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생각하라 -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멈춰라, 참여하지 말라

 

오늘날 소비주의 사회는 과도한 향락을 금지하는 것 같다. 즐겨라! 하지만 과도하지 않게. 니코틴 없는 담배, 카페인 없는 커피, 무지방 초콜릿을 즐겨라. 왠지 가상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듯한. 커피에 카페인이 없다면 그게 커피인가. 하지만 이미 우리는 카페인 없는 커피를 마시며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내가 자유롭게 소비하고 즐기려할 때 조차 나는 이렇게 ‘관리’되고 있다. 신을 죽이고 아버지를 죽인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다. 아이러니다.

 

니코틴과 카페인은 위험한 것으로 규정되고 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거리에는 씨씨티비가 나를 지켜주고 도둑을 감시한다. 이제 사회는 개인의 안전, 건강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은 더 이상 관심 거리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우리가 점점 더 ‘세계없음(worldless)’으로 경험되는 사회적 공간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젝 또한 자본주의의 주된 위험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젝은 ‘자본주의는 세계 없는 공간을 유지하며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의미 있는 인식적 지향점을 박탈’한다고 본다. 오늘날 인터넷광의 초상은 ‘혼자 스크린 앞에 앉아서, 그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조국도, 신도 없다’이다. 그는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간적 유대관계는 귀찮고 성가실 뿐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감정 소모도 피곤하다.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학교에 갈 필요도 없다. 연애도 사이버로 하는 시대가 온다지.

 

인간적 연대, 유대관계는 깨지고 이제 남은 것은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된 주체들이다. 이 힘 없는 원자들은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할 수 있을 뿐이며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에 내던져질 수 있을 뿐이다. 지젝은 이렇게 질문한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도 여전히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2011년 미국 월가점령 시위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요구했다. 원칙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정당한 요구였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지젝은 불가능한 것은 사실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추동력은 기존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를 계속 창출’하는 것이다. 이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제스쳐는 ‘카페인 없는 커피’를 닮았다.

 

어쩌면 이 미친듯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쉬운 일인지 모른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자본주의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무효화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대항했던 시도들은 왜 언제나 실패했던 것일까. 푸코는 ‘권력이 저항을 사전에 전유해서 권력 기제가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되고 우리는 저항하는 바로 그 순간 권력에 예속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나중에는 권력이 저항을 진압하기는 커녕 스스로 초래한 결과조차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고 보았다. 지젝은 이 딜레마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저항이라는 패러다임 전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젝에 의하면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장치 자체가 바뀔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로부터 스스로 거리두기 혹은 그것을 무시하기, 이것만이 급진적 변화의 공간을 열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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