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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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 산문집으로,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에세이들을 하나로 엮은 책이다.

1967년작 <특히 고양이는>은 야생의 땅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과 비로소 고양이를 들여놓을 여유가 생긴 25년 후 런던 생활을 함께한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놀라운 출산력을 자랑하는 검은 고양이와 또 다른 주인공 회색 고양이가 주연이다. 1989년작 <살아남은 자 루퍼스>에서는 집 잃은 고양이 루퍼스가, 2000년작 <엘 마니피코의 노년>에서는 귀족이라는 뜻의, 한 쪽 다리를 절단하고 세 다리로 살아가는 고양이 엘 마니피코가 주인공이다.

일평생 고양이와 함께 한 작가의 놀라운 관찰력과 세심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도리스 레싱이란 소설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지만, 그녀의 일평생에 고양이가 좋은 동반자였다는 사실만큼은 이 책으로 알 수 있다.

야성의 세계, 작가의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의 에피소드들이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 다가온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야생 고양이가 되어 총에 맞고 죽기도 하고, 뱀은 생활의 일부였다고 한다.

"뱀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부엌에, 베란다에, 식당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 같았다. 한번은 내가 나이트애더(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살무사의 일종)를 털실 타래로 착각하고 손으로 잡을 뻔한 적이 있었다." - P 24

출산의 심한 고통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어미 고양이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어 매번 처음 태어난 새끼를 죽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부모님이 고양이를 가둬놓고 '대학살'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니 고양이의 지나친 생산력은 늘 문제다. 이토록 고양이를 사랑하는 애묘인 레싱도 갓 태어난 새끼들을 곧바로 죽여 없애버린 적이 있단다.


다니는 PC방에 고양이가 있었다. 묶어 두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어슬렁어슬렁 왔다 갔다 한다.

사람이 없으면 책상 위는 물론, 심지어 PC 위쪽으로도 올라 다닌다. 귀엽다고 고양이를 만지작거리는 손님들도 있지만, 나는... 주인에게 '돌아다니는 고양이 좀 어떻게 해보라'고 항의하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결국 그 PC방 출입을 끊었다. 그랬던 사람이니 애당초 <고양이에 대하여>는 인연이 없어야 하는 책이다! ㅎㅎ 별다른 감정이입이 될 리가 없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손바닥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털, 추운 밤에 자다가 깼을 때 느껴지는 온기,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양이조차 갖고 있는 우아함과 매력. 고양이가 혼자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우리는 그 고독한 걸음에서 표범을 본다. 심지어 퓨마를 연상할 때도 있다." - P 264

저자의 이 우아한 묘사에 100% 공감하는 독자라면, 기르는 집고양이 옆에서 즐거운 독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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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포장마차 1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가일 지음 / 들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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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작이다.

"감칠맛 난다! 맛있다! 쫄깃하다!

우리 추리문학의 스펙트럼을 또 한 번 넓힌 수작!" - 김성종, 추리문학관 관장, 한국추리작가협회장 역임

순서로는 올해 발매된 2권을 먼저 읽었다.

하루에 딱 1시간, 11시부터 자정까지만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푸드트럭 '신데렐라 포장마차'(이하 '신포')를 무대로 하고 프랑스 상차림을 사건의 메뉴로 내놓는다.

1편의 메뉴는 콩소메, 뵈프 브르기뇽, 물 마리니에르 3종이고 각각의 스토리는 인물들 외에는 연관성이 없는 연작의 형식을 취한다. 살인사건을 다루긴 하지만 범죄는 잔인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코믹하다.

왜 아니겠는가? 무대의 배경이 꽃보다 아름다운 프랑스 청년 프랑수아가 운영하는 하루에 한 시간만 나타난다는 환상의 식당인데... 신포는 풀코스 프랑스 정찬을 내지만 가격은 9,800원을 고수하며 출몰 위치는 암호화되어 있어 보통 사람들은 어디에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 그 자체가 판타지다.


2권을 먼저 읽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대해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어, 1권에서는 전사(前史)가 밝혀질 걸로 기대하고 읽었다.

'무언가 큰일을 겪고 신영규와 찰떡 파트너였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김건.

