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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5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병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더블린사람들의 대체적인 시간적 배경은 1895-1905년 사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서로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작가가 스물서넛(제임스 조이스, 1882년생, 1905년경 대부분의 작품 완성)의 나이에 썼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담담한 필치로 쓰여져 있다. 각 단편에는 서로 다른 더블리너들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하층민의 생활을 폭로해 출판이 지연되었다고 하는데 그다지 하층민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고, 대체로 중간층 정도의 이야기들, 때때로는 약간 중.상계급의 이야기들도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조이스의 의도는 이런 단편들을 모자이크함으로써 당대의 더블린의 모습과 세태풍속들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대 초반답지 않은 노련함이 보이는 반면에 아직은 설익은 문체(?)들도 보이는 듯해서 나름 풋풋한 글로 생각되었다.
<더블린 사람들>과 비견될만한 우리나라 소설은 아무래도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다만 <천변풍경>이 장편소설의 형식으로 주요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며 끝까지 등장하는데 반해, <더블린 사람들>은 각 단편 안에서 머물러 있다. 그래서 <더블린사람들>이 단편이라 그런지 몰라도, 동시대적인 시.공간적 배경을 하고 있음에도 각 단편 단위로 끊어지는 단절감이 있어 독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여러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생활상, 비교적 상세한 세태 묘사를 통해 각각 더블린과 '경성'(서울)의 모습(둘다 식민지 수도?였다는 공통점도 있다)을 담고자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시기적으로 보아 조이스의 <더블린사람들>이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지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제임스의 <율리시즈>가 고밀도로 압축되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그러나 어떻게 보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더블린 사람들>에 포함된 단편들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약간은 보이긴 한다.
<더블린사람들>이 이런 인연으로 우리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여전히 <더블린>이라는 도시 자체, 그것도 약 100여년전의 유럽 어느 도시들은 아무래도 낯설음이 있다. 상세한 장소 묘사가 <천변풍경>에서는 호기심과 반가움의 대상이지만 <더블린사람들>에서는 그저 '기호' 그 자체 이상의 의미는 주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것은 조이스의 의도가 아니다. 아마도 <더블린사람들>은 당시의 더블린을 기억할 수 있는 더블린사람들을 위해 지은 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가지는 가치를 절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더블리너들에게 의미 있는 구체장소맥락적인 바탕 위에서의 <더블린사람들>과 한국독자를 비롯한 타국 독자들에게는 추상적일 수 밖에 없는 <더블린사람들>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천변풍경>도 어려운데 <더블린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데로 넘어가면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