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살인 - Private ey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굳이 찾아본다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꼽아볼 수 있겠는데, 보통 불륜을 캐는 등 개인적인 일을 비밀리에 해주는 일을 주로 하죠.
그러다보니 일본이나 미국 소설에서 종종 탐정이 등장하지만 국내 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들며 영화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직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은 신선하면서 충분히 흥미를 땡길 만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영리하게도 시대를 현대가 아닌 조선말기 혹은 일제시대로 설정을 해놓았잖아요. 그 당시엔 탐정이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금지되어 있지도 않았을테니 탐정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비현실적은 아닐테니까요. 시대를 현대로 설정을 했다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탐정이라는 직업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경찰에 들키지 않고 수사를 벌여야하는 어려움도 있겠고 사람들이 경찰도 아닌 사람한테 사건에 대해 털어놓지도 않을테고요.)

 하지만 많은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고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도 썩 영리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즉, 신선하고 좋은 음식 재료를 가지고도 그저그런 요리를 만든 꼴이죠.

 우선 이 영화는 탐정추리극을 표방하고 있어요. 이 말은 이 영화에서 기본 갈등인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탄탄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초반 사건을 맡게되는 과정부터 너무나 수상합니다.
먼저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자기 나름의 철칙을 지닌 주인공 홍진호가 왠 어린 의학도가 찾아와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하는데 자신은 돈에 관심이 없으니까 현상금 500원을 다 가지라고 하는 말에 혹에 사건을 맡게되는 설정이 그렇죠. 분명 그는 현상금 500원이 걸린 벽보를 보았을텐데 위험한 일이라 그 땐 관심이 없다가 장광수의 말을 듣고는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가 썩 그럴 듯 하지 않아요. 차라리 홍진호가 먼저 미국행 배삯을 위해 이전 철칙을 잠시 예외로 하고 살인범을 찾으러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우연히 시체와 같이 있는 장광수를 목격하게 되었다라는 설정이 더 그럴 듯하죠.
 또 하나의 주인공 장광수도 그래요. 칼에 찔려 죽은 시신이란 걸 아는 의학도가  그 시체를 몰래 가져와 해부실습용으로 쓸 정도로 대담성을 보여주다가 그 시체가 고위 대신의 아들이란 걸 알자 벌벌 떨며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홍진호를 찾아온다는 설정도 엉성하단 말이죠. 의학도라는 사람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밖에 내버려있는 시체를 보았다면, 그 시체가 살인사건의 피해자이며 순사들이 수사를 벌일 거라는 걸 몰랐을까요? 아니죠. 당연히 알았을 것을 이 영화에선 몰랐다고 고집하는 것도 이상하고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릴 걸 두려워한 장광수가 외부인 홍진호에게 그 비밀을 말해버리는 것도 이상하죠. 차라리 시체 몸 속에 돌같이 무거운 걸 집어넣고 아무도 모르게 밤에 호숫가같은 데에 버리는 게 더 그럴 듯하죠.  
홍진호가 순사한테 장광수와 시신을 신고해버리면 어떡할 작정이었을까요? 무고한 자를 범인으로 몰 순사부장이라면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장광수를 범인으로 모는 건 일도 아니었을텐데요.
(게다가 그 시신이 그곳에 있다라는 걸 장광수가 어찌 알고 가져올 생각을 했는지도 그냥 넘어가야하는 부분인가요?)

사실 엉성한 부분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범인이 하인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을 고위 대신인 집에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서 아들 민수현을 죽일 수가 있으며, 또 그 시체를  핏자국없이 들고나올 수가 있죠? 특히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민수현이 벽에 핏자국을 남기고 몸부림을 칠 정도면 민수현이 소리를 질렀을 법한데 말이죠.
게다가 최고의 권력을 자랑한다는 경무국장집에서도 똑같이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 죽이고 그 시체를 핏자국을 내지 않고 들고 나오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요. 또한 범인의 정체를 봤을 땐 그 경무국장 일본인이 아무 호위없이 그 조선인과 단둘이 만난다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 면이죠.

