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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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입맛은 어떠한가. 책을 펼치기 전 당신은 혀를 충분히 날름거리는가? 을유문화사에서 본격적으로 고전 문학 전집에 손을 댄지 벌써 열일곱 권 째다. 그동안 나온 작품들이 고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대충 약력을 훑어보면 아하, 하고 떠올릴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로베르토 볼라뇨, 국내에선 제 3세계 문학으로 분류되는 남미 문학에 대해, 그것도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닌 것 같은 형식의 책을 과감히 선택해 내밀 줄 누가 알았을까? 남미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국내 독자들의 입맛에, 아니 세계 입맛에 들어맞은 파울로 코엘료를 떠올리거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 유명한 작가 보르헤스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 약력을 보니 수잔 손택이 극찬을 한 작가란다. 처음 가는 음식점 한 귀퉁이에 누구나 다 알만한 미식가가 극찬한 메뉴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선택한 대부분은 아마도 정말로 아메리카 나치 문학의 계보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펼치고 40페이지도 넘기지 못해 책장을 접고 싶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전 형식의 인물 계보. 부르기도 힘든 이름들의 생애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웃음 포인트. 작가가 접근한 풍자적이라는 냄새는 풍기지만 어디서 맞장구를 칠지 몰라 짜증만 날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픽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작가의 엄청난 역량을 느껴볼 수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생애를 간결하게, 감정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설명서 같은 이야기로 풀고 있는 로베르토 볼라뇨는 냉소의 극치를 발휘하고 있다. 삼십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품고 있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작가가 오랫동안 경험했던 삶 속에 녹아든 극우주의자들을 향한 문학적 썩소. 픽션이지만 논픽션일 것 같은 이야기들이 당시에 이 책이 발간 됐을 당시 많은 사람들의 극찬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지구 반대편이라는 문화적 거리감에 접근하지 못해 느끼지 못할 뿐. 지금 이외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대중들의 환호성을 얻을 정도인데 말이다.

  이 책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읽어보고자 한다면 책의 곳곳에 포진한 작가의 강한 비판의 힘을, 치열한 글쓰기로 만들어진 색다른 문학을 느끼면서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오래 곱씹을수록 새로워지는 맛이 느껴지는 음식은 있기 마련이다. 맛을 느끼기 전 목구멍으로 넘어간 음식은 결국 소화되어 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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