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04
유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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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일기]에 이은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각각 욕망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압구정"과 인간 생의 근원적 토대인 그의 고향 "하나대"로 대변되는 대칭되는 두 거점을 뿌리로 한 변주이다. 책 말미에 문학평론가 박철화의 해설을 읽으면 유하의 시세계에 대해 이미 발표된 평문들은 그 두 곳을 나누어 바라보고 있는데, 그 두 곳은 나누어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종합되어야 한다는 투의 결론을 내린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먼저 1부 "나와 여치의 불편한 관계"를 읽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세계에 대한 유하의 영민함이 드러나는지를 좀 알 수 있을 듯 하다.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詩로써 답을 구하는 몇 편의 시들은 좀 퇴고가 덜된 듯 늘어나고 긴장감이 떨어지도 한다(<눈을 위한 시>, <약수를 길어오며>, <내 마음의 고기 한 마리> 등). 삶의 방식, 혹은 주변인의 모습을 그려낸 시들이 오히려 안정적이고 울림이 있다(<할머니와 넘서밭>, <참빗 하나의 시> 등). 허나 이때 유하의 진면목은 말장난, 언어유희에 다름 아니다(<미란타1, 2>, <시인 유보氏의 하루 1, 2> 등). 그 속에서 번득이는 生의 몸부림들!

2,3부를 완독하고 나자, 크게는 역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욕망과 유행의 최전선 "압구정"과 고향의 "하나대" 사이의 간극에서 벌어진 갖가지 비극들을 원초적인 건강성으로의 회복을 염두에 둔 시편들과, 연가풍으로 지나간 청춘의 삶을 추억하는 자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물론 "압구정과 하나대"는 본질적으로 대칭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개발, 유행의 최정방의 전장 "압구정"과 이젠 고요와 적막으로 쓸쓸함만이 가득한 "하나대"는 동시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으로써 두 곳의 삶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계몽주의자적 입장을 유하는 갖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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