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성공률에 도전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대신해 연애를 이루어주는 연애조작단이다!'란 홍보 문구와 영화 제목과 홍보 포스터를 보면 어떤 내용이 떠오릅니까?
이것만 보면 연애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도와 연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같지 않습니까? "Mr. 히치"에서의 윌 스미스가 맡았던 데이트 코치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예측하셨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홍보를 하는 것처럼 연애조작단(데이트 코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너무나 식상한 삼각관계에 빠진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전에 연인 사이였었던 한 남자(엄태웅)와 한 여자(이민정)이 그 여자를 좋아하는 또 다른 남자(최 다니엘)로 인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사랑싸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남자의 직업이 바로 연애조작단일 뿐이죠. 하지만 반은 맞았다고 한 것은 이 영화의 초반 오프닝은 그토록 홍보를 했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연애에 소질이 없어보이는 남자(송새벽)가 자신이 좋아하는 한 여자와 사귀기 위해 병훈(엄태웅)이 이끄는 시라노 에이전시를 찾아와 결국 이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에 골인이 한다는 오프닝 장면이야말로 딱 그 내용이지 않나요? 오프닝치고는 너무나 긴 이 장면을 빼버리면 결국 삼각관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이야기란 말이죠.
오프닝 장면에서 현곤(송새벽)이 원하는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시라노 일당이 벌이는 작전은 약간은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송새벽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신선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그 작전이라는 것도 번뜩거리는 아이디어가 묻어 있기에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의뢰자 상용(최 다니엘)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연애조작단의 신선함은 죽어버리게 됩니다. 놀라운 상황 조작과 지도로 의뢰자를 사랑할 수밖에 만들어버리는 연애조작단의 활약은 줄어들고 두 남자와 한 여자에만 내용이 집중이 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병훈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극이 되면서 오프닝 내용에서 많은 활약과 상당한 비중을 보였던 시라노 에이전시의 다른 캐릭터는 무대 뒤로 슬그머니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병훈과 상용 그리고 그 속에 낀 희중의 삼각관계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겁니다. 다만 식상해보이는 이 삼각 관계를 연애조작단이라는 껍질로 포장을 해버린 것이죠.
제목과 영화 본편에서도 언급이 되는 '시라노'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기는 합니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친구대신 러브레터를 써주어야하는 상황에 빠진 시라노는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죠. 자신의 마음을 대시 편지에 담자니 그 친구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격이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대충 써주자니 자신의 마음이 그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이 영화에서는 돈으로 다르게 설정이 됩니다.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상용의 의뢰를 들어주면 자금 상황이 안좋은 회사를 살릴 수 있겠지만 옛사랑을 떠나버리게 되며, 반대로 상용의 의뢰를 거절하게 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비록 연애조작단의 내용을 제대로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김현석 감독은 자신만의 연출력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 삼각 관계의 연인들의 모습을 꽤 진지하게 보여줍니다. 약간은 과장되게 그려졌던 오프닝 장면에 비해서 본편 내용은 진지하게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의뢰자의 사랑을 이어주는 연애조작단의 활약을 볼 수는 없지만 이 내용도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긴 합니다. 결국 연애조작단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 삼각 관계의 내용에 만족한다면 이 영화에 호감을 보이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실망하게 될 겁니다.
또한 영화 속 캐릭터가 내맽는 말이기도 하는 시라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 지에 대한 의문은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집니다. 그 시라노와 똑같은 결말을 병훈은 맞이하게 될 것인지 다른 결말로 이어질 지는 끝까지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홍보문구처럼 연애조작단의 활약을 그릴 목적이었다면 다양한 의뢰인의 사랑을 이어주는 연애조작단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만들어야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현석 감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그런 연애조작단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 나오는 시라노 에이전시를 보고 있자니 오 헨리의 "재물의 신과 사랑의 신"이 떠오릅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믿는 조카의 뒤에는 자신의 재물로 조카의 사랑을 이어준 삼촌이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사랑을 이어주는 시라노 에이전시도 결국 돈으로 귀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프닝에서 보여준 그들이 펼치는 비밀 작전에 많은 활동비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텐데, 그 업체에 지불해야하는 의뢰비는 과연 얼마일지 살짝 궁금했습니다. 결국 사랑도 돈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