 적마다 그 집의 재래식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안의 남자들. 사랑하지만 이따금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던 아버지와 장성해가는 아들들이 엄마를 실망시킬 적에도 엄마는 힘없이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드는 딸에게 놀랐을 적에도. -P342

  어떤 일들을 글로 옮기다 보면 많은 부분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을 드러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 간략하게 축소되어버리는가 하면 어렴풋했던 부분들이 방대해지고 길어진다. 내가 쓰는 글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끊임없이 솟아오르거나 끊임없이 사라져버리는 순간들 때문에. 그래도 이제부터는 어떤 얘기를 하든 그 얘기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향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P389

 

  이제 내 가슴속을 떠나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소용돌이나 퇴적물이나 정적 속은 아닐 것이다. 내 가슴에 소망스런 다른 이야기들이 이렇게 솟아나고 있으니. -P405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을 억지로 끌어낼 순 없었다. 그러나 내가 애착하는 것들은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이다. 쉽게 끌려나오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들의 진실이 언젠가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문학은 그 진실의 고귀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P4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릴레이와 네모난 지구 신나는 과학 원정대 3
이은희.정미진 지음, 강도하 그림 / 살림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됐는데 내용이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바로 사서 조카에게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하네요. 지금 옆에서 읽고 있는데 책을 잘 안 보던 녀석이 하루종일 책만 보고 있는게 신기 하네요.

  갈릴레이 박사님을 구출하러 떠나는 궁구미와 찌찌, 세일러곰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 순간 평소 몰랐던 과학지식을 알게 될 수 있어 더욱 좋은 책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