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의 집에 이모가 쳐들어왔다. 방해받은 것 같아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잠시 외출하고 온 사이 이모는 집안의 이곳저곳을 뒤져보고 있었다.

읽으면서 간담이 서늘해지고, 주인공의 행동 묘사 하나하나에 빠져들어 읽었다. 앞으로 유진의 돌은 정신세계와 프레데터의 순간들을 어떻게 표현 해낼지 너무 기대된다.

검사상, 유진은 적어도 기질적인 뇌 이상은 없었다. 지능도 놀랄 만큼높았다. 행동은 또래 아이들보다 침착하고, 쉽게 흥분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집중할 일이 생기면 오히려 호흡이나 맥박의 속도가 뚝 떨어졌다. 얌전하거나 유순하거나 참을성이 많아서가 아니라, 흥분의 역치가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는 유진의 심장이 뛰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혜원은 그것이 무엇일지 몰라 겁이 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아형 품행장애로 추측하고 검사를 시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토론결과에 따르면, 유진은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
나는 바보 천치처럼 눈만 깜박거렸다. 포식자라니.
혜원은 선언하듯 말해버렸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 P259

이모 역시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를 등진 채 퍼걸러 테이블 앞에서 있는 건 이모가 아니라 장작개비였다. 어머니를 겁주고, 들쑤시고, 어르고, 뺨을 쳐서 나를 망가뜨리게 만든 요망한 장작개비.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퍼걸러로 가는 두 번째 포석으로 발을 옮겼다. 발소리를 죽이기는 했지만 장작개비가 돌아봐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언제든나를 봐야 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기대 만발이었다. 보는 순간의 표정이 어떨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덤빌까? 도망칠까? 비명을지를까?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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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장을 보며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자신(유진)과 관련된 이야기였고, 그 안에는
자신의 발작이 시작된 시점, 운동을 그만두게 한 상황 등 여러 가지가 쓰여있었다. 유진은 엄마가 아닌 주치의이자 이모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느낌을 받고 배신감을 느낀다.
읽고 난 후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캠프를 갔을 때 토끼가 죽어가던 상황과 16년이 지난 오늘 자신이 여자를 죽였던 상황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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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유진의 집으로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은 김지원(엄마)에게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를 받았다고 하였다.
유진은 한편으로 누가 신고하였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추측들이 들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에 답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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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의 주인을 찾기 위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유진. 약을 안 먹었을때의 유진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자기 때문에 놀라거나, 공포심을 느끼는 그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그 후 새벽 막차에서 내린, 홀로 집에 가는 여성은 유진의 장난감이었다. 그날도 비가 많이 왔고, 때마침 막차에서 한 여성이 내려 혼자 걸어갔다. 그 모습을 엄마가 보았고, 그렇게 엄마와 실랑이를 하다 죽게 되었던 것이다.

여자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머리채가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회전하며 내 얼굴을 때렸다. 여자의 몸은 차도 쪽으로 한 발짝 튀어나갔다. 악, 하는 짤막한 비명이 울렸다. 빳빳한 천을쭉 찢어내리는 듯한 소리였다. 교감신경을 향해 행동 개시를 명령하는소리였다.
나는 가로등 밖으로 성큼 나서면서 비명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가시킨 일이 아니었다. 손이 알아서 머리채를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비틀어서 가로등 그늘로 끌어들인 다음, 턱이 위로 들리도록 밑으로 내리는렀다. 동시에 면도칼이 여자의 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비명이 딱 그쳤다.
유리벽 같은 정적이 우리를 가뒀다.
여자의 눈은 활짝 열려 있었다.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눈이었다. 머릿속과 교신이 끊겨버린 눈이었다. 나는 머리채를 틀어쥔 채 지켜봤다.
여자의 머릿속, 인간 뇌에서 가장 오래된 위험 감지기라는 ‘파충류 뇌‘가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너무도 격렬해서 통증마저 느껴지는 생명의절박한 긴장을불길 같은 흥분이 신경절을 타고 온몸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올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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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과의 대화 도중 집 현관에서 진주 귀걸이를 하나 발견하였다. 유진은 기억에는 없지만 뭔가 귀걸이가 맘에 걸리고, 찜찜했다. 해진의 통화로 동네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을 알게 되었다. 이상한 기억이 난 유진은 자신의 허상이 허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손엔 진주 귀걸이를 들고.

사건 근처를 가는 길에는 호떡집이 하나 있다. 호떡 사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새벽에 죽은 여자가 가끔 가게에 들르는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여자는 항상 한쪽에 어머니의 유품인 진주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하였다.

과연 유진과 이 여자사이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진주 귀걸이의 주인이 이여자가 맞을까?

지금껏 그래왔듯, 허상과의 대화는 허상이 침묵하며 끝났다. 대신 새벽녘 눈을 떴을 때 시야에서 너울거리던 기이한 영상들이 되살아났다.
노랗게 불을 켠 가로등들, 발아래로 소용돌이치며 내달리는 강물의 어스름한 그림자, 몸이 뒤집힌 채 중앙분리대 가로수에 걸려 펄럭거리는 진홍색 우산, 바람에 펄럭이는 가림막 비닐벌이 쏘고 간 듯, 뒷덜미가 뜨끔해왔다. 환영들은 나루터나 방조제 횡단보도와 관련된 풍경이 아니었다. 방조제 가로등은 백색광을 내는 LED등이었다. 방조제 중앙분리대엔 가로수가 없고, 방조제 부근에는 가림막비닐을 친 공사장이 없었다. 방조제 바깥쪽은 바다가, 안쪽 하구언로 입구에는 이미 완성된 아파트 단지와 상가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 가지 조건을 수렴하면서 발아래로 급류가 달릴 만한 곳은 강변 인도뿐이었다. 인도 어디쯤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알아내도 큰 의미가 있을 것같지 않았다. 발작 직전에 스쳐온 풍경들이 깨어난 후 기억난 것에 불과할 터였다. 비슷한 경험이야 전에도 있지 않았던가.
스스로 결론은 내려놓고도 썩 개운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개운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지옥으로 가는 통로를 엿본 심정이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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