김건과 과거에 만났는지 아닌지, 김건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을 간직하고 있는 소주희.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핏줄 때문에 그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했던 신영규 등...' - P 318

하지만 1권에서도 이들 간의 과거 스토리는 언급되지 않아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히려 1권을 읽은 독자들은 '이 내용이 2권에선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하지 않았을까? 2권까지 읽었으나 아직까지 정가일의 큰 그림은 오리무중이다. 구상 단계에서 도대체 몇 권으로 완결하려는 계획이었을까. 프랑수아는 답을 알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모든 사건은 발현되는 타당한 원인이 있고 적절한 과정을 거쳐 각각의 결과에 이릅니다. 만약 그 흐름 중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원인은 알 수 있게 되죠." - 김건, P 21~22


시리즈물이 좋은 건 권수가 쌓일수록 등장인물들과의 관계가 "우리가 남이가" 된다는 점이다.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격인 "무슨 일이든 최선의 결과를 내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사용하는 민간조사원 김건,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민완 & 열혈 형사 신영규, 이상형이 계속 바뀌는 베이글녀 소주희, 도대체 왜 한국에서 신포를 운영하는지 미스터리한 프랑수와 외에도 걸그룹 같은 외모에 공사판 작업반장 같은 입담을 가진 복승아, 여자들에게만 지나치게 친절한 김정호 같은 형사들에게도 슬슬 애정이 생긴다. ♡♥


"'문제 유기체설'에서 사람은 조건에 불과해요. 모든 사건은 고유의 패턴을 지닌 독립된 '흐름'이죠!" - 김건, P 70


'책셰프'로 본인의 정체성을 설정한 정가일은 당연히 프랑스 요리에 관련된 연구를 했을 거고, 이는 작품 속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일단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연상되는 그 황홀한 맛에 '꼬르륵~' 소리와 싸워야 한다.

"네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주면, 네가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마" - 브르야사바랭, 프랑스의 미식가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 히포크라테스


책의 표지와 옆면에 보면 분명 "1"이라는 표식이 있어, 출발부터 <신포>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냥 어쩌다 호응이 있어 2권이 나온 게 아니란 이야기다.

하지만 <신포> 1권만 놓고 보았을 때 추리문학상 대상까지 수상할 걸작인가는 동의하기 어렵다.

아마도 일상 미스터리에 프랑스 미식을 결합시켜 '음식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단 창의력에 많은 점수를 준 듯하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신포>에 대한 평가는 조금 유보해도 좋겠다. 어쩌면 본격물을 선호하는 개취와 다소 안 맞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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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는 당신 - 한국가요 100년, 주옥같은 명곡들에 얽힌 이야기
주현미 글, 이반석 정리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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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새로운 붐을 타고 열일하는 주현미가 이번엔 본인 히트곡에서 제목을 따온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란 책을 냈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 '주현미 TV'를 개설하고 가요 100년사에 이름을 남긴 명곡들을 본인이 직접 불러 꾸준히 올리고, 개별 곡에 관한 내용은 별도 '노래 이야기'로 해당 클립에서 볼 수 있게 정리해 두었는데, 이 내용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노래 이야기'의 내용 중 어떤 것은 일부 내용이 생략되거나 내용 순서가 뒤바뀐 것도 있지만, 그대로 책의 본문으로 수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뭐 하러 책을 사냐고? 글쎄, 그걸 매번 찾아보는 거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효용가치는 분명히 다르다.

결국 이 책의 정체성은 '트롯신' 주현미가 안내하는 '책으로 읽는 가요무대'다.

예컨대 '미스터 트롯'에서 임영웅이 마지막에 불러 시청자들을 탄식하게 만든 '배신자'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고,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와는 완전히 다른 왕년의 아이돌 가수 전영록의 모친 백설희 선생이 부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하는 '봄날은 간다'도 있는 것이다.

 

가수 주현미는 11세에 MBC 이미자 모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75년 중학교 2학년 때 프로 작곡가 정종택에게 사사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가수 데뷔를 꿈꾸며 외길 인생을 걸은 그녀였기에, <추억으로 가는 당신>에 등장하는 많은 전설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고, 어느덧 그녀도 가수 데뷔 35년 차이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책에 등장하는 가수, 작곡가, 작사가들과 얽힌 추억도 많다.

