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의 지혜 - 삶의 갈림길에서 읽는 신심명 강의
김기태 지음 / 판미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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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의 지혜> 이 책은 선불교의 3조 승찬 스님이 쓴 신심명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김기태님의 강의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지혜, 신선한 통찰과 지금 이 순간의 현존으로 안내한다. 신심명을 수도자의 좌우명, 글 전체가 모두 양변을 여읜 중도총론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 ‘무분별의 지혜’가 담고 있는 신심명은 ‘행복’과 ‘현존’의 나침반이다. 승찬 스님( ~606년)이 쓴 신심명은 146구 584자로 아주 짧은 글이며 禪사상의 궁극적인 경지를 설한 글이라고 한다.

 

이 선시의 핵심은 첫 구절에 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서 택하지만 말라.(至道無難 唯嫌揀擇)’ 좋음과 싫음,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이분법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무분별의 지혜는 깊고 넓은 마음의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오직 가려서 택하지만 않으면, 즉 ‘분별을 버리면 마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핵심을 현대인의 삶에 적용하여 저자의 체험과 사례와 상담과 예화를 통해 현존의 지혜를 담고 있다.

 

승찬 스님! 잘은 몰라도, 미생의 삶이 단 한 순간에 완생으로 파격,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부신 진보를 스승과의 만남에서 이루신 분, 아니 준비된 분인지도 모른다. 빈 밥그릇을 들고 허기를 참으며 거리를 헤매다가 사람들에게 한센병(문둥병)이라는 수모와 손가락질을, 날아드는 매와 돌을 견디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승찬 스님은 선불교에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 한센병을 지니고 살고 있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고통 속에서 빛나는 각성을 이루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기다리면서 유튜브에서 저자의 신심명 출판 기념 특강을 들었다. 신심명을 선의 백미, 삶 즉 禪, 진리는 따로 있지 않고, 평범한 이대로이며, 다짐이나 방법이 전혀 필요 없다고 했다.

 

저자는 추구나 목표, 무엇이 되려는 마음이 사라졌을 때, 자신 안에 온통 보배 창고들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여러분 자신에게 눈을 돌리게 하고 싶었고, 답은 답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이 답이다. 현존이 답이다. 내 안에 어떤 것이 올라오더라도 거부하지 말고 분별없이 이 초라함, 이 불편함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 안에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만나라. 지금 여러분이 이미 그것,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는 내용의 강의였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행복을 찾고, 불안을 느끼고, 어떤 내가 되어야 한다는 소유의 관념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승찬 스님도, 저자도 오직 ‘가려서 택하는 마음’ 때문임을 지적한다. 저자는 매순간 자신에서 올라오는 온갖 다양한 마음을 저항하거나 다른 것으로 변화하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경험하는 현존이 행복, 도, 이상적인 삶이라고 한다. 다만 그 순간의 현재 속에 올올이 존재하기만 하면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아름답고 영원한 보물을 매 순간 맛보고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 무분별의 지혜란 것을 알게 된다.

 

지극한 행복, 이상적인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현존’은 ‘있는 그대로’를 가리킨다. 기쁠 땐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며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자연스런 삶이며, ‘무분별의 지혜’는 매순간의 ‘현존’을 계속 말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말고 그 모두를 한결같이 평등하게 지녀보라고 한다. 어떤 감정이든 가려서 택하지 말고 귀하게 대접해서 배웅하는 것이 무분별의 지혜이고, 바로 마음 치유의 핵심이다.

 

선종사의 예화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저자의 특강에서) 대주혜해 스님이 스승에게 불법을 구하러 왔다고 하자, 스승 마조스님이 “한 물건도 없는데 자기 안에 있는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어찌하여 밖으로 구하느냐”고 반문했다. 제자가 “제 안 어디에 있습니까?”묻자, 스승이 “제 안 어디에 있습니까 묻는 너, 너가 보배창고다” 이 예화는 참으로 아름답다. 한편으론 아득해지면서, 한편으론 행복해진다. 이미 행복한 존재로서 우주의 선물인 나로서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신심명 73수의 시 중에서 간택(1수) 증애(2수) 순역(4수) 위순(5수) 취사(8수) 호오(43수) 득실시비(46수) 같은 상대적 개념들이 이상적인 삶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무분별의 지혜’의 1부(1-8수)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읽는 것만으로도 양변을 여읜 현존의 삶이 열린다. 주옥같은 가르침이 계속된다. 4부 ‘내 안을 직시하는 힘’에서 임성합도 소요절뇌(35수)는 본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니 한가하고 번뇌가 끊어진다. 5부 ‘나로서 살아가는 행복’ 중 몽환공화 하로파착 득실시비 일시방각(45-46수)은, 꿈같고 환상 같고 헛꽃 같은데 어찌 애써 잡으려고 하는가?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리라고 한다.

 

<무분별의 지혜>는 분별과 이원성을 넘어서 수행이나 노력의 결과로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밖을 향하던 눈길을 자신 안으로 돌이킬 때, 지금 이 순간의 현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누리게 된다. 행복한 현존, ‘무분별의 지혜’는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자체만으로 존재의 중심에서 살게 된다. 자신에게 나타나는 모든 생각, 감정들을 환영한다. 있는 그대로 마음에서 놀이를 즐기다 가도록 허용하고 경험한다. 존재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현존의 노래, 신심명을 새롭게 만나 눈뜨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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