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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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Me

-벨 훅스의『All about Love』를 읽고

 

나도 두세 번의 사랑은 해 본 것 같다. 보기 좋게 모두 실패했지만 말이다. 두 번이면 두 번이고 세 번이면 세 번이지 두세 번은 뭘까.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셈을 할 줄도 몰랐던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사랑에 관해 ‘잘못된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All about Love』는 그저 통속적인 연애의 기술이나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의 정의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말문을 연다. 사랑은, 단지 신비한 힘이고 로맨틱하며 어느 날 갑자기 백마 탄 왕자가 눈앞에 나타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대부분은 사랑이 그저 하나의 ‘특별한 감정’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고 통제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책임질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단순히 느낌이나 감정만이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다.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고 애정을 표현‘하’며 존중‘하’고 충실‘하’고 헌신‘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사랑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처럼, 운명처럼, 마법처럼, 어느 날 아침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사실은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란 상대를 존중하고 보살피고 신뢰해야 한다는 등등.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왜 늘 실패하는 것일까. 이 책이 이런 식상한 얘기만 하고 있다면 재미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렇다. 우리는 다 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환상에 자꾸만 빠지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현실 사회가 사람들을 진실 되지 못하게 만들며 따라서 사랑에도 빠지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우리는 사랑이 부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는 과묵해야 하고 ‘필요하면 규칙을 무시하고 법을 넘어선 행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남자다. 또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나서서는 안 되며 외모를 가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자기의 본 모습과는 상관없이 자기를 그렇게 ‘꾸며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하다. 그렇게 우리는 거짓을 일삼으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는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 대신 우리는 상품을 사랑하게 되었다. 상품과 같은 물질을 중시하게 되면서 이제 인간은 등한시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찾아 온 것은 우울증과 절망감 밖에 없다.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이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무력해져 갔다.

 

이렇게 남녀 차별적인 가부장적 사회와 소비 사회는 진실 된 사랑을 못하게 했고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갈구하게 되었다. 가부장제는 남자는 당연히 강하고 이성적인 반면 여자는 약하며 감성적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권력 의지(지배하려는 의지)가 강한 곳에는 결코 사랑이 충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사랑을 하면’ 되었고 여성은 그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여성들은 사랑받기 위해 외모를 꾸미기에만 신경 썼고 남자들은 여자와 아이를 지배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지배와 사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 사회는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사랑하게 하고 개인의 성공과 행복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사람 사이의, 공동체에서의 사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랑에는 커플들의 사랑만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공동체이지 핵가족이나 커플들,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들이 아니다. 핸드백도 오백만원이 넘는다는 데 88만원 세대에게 자신이 상품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은 우울증만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난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공동체에 있다. 사물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서로를 보살피며, 존중하는 사회는 우울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뒤바꾸어야 한다.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하는 것도 아니며 꾸며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도 아니고 어느 날 마법처럼 찾아와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이다.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매번 사랑에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 고난도 없는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환상은 우리를 사랑의 실패로 이끈다. 자신과 상대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려는 의지도 없이 로맨틱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환상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꿈이 무산되었을 때 이 나약한 주체는 쉽게 헤어지거나 이혼해 버린다.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왠지 피곤하고 쓸 데 없는 일인 것만 같다. 관계가 깨져도 다 쓴 상품을 버리듯,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어느덧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사랑이 없는 상태, 즉 죽음의 상태로 내몰린다. 결국, 우리가 사랑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애초부터 난 사랑에 실패하게끔 되어 있었다.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다. 티비에서 가르쳐 준대로 사랑은 이벤트로 증명받아야 하고 반드시 로맨틱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그 사랑이 식어갈 때 쯤이면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려버렸다. 뻔하지만 그 다음 사랑도 역시 실패했다. 자아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의지하려고만 했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늘 상대를 탓했다. 이 책은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로맨틱한 사랑 같은 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나처럼 매번 사랑에 실패했다면 일독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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