<추억으로 가는 당신> '한국 가요 100년, 주옥같은 명곡들에 얽힌 이야기'에는 주현미 오리지널, 그녀의 대표곡들과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애착을 가진 곡들도 함께 소개된다.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짝사랑', '추억으로 가는 당신', '월악산', '여정'」

여기 소개되는 곡들은 모두 가사 전문을 수록했고, 본인의 곡인 '추억으로 가는 당신'과 '비 내리는 영동교'를 제외하곤 모두 QR 코드를 통해 '주현미 TV'에 올라가 있는 해당 곡을 들을 수 있게 해서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게 구성했다. 물론 QR 코드를 스캔하지 않고, 그냥 '주현미 TV'에서 찾아 들어도 된다.

'주현미 TV'에서 주현미가 부르는 옛 가요는 아코디언 김태호, 기타 이반석의 2인조 구성인데 아코디언 선율이 주는 담백하고 복고적인 정서가 그야말로 부모 세대의 추억 돋는 시절로 안내한다.

이 책 내용을 정리한 이반석이 바로 동영상에 등장하는 기타 연주자다.

평균 3~4분의 유행가는 당시 시대상의 반영이다. 그건 과거나 현재나 불변이다.

그렇다면 여기 소개된 가사들만 제대로 음미해도 1920년대 이후 한국 역사는 어느 정도 보인다.

서울로 돈 벌러 떠난 시골 처녀, 오라비 대신 노 젓는 처녀 뱃사공, 부두로 들어오는 귀국선...

많은 세월이 흘러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긴 다소 힘들고, 문체나 단어도 그다지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록된 가사들은 제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두꺼운 역사 책에서만 역사를 배우는 건 아니다.

'영동교', '신사동'을 부른 본인의 노래를 통해서는 '강남'이라는 명칭조차 없었던 시절, 한강 아래에 유일하게 개발되어 있던 영등포의 동쪽을 '영동'이라 불렀고, '70년대에는 강남에 유흥업소를 개업하면 세금을 감면해 주기까지 했다는, 지금은 믿기 힘든 재미난 에피소드까지 알게 된다.

주현미의 팬이나 가요무대의 시청층인 부모 세대는 물론, 최근 트로트 열풍을 통해 본인이 아무리 부인하려 몸부림쳐도 끝끝내 내재된 트로트 유전자를 발견한 젊은 층에게도 읽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선사할 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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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포장마차 2 - 희망이 떠나면 무엇이 남는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가일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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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등단한 정가일은 어느덧 필력이 20년 차에 접어드는 중견 소설가(흔히 '작가'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렇게 표현하면 큰 실례란 점을 알게 된다)인데 그의 대표작은 2017년에 발표되어 '한국추리문학상대상'을 수상한 <신데렐라 포장마차>(이하 '신포')다. 3년 만에 나온 신포 2는 시리즈의 계속을 알리는 신작이다. 4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가독성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

책셰프를 표방하는 정가일은 미식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 밤 11시부터 자정까지만 영업하는 신출귀몰한 프랑스식 푸드트럭 신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이번에 제공되는 메뉴는 '솔 베로니크'와 '글로우 칵테일' 두 가지다. 신포를 운영하는 프랑스 청년 셰프 프랑수아 외에 과거를 잊어버린 탐정 김건, 한국 최고 궁중요리 전수자의 딸이지만 프랑스식당의 수셰프로 일하는 소주희, 까마귀 가면을 쓴 악마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는 민완 형사 신영규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의 과거사가 오버랩되면서 소설을 풍성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신포 전편을 읽어야 이들의 관계도가 명확하다.


정통 추리의 요소가 그리 강하지는 않고, 일상에서 범죄의 향기가 약하게 묻어나는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

하지만 국제적인 비밀조직 레메게톤의 거대한 음모가 개입되면서 판을 키우는데, '솔 베로니크'에서 강력하게 등장한 사이코패스 강하라의 후일담과 함께 시리즈 3편을 기약하게 만든다. 아마도 정가일은 김재희의 <경성 탐정 이상> 같은 연작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신포 2에서 무언가 시원한 해결이 나진 않는다. 큰 그림의 한 단면을 본 듯한 느낌으로 다음 편을 예고하며 끝난다.

