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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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불평등 심화를 경고한 역저로 꼽히지만, 출간 이후 학계와 경제계로부터 서술 방식과 내용상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 책 <21세기 자본>이 내포한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데이터의 조작 및 일반화의 오류 (내용적 측면)

ㅁ 데이터 조작 및 계산 오류: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은 피케티가 사용한 데이터 중 일부에서 계산 오류와 임의적인 수치 조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리한 기간의 데이터만 사용하거나, 데이터가 부족한 시기를 자의적으로 추정(Interpolation)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19세기 이전 데이터의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ㅁ 일반화의 오류: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다"는 핵심 공식을 입증하기 위해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불완전하게 사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ㅁ 상속의 비중 과대평가: 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의 원인이 주로 상속된 자본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인적 자본이나 고소득 기술 엘리트 등 다른 요인이 더 크다는 역사적 증거가 많다. 


2. 자본 개념의 협소함 (이론적 측면)

ㅁ 자본(Capital)의 정의 혼선: 피케티는 공장 같은 '생산 수단'과 주거용 '부동산'을 모두 '자본'으로 묶어 계산했다. 비판자들은 최근 수십 년간의 자본 축적 데이터 중 상당 부분이 생산성 향상보다는 부동산 가격 거품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일반적인 자본 수익으로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ㅁ 금융자본 위주의 접근: 피케티는 자본을 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 위주로 정의하여, 현대 경제에서 중요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나 '인지 노동'의 역할을 간과했다.


ㅁ 자본의 성격 오인: 자본수익률이 항상 높게 유지된다고 가정했지만, 이는 자본의 축적과 투자가 가져오는 생산성 증대 효과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3. 처방의 현실성 및 위험성 (정책적 측면)

ㅁ 글로벌 부유세의 실현 가능성: 피케티가 제안한 '글로벌 자본세'는 국가 간 조세회피처 문제와 각국의 정책 차이로 인해 도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따른다.


ㅁ 자본 축적 저해: 사유재산에 대한 고율의 세금 부과는 자본 축적을 저해하여 결국 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모든 구성원의 삶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4. 역사적 사실 해석의 문제 (서술적 측면)

ㅁ 불평등의 원인 분석 부족: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것이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지만, 이는 기술 변화나 제도적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요약하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부의 대물림"이라는 현상을 데이터로 증명하려 노력했으나, 데이터 분석의 정확성, 자본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제안한 정책의 현실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본의 성격을 너무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경제적 메커니즘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저자의 의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도식화했다는 것도 핵심 비판 대상이다


경제학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은 톡쏘는 직설적 문법의 저자 화법과 방대한 도표에 무심코 넘어가기 딱 알맞은 책이다.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 본인 성향에 따라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기 마련이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면 냉철한 이성으로 이 책의 허구성을 알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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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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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수작이나, 전문가들로부터 학술적 근거 부족, 사실 왜곡 및 단순화, 인류 문명의 진보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과 같은 비판을 받는다. 

특히 인지혁명과 같은 핵심 주장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기반하거나, 방대한 역사를 인과관계가 부족한 서사로 꿰맞췄다는 지적이 많다. 


첫째, 학술적 엄밀성 부족 및 사실 왜곡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계에서는 하라리가 복잡한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맞춰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증명되지 않은 학설을 사실처럼 기술했다고 비판한다.


둘째, 지나친 단순화

인지 혁명,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이라는 3대 혁명으로 수만 년의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구조화하여 인류 발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왜곡했다는 평도 있다.


셋째, 인류 문명에 대한 비관적 시각

농업 혁명을 '사상 최대의 사기'로 칭하거나 인류의 역사를 '약탈과 파괴'의 과정으로만 묘사하여, 문화, 예술, 윤리적 발전 등 문명의 긍정적 측면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도 있다.


넷째, 참고 문헌 및 각주 부재

대중적인 서술을 위해 학술적 책들이 갖추어야 할 상세한 인용이나 참고 문헌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아 주장의 근거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 책의 논술 근거의 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다섯째, '허구'에 대한 과도한 의존

'상상 속의 질서'가 인류 협력의 전부인 것처럼 강조하지만, 연대, 공감, 친화력 등 인간의 생물학적/심리학적 협력 동기를 간과했다는 점도 비판 받는다. 


