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투게더,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분업화하고 전문화했다. 나는 신발 밑창만 만드는 사람이어서 신발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도 못하고 누가 그것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은 노동의 즐거움을 도대체가 맛볼 수가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은 분업화되고 쪼개지고 나눠졌다. 자신의 노동조차 통제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고립되어 개인채로만 살아간다. 이제 내가 죽어도 관 들어 줄 친구도 없다. 짐멜은 현대인이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즐거움으로부터 주관적인 상황으로 이주해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자기개발에 힘쓰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친구와 같이 푸는 게 아니라 책가방을 가운데 세워놓고 혼자만 푼다. 1등을 해야 하고 성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죽어간다. 그렇지 않으면 그전에 지독한 외로움이나 우울증으로 자살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를 평등하게 했지만 실제로 우리는 빈부 격차를 느낄 뿐이다. 겉으로만 평등한 체제는 연대와 결속만을 파괴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협력하고 더불어 살기 보다는 경쟁하고 짓밟으며 살아간다. 마르셀 모스는 원주민 사회에서 ‘선물 주기’로 인해 만들어진 강력한 연대를 경쟁적 자본주의의 허약한 사회체와 대비시킨 바 있다. 그는 대가 없이 헌혈한 사람들과 돈을 받고 피를 뽑은 사람들을 비교했다. 기부자는 건강한 신체 상태로 참여하면서 피를 선물로 주는 반면 대가를 받은 자들은 돈에만 관심있을 뿐 자신의 피가 건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19세기에 공공 생활은 언어적인 것에서 시각적인 만남으로 이동했다. 도시의 산책자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신이 본 것에서 자극을 받았다. 18세기 여행자가 19세기에는 관광객으로 바뀐 것도 이와 동일한 변화였다. 여행자는 자유롭게 문을 두드리고 그 집이나 농장의 주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오늘날 관광객들은 관광 안내서를 들고 둘러볼 뿐이다. 자신들이 여행하는 지역의 주민들을 대화에 끌어들이는 것은 꺼려했다. 대화없이 이렇게 시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에서 협력이라는 게 가능할까. 대화는 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인간은 피비린내 나는 경쟁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에 없는 예절도 알고 의례도 안다. 인간은 예술도 하며 책도 보고 사랑도 한다. 사랑은 흔히 국경도 나이도 인종도 초월한다고 여겨진다. 이게 바로 사랑의 급진성이다. 사랑에는 위계도 차이도 없다. 상징 질서가 만들어 놓은 법도 관습도 모두 뛰어넘어버린다. 회사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사장이니 말단 사원이니 할 것 없이 모두 양동이로 물을 퍼다 나르게 될 것이다. 여기에 위계가 있는가. 이런 공백의 순간이 새로운 인간형, 주체성을 가져오게 한다. 이 공백은 체제 외부에 있지 않다.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이 공백의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토크빌은 평등의 찬양이 불평등에 관한 불안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의 아이들은 서로를 더 잘 믿으며 더 잘 협력한다고 한다. 반면 불평등의 정도가 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적 사회에서는 자신을 입증하기 위한 강박적 투쟁(자기개발 따위)에 타인은 낄 자리가 없다. 타인은 기껏해야 도구, 수단으로만 사용된다. 타인은 ‘적’인 것이다. 이 확고부동한 좌파, 저자 리처드 세넷은 함께 더불어 협력하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시종일관 침착하게 말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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