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 - The outlow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우발적·현실 불만으로 인한 범죄자가 2003년 183명에서 2007년 617명으로 237%나 증가했다..-국감자료 - 

  이 통계는 2008년 서울경찰청이 모 국회의원에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발췌한 것인데 <무법자> 홍보물에서 이를 인용하였더군요. 하지만 이런 데이타가 아니더라도 이유없는 범죄, 일명 '묻지가 범죄'가 대한민국을 떠들썩거리게 만든 이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묻지마 범죄'는 아무 관련없고 죄가 없는 사람을 피해자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입니다. 바로 어느 누구나 아무 이유없이 범죄의 피해자로 선택될 수 있다니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별히 누구를 괴롭히거나 크게 피해를 준 적이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이유없이 잔인한 범죄의 피해자로 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사람과의 신뢰에 금을 가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묻지마 살인을 중심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주인공 오정수 반장은 사건 수사 중 아무 이유없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정지현을 만나게 되는게 그녀에게 감정을 느껴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정수 반장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못해 가출하게 됩니다. 나중에 그녀와 딸이 아빠인 오정수 반장을 만나려고 하던 중 다시 묻지마 범죄에 빠져 죽게 되고, 그 범인이 무죄를 선고받자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이런 줄거리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영화를 끌고 가겠습니까? 글쎄요. 저라면 복수극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범인을 시원하게 응징하는 지를 다룰 겁니다. 분명 '묻지마 범죄'는 선량한 시민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다 생각이 드니까 말이죠. 범인들에게 현실에선 못한 통쾌한 복수를 펼친다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줄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복수극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아요. 주인공 오정수 반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띄엄띄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오정수 반장이 복수극을 저지르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번 <테이큰>에서 주인공 브라이언이 어떻게 아내를 만나 딸 킴을 얻게 되었으며, 무슨 사연으로 이혼까지 했는지 등 과거 사연을 주구장창 보여주다 딸의 납치 사건이 영화의 2/3이 지나서야 벌어진다고 상상해보세요. 브라이언의 연애사는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도 아니며 중심 테마와도 어울리지 않죠.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내용이 가득차 있어요. 복수극 전까지는 무슨 내용이 있냐하면, 피해자 이지현이 어떻게 잡혀서 성노리개를 어떤 식으로 당해왔는지, 오정수와 정지현간 무슨 과거가 있었는지, 오정수 반장의 친구인 윤지민과 박성철 신부는 어떠했으며 또한 오정수 반장을 짝사랑하는 한소형 형사의 이야기 등이 있어요. 오정수와 정지현간의 이야기는 복수극과 관련이 있다쳐도 친구 윤지민과 박성철 신부의 이야기나 오정수 반장을 짝사랑한다는 한소영 형사의 이야기와 나래이터는 복수극이랑 거리가 멉니다. 딱 한마디로 쓸데없는 장면들로 가득차 있는 거죠. 복수극을 다룬 또 다른 영화 <모범시민>을 봐도 주인공이 어떻게 복수를 하는 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잖아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로 복수극을 진지하게 끌어내고 있지도 않다면 묻지마 살인에 대해 얼마나 깊이있게 리얼리티를 보여주는지 살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떠오르고 있는 사회 이슈를 소재로 삼고 있는 만큼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은 중요한 요소일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표방한다는 겉모양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그런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지 않죠. 아니 애초에 보여줄 생각이 없었는지 그저 여러 영화들을 베낀 듯한 내용과 장면들을 나열할 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정지현(이승민)이 묻지마 범죄에 걸려들어 일당들에게 당하는 장면은 <실종>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여자를 철장에 가두어 성노리개로 만들어버린 듯한 내용뿐 아니라 전라의 여배우 장면 등 <실종> 영화 속 장면들과 비슷하죠.
 다음으로 그 정지현과 딸이 커피숍에서 살해되는 내용과 장면은 <이태원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니 이건 그냥 그 사건을 통째로 가져왔어요. 취조할 때의 장면이나 재판 장면도 그렇고 범인이 서로 진술을 엇갈리게 한다는 내용 등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이태원 살인사건>이 순수창작물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이태원 살인사건>을 베낀 게 아니라 실제 그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정수 반장이 복수극을 펼치게 만드는 중요 사건을 그다지 다른 데 없이 '이태원 살인사건'과 똑같이 옮겨놓은 건 별 생각없이 각본을 쓴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듭니다. 
 오정수 반장이 자신의 아내와 딸을 무참히 죽인 범인을 무죄로 만드는 게 일조한 사람들을 납치해 복수한다는 내용은 <모범시만>을 연상케하며, 마지막 길한복판에서 벌이는 복수극 분위기와 그 의상은 <쏘우>를 참고했음이 분명합니다.

 즉, 어느 하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아요. <살인의 추억>처럼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긴장감있게 뒤쫓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테이큰>처럼 천벌을 받아 마땅한 범인에게 복수하고 처단하는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죠. 그저 여러 영화를 짜집기 하여 나열하고 있을 뿐, 어느 하나 내용을 제대로 끌고가지 못해요. 게다가 지나친 우연과 그로 인한 엉성한 스토리 전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게다가 중심 캐릭터들도 어설프게 구축이 되어 있어서 극 흐름을 방해하기 일쑤입니다. 상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집어넣은 듯한 쓸데없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다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캐릭터와 잘 들어 맞지도 않아요. 열혈 여형사로 분장한 장신영의 연기도 그 캐릭터와는 붕 떠보이며 주연 강력부 반장 역을 맡은 감우성도 <연애시대>의 말투와 어조를 가지고 형사 반장 연기를 펼치고 있어서 솔직히 형사 반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 팜플렛에 웰메이드 영화인 <살인의 추억>, <추격자>와 이 영화를 비교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었던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광시곡>과 비교하는 게 맞을 것같습니다. <용서는 없다>나 <평행이론>도 이 영화에 비해선 수작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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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or 2010-07-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읽었습니다. 글쓴이님의 스릴러영화지식에 대한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마치 영화한편을 그냥 다 본 느낌입니다. 역시 '잔인한'영화사랑은 그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꺼 같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