"추리소설을 읽는 건 안정된 생활을 하는 '중산층'들이래요. 자신들의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탈출구로 추리소설을 찾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이후로 사실상 중산층이 몰락해서 모두가 힘들게 살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날 탈출구로 추리소설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죠. 어느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 열 명 중 여덟 명이 자신을 빈민층이라고 생각한대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 소설가가 쓴 추리소설은 모두가 다 아는 암울한 현실 이야기일 테니 탈출구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럼 외국 추리소설은 왜 잘 팔리는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현실을 다루기 때문이죠. 사실상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 P 224~225

음미해 볼 만한 분석이다.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서구, 일본은 물론 북유럽, 중국 추미스까지 기웃기웃 대지만 어쩌면 과거 가요보다 팝을, 방화보다 외화를 선호했던 근성이 잠재되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한다.

K-스릴러를 더 많이 찾아 읽겠다.


"믿기 힘든 상황들이 하나로 모인다면 그 자체에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 P 274


미각을 자극하는 소설 신포 2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저자 후기다. 정가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책 한 권 내지 못한 선배 소설가 이철호에 대한 추억과 존경은 신포의 탐정 김건으로 오마주 되었고, 소설 속 한국추리소설가협회 회장의 이름은 '이철호'로 명명되었다.

낮고 부드러운 말투, 신사답고 우아하며 품위 있는 행동, 백과사전을 모두 씹어 먹은 것 같은 박학다식함, 연극배우 같은 큰 표정...

후배의 작가 인생에 롤 모델이요 멘토가 되었던 누군가,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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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吾友我 : 나는 나를 벗 삼는다 - 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공부 오우아 吾友我
박수밀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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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吾友我)는 '나는 나를 벗 삼는다'라는 뜻으로 이덕무는 이 말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박수밀 한양대 교수가 쓴 <오우아>는 그간 월간 『샘터』에 '옛사람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도 연재되었던 원고들을 모은 책으로 '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공부'가 부제다.

국내 고전을 꾸준히 연구한 고전문학자 박수밀 교수는 고전 속 옛사람들의 지혜를 현대에 되살리는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는데, 그가 특히 닮고 싶은 부분은 박지원의 '합리적인 이성', 이덕무의 '온화한 성품', 박제가의 '뜨거운 이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의 본문에는 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중국 고사도 가끔 나오긴 하지만 책의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3인방을 필두로 국내 지식인들의 목소리와 사상을 주로 전달하는데 이규보, 유몽인, 장혼, 이익, 이옥, 홍대용, 정약용, 이용휴, 홍길주 등이 <오우아>를 통해 다시 현대로 소환된다.

고전 마음공부의 세계로 안내하는 <오우아>는 300쪽이 안 되는 분량이지만 큰 울림을 주는 단단한 책이다.

강병인이 작업한 표지 캘리그래피부터 단아하고, 중간중간 2페이지에 걸친 여백이 있는 사진들이 있어 내용과 풍경이 조화를 이루면서 읽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독자들이 짐작하는 바대로, 여기에 등장하는 옛 선현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금은보화를 탐하거나, 지위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신분이 천한 자라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친구의 소중함을 알았고, 무엇보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본인 마음의 중심을 잡았던 분들이다.

흔히 나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요, 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또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크다는 반증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나는 나를 벗 삼는다'라는 화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혼밥이나 혼술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거기다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사회적 거리두기의 분위기에다 이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 않을 듯한 불길한 예감이 매우 강하게 드는 시대이지 않나.

책에 등장하는 조선 시대 인물들은 대부분 대쪽같은 선비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탐욕보다는 자족을 평생 추구했고, '홀로 있는 데에서도 삼간다'라는 신독(愼獨)을 지켰으며, '다른 것은 다양한 것 중의 하나일 뿐 틀린 것이 아님'을 아는 분들이다.

동양 고전을 다룬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물론 일반인들이 읽어도 마음 수양에 좋지만 정치인들이 좀 많이 읽고 본인 행동을 톺아보는 계기와 자극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유혹에 시달리고, 분노, 시기, 질투, 욕심에 휩싸일 때 <오우아>는 좋은 마음의 안식처가 될 책이다. 뭐니 뭐니 해도 혼자 하는 행위의 최고봉은 독서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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