 뒤의 후반 범인의 정체와 살해 동기를 고려해봤을 때는 그 시체를 밖에 유기해버리기보다는 그 방에 죽인 채 나오는 게 더 적절하죠. 왜냐하면 범인은 아이들한테 끔찍한 일을 한 자들에게 복수를 저지르는 것이니 일부러 쉽게 발견되도록 해야하니까 말이죠. 밖으로 유기하다가 장광수같이 누군가가 들고가거나 해서 발견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사람눈이 있는 고위관직 집에서 자기 몸 하나 빠져나오기도 힘들텐데 굳이 힘들게 그 시체를 가져올 이유가 없죠. 아니면 빨리 순사한테 발견이 되도록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신고를 하던가요.
이뿐만 아니라 마지막 무라타 총감때도 홍진호가 그 집에 들어갈 때나 무라타를 시원하게 혼내줄 때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거나 홍진호, 순덕, 장광수가 그 무라타에 짧은 시간내에 일처리를 한다든지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엉성한 내용이 남발되어 힘이 떨어져요.

또한, 그 당시 의학지식이라도 시체의 사망시간이나 흉기같은 정보는 알아낼 수 있어요. (영화 <기담>에서도 나왔죠.)
즉,  일부 특수한 사람만 사용할 법한 양날검같은 걸 흉기로 사용한다라는게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입니다. 그당시 그런 흉기를 사용할 법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순사가 그 흉기의 출처만 제대로 조사한다면 충분히 그 범인은 잡혀도 한참전에 잡혔을껄요. 물론 범인이 한 사람만 죽이고 도망갈 것이라면 또 모를까. 계속 고위층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범인이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삿갓을 쓴 미행자와의 추격장면에서 홍진호가 놓칠 위기에 처하자 장광수가 어디선가 인력거를 잡아 타라고 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요? 이는 마치 형사물에서 주인공이 범인을 뒤쫓다가 범인이 탈 거를 이용하여 빠져나가려고 하자 파트너가 차를 몰고와서 타라고 하는 장면같습니다. 근데 이 장면이 뭐가 이상하냐고요? 좀만 생각해보면 그냥 발로 뛰어가는게 성인 두 남자를 태운 인력거를 인력거꾼이 모는 것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어요. 결국 이 영화의 각본을 작성할 때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차에서 인력거로 바꾸어놓았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죠.  
신문기자로 위장하여 서커스 단장의 방을 조사한다는 것도 참 안일하죠. 차라리 서커스를 공연할 때 몰래 뒤지는 게 더 그럴 듯하지 않나요? 신문기자라고 함부로 서커스 내부에 출입을 시키거나 이것저것 들쑤시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어린아이를 대준 사람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도 아무런 의심없이 서커스만 하는 형이나 경무국장이 자신의 어깨 위치의 옷을 입으로 물어뜯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 채 돌아간 동생이나 매한가지죠. 입으로 어깨 위치의 옷을 물어뜯었다면 살점도 같이 물렸을 것이고 알아챌 법하죠. 물론 살이 닿지 않는 소매부분이면 또 모르죠. 

결국,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 엉성하고 비현실적인 구석이 너무 많아요.
이는 각본을 쓸 때 제대로 꼼꼼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단지 조선말에 탐정과 의학도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다라는 큰 줄거리만 잡아놓은 채 그 잔가지 설정이나 전개는 세밀하게 짜지 않은 탓이죠.

이 영화의 문제점은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점뿐 아니라 캐릭터가 개성과 일관성이 없다는데에도 있어요.

 탐정 홍진호를 살펴볼까요? 초반에 그는 한 의뢰인의 부인의 불륜 현장을 추적하여 돈을 버는 사람(흥신소처럼)인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게 그의 모토입니다. 그가 미국에 가서 불륜 현장을 잡아 떼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돈없이는 못 사는 인물로 보여줍니다. 그런 그의 과거가 순덕의 입을 통해 약간이나마 밝혀지죠. 옛날 군관출신에다가 믿음직스럽게 순덕을 호위하기도 했을 뿐더러 순사부장인 영달의 상관이기도 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의감넘치고 유능한 강력반 형사가 남의 불륜 장면이나 캐내 돈이나 벌려는 자로 전락해버린 건데 이 두 인물 사이의 갭이 너무 커요.
순덕의 말을 보면 홍진호가 나름 싸움도 잘하는 인물인 것같은데 영화에선 썩 그런 것같지도 않고, 돈밖에 모르던 홍진호가 갑자기 서커스 어린이 단원에게 자신이 모아두었던 돈을 다 써버렸다고 하는 등 캐릭터가 너무나 우왕좌왕해요. 잘 알려진 탐정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처럼 그 나름의 개성을 설정하여 이를 밀어붙여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이것저것 가져다 이야기에 집어넣었어요.