사피엔스는 인류 역사를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뛰어난 대중 교양서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연구라기 보다는, 저자 개인의 환원주의적 관점이 가미된 사변적인 이야기의 구성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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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26-03-0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동의합니다. 초반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 바깥으로 나갔다는 내용을 보고 집중력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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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하면 떠오르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 사건>이 있다. 1984년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생들이 교내 민간인 4명을 사복경찰로 오인하여 감금 폭행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저자 유시민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고, 옥중에서 쓴 <항소이유서>로 필명을 얻은 바 있다. 


이후 국회의원과 장관을 두루 거치며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던 유시민이 정계를 떠나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며 내놓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톡톡 쏘는 언변으로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청년들에게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만의 얘기를 풀어내고는 있지만, "과거의 폭력적 가해 행위에 대한 진정한 성찰 없이 지식인으로서의 '위선적 언어'로 자신을 미화한 글"로 비판받기도 한다. 


비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존엄'에 대한 담론과 가해 행위의 모순

 유시민은 이 책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중요한 가치로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가담했던 <서울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 사건을 감안해볼 때, 타인의 존엄을 짓밟았던 인물이 훗날 존엄을 논하는 것은 묵직한 윤리적 모순으로 비쳐지며, 이는 대중을 기만하는 위선으로 지적된다. 


2. 가해 사실에 대한 '책임 회피'와 '합리화'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삶을 '연대'와 '자유'의 관점에서 서술하며, 자신의 과거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사건의 피해자들은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살고 있음에도, 유시민은 당시 사건을 '시대적 아픔'이나 '운동권의 실수' 정도로 치부하고, 폭행 현장의 직접적인 가담이 아니었다는 식의 해명으로 책임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나 구체적인 보상 행동 없이 교훈적인 담론만을 늘어놓는 것은 가해자의 후안무치함으로 비판받는다. 


3. '지식인-가해자'의 도덕적 이중성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고상한 지식인, 합리적인 자유주의자의 시선에서 인생을 설계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과거 '프락치 사냥'이라는 가장 야만적인 방식의 폭력을 주도했던 인물이, 현재는 합리적이고 세련된 언어로 대중을 가르치려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위선'이 도마 위에 오른다. 즉, 책에서 말하는 '사람다운 삶'과 실제 과거 행동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 책의 내용 자체가 '표리부동'하게 느껴진다는 평이다. 


요약.

이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도, 스스로를 '민주화 운동의 일원'으로 포장하며 내놓은 자기 위로이자 합리화의 산물이라 비평할 수 있겠다. 진정한 의미의 '참회'가 없는 철학적 담론은 공허하며, 가해자의 위선적인 글쓰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책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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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회색지대
윤해동 지음 / 역사비평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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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에겐 유독 “줄서기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

친일,협력 – 반일 저항 의 중가지대, 회색지대, 점이지대에 서서 양자 중 어느 하나에 줄을 서야 할 것인가를 평생을 두고 적극적으로 소극적으로 저울질하고 선택의 기로에 섰던 기억들. 


해방 이후, 6.25 도강파냐 잔류파냐, 피난파냐 부역파냐, 여순, 제주, 광주 …


이후 어느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선택했던 줄서기를 갖고 판도를 뒤집는다. 앙갚음, 한풀이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반민족행위처벌법 1948 제정 … 유야무야된 것도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법과 비슷해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떳떳하게 돌을 던질 처지가 못되었던 측면도 있다. 

36년이라는 세월에서는 대다수가 점이지대, 회색지대에서 일말의 기회를 엿보았던 면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세월이 100년을 넘어갔다면 그런 법안 자체가 등장했을지…


앞으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와 비슷한 앙갚음의 법안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겠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연좌되는 혹은 자기 내부에 있었던 기회주의적 양다리 전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이중적 지위 : 한국인들이 한쪽으로는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또다른 쪽에서는 침략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각이 없이 친일문제를 일방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겁이다. 식민지 지배나 전쟁 책임 문제는 자기성찰, 자기책임이라는 것이 식민지민에게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299) 


‘당위’로서의 역사학은 ‘객관, 실증’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나온 산물 아닐까? (p.284)
그래서 억지스런 인과관계나 목적론에 매달리게 되는 …그것도 자기만의 사료 해석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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