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분미 -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어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유창하면서 재미있게 잘 하는 미국인이 그 사람 앞에서 영어로 떠들어도 그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설사 영어로는 아무리 말을 재미있게 하고 알아듣기 쉽게 쉬운 단어를 구사한다 해도 말이죠. 하물며 미국인도 실생활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어려운 단어를 이용하고 한 문장을 복잡하게 꼬아 길게 한다면 더더욱 그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테죠.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일명 예술영화는 바로 이렇게 다가옵니다. 간단히 말하면, 재미가 없다라는 것이죠. 물론 모든 영화가 단순히 재미나 한순간의 쾌락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 영화처럼 관객의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로만 가지고 만들 수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감독 자신만의 시각이나 시선으로 사회 내 존재한 어두운 면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라는 단어는 단순히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즐거움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업 영화를 보고나오면서 재미있다라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비판적인 다큐멘터리나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 드라마를 보고나서도 재미있다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다'라는 말은 '이해가 된다' 혹은 '공감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는 마치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만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예술 영화가 재미없다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술 영화가 상업 영화처럼 볼 수 있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어서이기보다는 영화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간 개념이 있는 장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사(敍事)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아, 물론 의도적으로 이 시간 개념을 파괴하고 만들 수는 있을테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는 서사성을 띄기 마련입니다. 이 서사 구조가 잘 짜여있고 관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서사 구조가 약하고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장면만 남발한다면 재미없다란 낙인이 찍히기 쉽습니다. 고3 학생의 하루 일과를 보여준다하면서 아무런 설명없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장면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는 장면, 수업을 마치고 교실 청소를 하는 장면, 아침에 등교하는 장면 등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놓거나 혹은 고3학생과는 상관없는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하는 장면이나 연예인 장면 등을 집어넣어버린 영화라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이는 서사 구조가 약해져서 그렇습니다.

 일명 예술 영화는 서사 구조를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대신 한 순간의 느낌 혹은 분위기, 감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독 자신은 당연히 자신이 연출하는 의도나 보여주려는 장면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 설명이나 의도를 알고 있기에 중간 과정이 빠져있다한들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그런 배경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들은 그 의미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장면 간 연결고리가 약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대사가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더더욱 알아내기가 힘들고 이는 결국 '재미없다'란 말을 관객한테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 또한 그렇습니다. 감독 자신은 무얼 보여주고 싶은지 이 장면의 의도는 무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을 통해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그 감독이 편집해놓은 장면들의 나열만을 보고 그 의도나 의미를 유추해야 합니다. 관객들은 감독이 깔아놓은 자기만의 암호를 해독하고 풀어낸다면 숨겨져있는 의미를 알아내어 재미를 느낄 수 있을테지만, 암호풀기에 실패한다면 '림보'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기자 시사회에서 많은 기자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잠에 들었다는 소문이나 실제 필자가 이 영화를 관람할 때 양쪽 주위로 꾸벅꾸벅 잠에 빠진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풍경이 이를 증명합니다.

 앞뒤 설명없이 등장한 공주와 메기의 섹스 장면을 비롯해서 많은 장면들의 연결고리가 참 얕습니다. 그러기에 이야기 구조를 이해하기 힘들고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모습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영화 <하모니>에서 주인공이 하루 외박을 위해 합창단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보여주는 장면 뒤에 탈옥을 하려고 굴을 파는 장면이 등장하고, 그 다음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장면, 그리고 다시 합창단을 모집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등장한다 생각해보세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피찻퐁 감독은 나래이터를 파괴하여 장면마다의 고리를 무시해버려 갑자기 뜬금없는 장면들이 나타나기 일쑤입니다.
 즉, 한 장면, 한 씬은 독특한 기법이 엿보이고 새롭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 여러 장면을 하나로 엮어놓다보니 전체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영화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단순히 이야기의 여운을 잔뜩 남긴 정도가 아니라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아듣기 어렵게 만들어버린 것이죠. 감독 자신만의 암호로 꽁꽁 묶어놓아 일반 관객들이 다가가기 힘든 영화로 만들어놓았고 그러기에 일반 관객과의 소통이 막혀져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예술 영화는 어렵다, 재미없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하지만 장면간의 허술한 연결 고리외에도 솔직히 필자가 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점도 한 몫을 할 겁니다. 가령, 주인공 엉클 분미가 결국 죽게 되자 청년 통이 갑자기 스님이 되어 나타는 점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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