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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씨의 마음 미술관 - 더없이 소중한 날들을 위한 명상과 그림의 눈부신 만남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책이다. 램블란트의 ‘명상하는 철학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명상’이나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나 의미가 앞자리를 내어준다. 그저 철학자의 약간 숙여진 얼굴과 조용히 두 손을 마주잡은 내면의 경건함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는 중요한 것도, 흥미로운 것도 있지만 바쁘게 부산을 떠는 바로 그 순간에 현재는 쉽게 우리의 의식에서 사라진다. 마음챙김 명상은 지금 이 순간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클로드 모네의 ‘까치’라는 그림(p.28)이 참 좋다. 겨울 풍경 속에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는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선물이다. 살아간다는 것, 매일 뭔가를 해야만 성취감을 느끼는 인간과는 달리 기법이나 설명이 필요 없이 햇빛과 바람과 눈을 느끼면서 앉아있는 까치가 나에게 훌륭한 스승이다. 나도 까치처럼 그렇게 앉아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앙드레씨의 마음 미술관>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알려주는 명화들이 담겨있다. 분석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호흡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언어를 잃는다. 그처럼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 ‘수태고지의 성모’라는 그림(p.201)을 보고 있으면,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 순간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조르주 드 라투르 ‘촛불 앞의 막달레나’(p.117) 라는 그림도 오직 존재로서의 한사람이 보일 뿐이다. 그녀의 신분이나 돌팔매질 당하던 고통과 수모는 사라지고, 침묵의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막달레나! 어떤 분석이나 생각도 없이 그저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명상의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프라 안젤리코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와 성모 그리고 성 도미니쿠스’라는 벽화(p.260)는 마음챙김을 이해하는 가장 압권의 예를 보여주는 것 같다. 벽화 속의 그리스도는 허공에서 나타나는 손과 막대기에 난타를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왕홀과 지구를 손에 들고 있다. 어떤 수모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완전한 마음챙김 속에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의 어머니와 제자 성 도미니쿠스가 예수와 다른 방향을 향해 앉아 있다. 마리아는 깊은 슬픔에 젖어있고 제자는 책(복음서인 듯)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에게 무관심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결코 무심하지 않지만 여전히 예수의 시련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도 예수와 이어져 있다.
벽화속의 그리스도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 모습이다. 시련이 삶과 정신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언제라도 고통 아닌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신을 열어두어야 한다. 마음챙김으로. 이 벽화는 마음챙김이 어떠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확실히 보여주는데 어떤 설명으로도 부족하고 독자들은 단지 그림을 보면 저자와 마음의 일치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미술 감상을 토대로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특수한 훈련으로 독자를 이끈다. 미술작품을 들여다보고 구체적 지침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힐링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이 예술 작품이 되어 독자들을 자신의 마음 미술관으로 초대한다. ‘내면’의 고요함으로.
이 예술 치유 명상서를 보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순간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치유가 일어난다. 스물여섯 점 명화를 이정표 삼아 헝클어진 현실을 차분히 바라보고 명상의 길로 찾아가는 내 마음속 미술관에서, 예쁘게 탄생한 책을 만날 수 있어 참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오래도록 곁에 두면서 자주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