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빈방> 이 책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가톨릭 서울교구의 주보에 실린 작가 박완서님의 글로서, 3번째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저자는 <빈방>에서 끊임없이 신에게 질문하고 마음속 의문들을 독자들을 대신해 풀어나간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글이어서 신약성서 중에서 잘 알려진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어, 굳이 신자가 아닌 독자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복음서의 구절들이 인용되어 있다. 2천 년 전에 쓰여진 성서를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화로 묵상한 글들이어서 무척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저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놀랍고 황홀한 순간’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 요한이 남긴 이 글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고귀한 사랑이 담겨있는 것 같다. 당시에 천하고 볼품없는 여인으로 살고 있었던 한 여성에게 그리스도가 물을 청하였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내면의 생명수를 사마리아 여인은 선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라는 인물의 인성과 신성이 동시에 구현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보고 있고, 천국이 있다면 그 사랑이 천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으로 좋은 달’ 5월의 성모성월에 가족들,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와 충만함으로 마음이 항상 열려있게 해달라는 저자의 기도를 통해, 나도 주변의 모든 존재에 대해 새롭게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면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배불리 먹은 이야기를 통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 자신이 내어놓고 베푸는 삶이 바로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따지지 말고 우리가 그런 기적을 행하자고 하였다. 통일이라는 큰 기적을 이루기 위해 작은 기적부터 실천해가야 함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빈방’이라는 글은 2천 년 전으로 나를 데려간다.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빈방을 누군가가 내어놓았고, 선행이라는 생각 없이 누군가가 내어놓은 빈방의 의미는 무척 깊고 아름답다. 저자는 우리가 각자의 가슴속에 많은 빈방을 갖고 살지만 정작 누군가를 위해 방 하나의 마음을 내어놓는 일에 인색함을 고백하면서 ‘저의 기도가 마음을 열수 있는 열쇠가 되게 하소서.’라는 글은 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다. 저자는 보통의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의 구절들을, 현실의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깊은 내면의 길로 안내해준다. 또 다른 의식의 문을 열게 하는 신비로운 생각의 프리즘이 담긴 이 책은 나를 이웃, 사랑, 감사, 공존, 이해, 배려, 나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알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