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의 주인을 찾기 위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유진. 약을 안 먹었을때의 유진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자기 때문에 놀라거나, 공포심을 느끼는 그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그 후 새벽 막차에서 내린, 홀로 집에 가는 여성은 유진의 장난감이었다. 그날도 비가 많이 왔고, 때마침 막차에서 한 여성이 내려 혼자 걸어갔다. 그 모습을 엄마가 보았고, 그렇게 엄마와 실랑이를 하다 죽게 되었던 것이다.

여자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머리채가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회전하며 내 얼굴을 때렸다. 여자의 몸은 차도 쪽으로 한 발짝 튀어나갔다. 악, 하는 짤막한 비명이 울렸다. 빳빳한 천을쭉 찢어내리는 듯한 소리였다. 교감신경을 향해 행동 개시를 명령하는소리였다.
나는 가로등 밖으로 성큼 나서면서 비명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가시킨 일이 아니었다. 손이 알아서 머리채를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비틀어서 가로등 그늘로 끌어들인 다음, 턱이 위로 들리도록 밑으로 내리는렀다. 동시에 면도칼이 여자의 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비명이 딱 그쳤다.
유리벽 같은 정적이 우리를 가뒀다.
여자의 눈은 활짝 열려 있었다.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눈이었다. 머릿속과 교신이 끊겨버린 눈이었다. 나는 머리채를 틀어쥔 채 지켜봤다.
여자의 머릿속, 인간 뇌에서 가장 오래된 위험 감지기라는 ‘파충류 뇌‘가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너무도 격렬해서 통증마저 느껴지는 생명의절박한 긴장을불길 같은 흥분이 신경절을 타고 온몸으로 내달렸다. 숨이 차올랐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서 현기증이 났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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