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 이글턴, 제임슨, 사이드의 식민지 아일랜즈 모더니즘 다시 읽기!
테리 이글턴 & 프레드릭 제임슨 &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김준환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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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테리이글턴-민족주의: 아이러니와 참여




사회 계급은, 적어도 맑스에게 있어 개별적인 삶의 특수성을 집단적인 익명성으로 상쇄시켜버리는 소외의 한 형식이다. 맑스는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계급을 벗어나 다른 쪽에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레온 크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개념에 반론을 제기하며 사회계급이 ‘관계’라는 점, 그리고 계급이나 민족은 서로 결합된 자기 동일적 정체로서 일단 그 정치적인 관계가 해체되어 버리면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족주의의 형이상학은 민족이라는 단일 주체가 완전한 자기 실현에 진입한다고 말한다. 민족이나 계급의 형이상학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성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추상적 보편성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특수성을 고집해야 한다. 부르주아 경제의, 균일화시키고 평준화시키는 상품 형식의 무관심한 작용은  독특한 개별 정체성을 부시하고 모든 경계 영역을 침범하며 모든 견고한 것을 대기 중에 녹여버리고 신성한 것을 세속화 시킨다.




프레드릭 제임슨-모더니즘과 제국주의




모더니즘과 제국주의(1884년을 기점으로 한다. 즉 선진 강대국들끼리 아프리카를 분할하여 배분한 베를린 회의가 열린 시점)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모더니즘은 객관적 불확실성, 애매함, 망설임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성격과 닮아 있다. 제국에 살고 있는 주체들은 자기의 외부, 바깥에 있는 식민지의 생활 경험과 생활 세계를 알지 못한다. 분리되어 하나의 전체로 작동하는 방식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 괴리는 결핍을 낳고 그 결핍이 제국주의의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재현은 불완전하며 인식론적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가치가 출현한다. 바로 그 한계가 미학적으로 오히려 긍정되는 것이다. 포스터 같은 작가는 우연의 일치, 고립된 주체들의 우발적이고 임의적인 만남 등을 유토피아적 경험으로 변형시킨다. 근대적 삶의 우연성, 불완전성이 모더니즘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이 책의 서론을 쓴 세이머스 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임슨이 보기에 조이스가 시도한 재현, 전통적 형식의 해체는 더블린 같은 닫힌 사회와 런던 같은 메트로 폴리스 사이의 관계가 마비된 채 긴장 속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이스의 소설이 부르주아 세계의 단자론적 주체를 해체했다면 반면에 영국 작가 포스터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자율적 인간 주체에 강력한 가치를 부여한 자유주의적 정치 신조의 실패를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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