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인문학 - 괴테에서 데리다까지 뉴아카이브 총서 2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 이성혁.이혜진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화폐와 인문학, 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화폐가 없이도 우리는 살 수 있을까. 지멜의 <화폐의 철학>은 1900년 간행 되었다. 그 당시 사회주의 세력 특히 독일 사회 민주당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화폐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멜이 보기에 자유 확립의 사회적 근거가 되는 것은 화폐이기 때문에 만약 화폐가 폐기된다면 인격의 자유 또한 소멸할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회 체제의 매개 형식, 즉 화폐, 제도, 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들이 억압적 장애물이라 여기고 상상적으로 폐기하려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삶 자체를 폐기하자는 것과 같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폐기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일까, 야만의 삶일까. 저자는 후자라고 대답한다. 지드의 소설 <위폐범들>은 매개로서의 아버지 혹은 부권(억압, 장애물)에 대한 폐기가 결국 혼돈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더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가짜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매개의 소멸, 그것은 곧 카오스의 도래다. 더이상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은 결정불가능하다. 선과 악은 하나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정 불가능성이 진실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외부적 매개 형식이 억압이고 장애물이라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몽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매개 형식 자체의 불가능성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화폐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 보고 있다. 

동물에게는 무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화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무덤(매개)이 있다. 삶은 죽음을 장례, 무덤 으로 외부화하고 제도화 했다. 삶은 죽음의 공포를 능동적으로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인류 문명은 발전해 왔다.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두 물체는 화폐라는 매개를 통해 교환된다. 둘 사이의 간극을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을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을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화폐를 경제적으로만 연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자칫 어려운 내용을 저자는 알기 쉽게 쉬운 말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루소를 통해 문자와 화폐의 관계를 규명한 대목도 재미있다. 루소는 문자를 두려워했다. 18세기 이후 경제학자들은 화폐를 두려워하고 혐오했다. 루소는 매개자 없는 투명한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근대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근대적 주체(존재)의 자기 투명성, 직접성은 매개로 인해 분열되고 불투명해진다. 근대는 이를 참지 못했다. 근대는 투명성, 순수함을 추구하고 불투명한 것은(문자나 화폐 같은 매개) 배제해야 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인간 관계 안에 매개 형식을 둠으로써 직접적인 폭력적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자신의 목소리를 자기 촉발적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 그것은 물질(공기)이라는 외부적 매체 없이는 '들을 수 없'다. 

저자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화폐라는 매개 형식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자칫 보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특정 이데올로기보다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매개자가 사라지면 인간 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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