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포장마차 2 - 희망이 떠나면 무엇이 남는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가일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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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등단한 정가일은 어느덧 필력이 20년 차에 접어드는 중견 소설가(흔히 '작가'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렇게 표현하면 큰 실례란 점을 알게 된다)인데 그의 대표작은 2017년에 발표되어 '한국추리문학상대상'을 수상한 <신데렐라 포장마차>(이하 '신포')다. 3년 만에 나온 신포 2는 시리즈의 계속을 알리는 신작이다. 4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가독성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

책셰프를 표방하는 정가일은 미식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 밤 11시부터 자정까지만 영업하는 신출귀몰한 프랑스식 푸드트럭 신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는데, 이번에 제공되는 메뉴는 '솔 베로니크'와 '글로우 칵테일' 두 가지다. 신포를 운영하는 프랑스 청년 셰프 프랑수아 외에 과거를 잊어버린 탐정 김건, 한국 최고 궁중요리 전수자의 딸이지만 프랑스식당의 수셰프로 일하는 소주희, 까마귀 가면을 쓴 악마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는 민완 형사 신영규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들의 과거사가 오버랩되면서 소설을 풍성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신포 전편을 읽어야 이들의 관계도가 명확하다.


정통 추리의 요소가 그리 강하지는 않고, 일상에서 범죄의 향기가 약하게 묻어나는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

하지만 국제적인 비밀조직 레메게톤의 거대한 음모가 개입되면서 판을 키우는데, '솔 베로니크'에서 강력하게 등장한 사이코패스 강하라의 후일담과 함께 시리즈 3편을 기약하게 만든다. 아마도 정가일은 김재희의 <경성 탐정 이상> 같은 연작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신포 2에서 무언가 시원한 해결이 나진 않는다. 큰 그림의 한 단면을 본 듯한 느낌으로 다음 편을 예고하며 끝난다.

"추리소설을 읽는 건 안정된 생활을 하는 '중산층'들이래요. 자신들의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줄 탈출구로 추리소설을 찾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이후로 사실상 중산층이 몰락해서 모두가 힘들게 살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날 탈출구로 추리소설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죠. 어느 통계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 열 명 중 여덟 명이 자신을 빈민층이라고 생각한대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 소설가가 쓴 추리소설은 모두가 다 아는 암울한 현실 이야기일 테니 탈출구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럼 외국 추리소설은 왜 잘 팔리는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현실을 다루기 때문이죠. 사실상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 P 224~225

음미해 볼 만한 분석이다.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서구, 일본은 물론 북유럽, 중국 추미스까지 기웃기웃 대지만 어쩌면 과거 가요보다 팝을, 방화보다 외화를 선호했던 근성이 잠재되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한다.

K-스릴러를 더 많이 찾아 읽겠다.


"믿기 힘든 상황들이 하나로 모인다면 그 자체에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 P 274


미각을 자극하는 소설 신포 2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저자 후기다. 정가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책 한 권 내지 못한 선배 소설가 이철호에 대한 추억과 존경은 신포의 탐정 김건으로 오마주 되었고, 소설 속 한국추리소설가협회 회장의 이름은 '이철호'로 명명되었다.

낮고 부드러운 말투, 신사답고 우아하며 품위 있는 행동, 백과사전을 모두 씹어 먹은 것 같은 박학다식함, 연극배우 같은 큰 표정...

후배의 작가 인생에 롤 모델이요 멘토가 되었던 누군가,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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