 다음으로 의학도 장광수를 볼까요? 그는 자신의 의학지식의 향상을 위해 출처를 알 수 없는 시체를 들고와 실습을 하는 인물이에요. 초반 장면을 보면 이름없고 가난한 사람의 시체라면 불법실습을 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서커스의 어린 여자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의학생명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행동을 합니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이냥 두 얼굴을 보이고 있어요. 그가 돈보다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의술을 펼치려는 진정한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설정을 했다면 버려진 시체를 무턱대고 들고와 불법실습을 하게되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내밀어야 했을까요?
 이 두 캐릭터를 셜록 홈즈와 왓슨에서 가져다썼다는 게 뻔히 보입니다. 뭐. 주요 캐릭터를 다른 곳에서 따왔다는 걸 나쁘다라고만 할 순 없지만, 이를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하지 못했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죠.



 사실 제일 불쌍한 캐릭터는 바로 순덕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 영화에서 제일 개성있고 재미있을만한 인물인데 이 영화에서 하는 일이 딱히 별로 없으니까 말이죠. 그녀는 서양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재미있는 발명품을 개발하지만 이 영화에선 거의 쓰이지가 않아요. 고추가루를 갈아 만들었다는 스프레이도 단지 그 몇 초의 웃음을 위해 설정된 도구였습니다. (그걸 마지막 억관과 싸울 때 사용하나 싶더니만 그냥 <양들의 침묵>에서의 장면을 그냥 본따서 좀 실망했어요.)
 주인공으로 홍진호와 장광수보다는 차라리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처럼 머리로 생각하는 순덕과 몸으로 뛰는 홍진호로 하는 게 더 괜찮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또한 감으로 수사하며 코믹하고 어리버리한 순사부장과 고위관직과 결탁하여 악행을 저지른 자의 공범이라는 설정은 충돌을 일으키고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어린아이를 데주며 뒷돈을 챙기는 서커스 단장과 고위관직을 이어주면서 돈을 받는다고 설정한 순사부장이 그 고위관직이 죽어나가면 자신이 돈을 버는 뒷통로가 끊긴다라는 사실도 모를 뿐더러 게다가 내무대신한테서 자신의 아들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게 한순간에 날라갈 위기에 처했는데, 어이없게 엉뚱한 사람만 족치려고 하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가 없죠. 그가 정말 사악한 범죄의 공범자라면 자신의 돈줄과 인생이 걸린 연쇄살인범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야 하며, 단순히 웃기려고 나온 어리버리한 순사부장이라면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몰려고 하는게 맞겠죠.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연출도 썩 좋지 않아요.
특히 삿갓 쓴 자를 홍진호가 추격하는 장면은 너무 카메라를 흔들어서 오히려 몰입이 방해돼요. 본 시리즈처럼 단지 카메라만 흔들어대기만하면 긴박감이 든다고 생각한 것같은데, 그게 적당한 타이밍과 씬이 맞아떨어져야 긴박감이 드는 것이지 무턱대고 카메라를 흔들어댄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경무국장을 죽이는 범인의 얼굴을 대놓고 보여주는 건 관객들한테 생각할 여지를 아예 막아버리는 연출입니다. 뭐 사실 용의자도 딱 한명밖에 없긴 하지만요. 관객이 홍진호와 같이 살인사건을 뒤쫓지 못하게 해버리니 김이 새고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요. 
 중반 이후로 갈수록 늘어지는 감이 듭니다. 가령, 서커스 장면 중 부채 마술 장면에서 종이를 부채로 날리는 장면은 깔끔하게 끊어야하는데 이를 별거 없이 길게 끄니 너무 지루해요. 얼른 종이를 나비로 바꾸는 장면이 나와야했습니다. 특히 결말은 끝낼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말이죠.

황정민씨나 류덕환씨 등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나은 점이라고 할까요.

-  홍진호와 장광수의 설정은 셜록 홈즈에서 따오더니만 엔딩 프롤로그는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서 따온건가요? 뭐 아니면 셜록 홈즈의 "보혜미아 왕국 스캔들"에서 따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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