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공부를 진지하게 하면서 일본의 한자 학자 고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을 만나게 됐다. 시라카와 선생의 입론을 바탕으로 한 자, 한 자 공부를 하는 중에 상나라(예전에 알던 은나라)를 알게 됐고 이 나라에서 한자의 조상인 갑골문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정일치 국가였던 상나라의 서늘하고 잔인한 시스템이 갑골문 기반의 한자에 현현하는지라 호기심 반 두려운 마음 반으로 상나라정벌을 읽게 됐다. 상나라 이전부터 멀게는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인신공양과 순장 풍습이 증국의 여러부족에 만연해 있었고 상나라 말기(은허)에 가서 왕궁은 물론 은허를 비롯해 변방의 상나라 통치지역의 민간까지 인신공양제사가 열병처럼 퍼졌다. 그 인간희생의 대상은 상나라 마지막왕인 주왕 시대에 이르러 강족과 같은 이민족이나 전쟁포로 등을 넘어서 상나라의 귀족과 주변 제후국의 가족들에게까지 이르게 되는 등 그 포악성이 극악에 치달으며 상나라 내부의 동요가 극심해진다. 인신공양으로 후계자(백읍고)를 잃었고 본인도 감옥에 끌려 최장 7년의 옥살이를 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제후국 주나라의 문왕은 상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세운다. 이미 내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상나라를 상대하기엔 주나라의 힘은 약소했지만 상나라 주왕의 횡포를 더이상 참을 수 없던 주변 제후국들과의 동맹으로 문왕을 이은 무왕의 지휘 아래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강태공 여상의 활약은 잠깐 언급되는 정도이고 상나라정벌 후 사망한 무왕 이후 어린 성왕을 도와 국정을 책임진 무왕의 아우 주공에게 이 책의 초점이 옮겨간다. 즈공이 단행한 많은 일들 중에서 저자는 수천년간 이어져온 악습인 인신공양제사의 악습을 끊고 그 기억마져 지워버려 귀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한 그의 노력에 주목한다. 멸망 이후 흩어진 상나라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신공양제사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주공의 이런 업적은 500년 후 공자에 의해 상서 등으로 정리되었다. 이 책은 상나라정벌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전체적인 글의 포커스는 상나라 시대의 무시무시한 인신공양과 순장 풍습에 관한 저자의 충실한 고고학 발굴자료와 문헌이다. 사실 문왕 이후 상나라정벌과 이후 주공과 공자의 수습과 정리 과정은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 보인다. 상대적으로 상나라 시대의 묘사가 충격적인 결과 이후 수습과정은 매우 무난하게 그려진 탓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자가 탄생한 문화적 배경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점에 만족한다. 문제는 한자의 그 주술적 서늘함이 상나라 시대에 만든 갑골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문과 소전, 해서 등에도 그 주술적 영향력이 온전하다는 게 시라카와 선생의 논지이기 때문에 주공의 주도로 인신공양제사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그 이후에 다듬어지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한자에는 그런 영향력이 과연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시라카와 선생의 말씀이다. 인신공양제사와 순장 같은 선정적인 공포가 사라졌다고 해도 상나라 뺨치는 공포의 정치는 면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새로운 한자에도 똑같은 주술성이 살아남아있다는 것이다. 한자 공부의 배경지식을 익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